홍콩에서 시작된 학교 전쟁
해외살이는 이미 한 번 겪어 본 일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조금은 덜 흔들릴 거라고 믿었다.
북경에 정착한 지 일 년 반쯤 되었을 때였다.
우리는 다시 짐을 쌌다.
이번 도시는 홍콩이었다.
거실 한쪽에 이삿짐 상자들이 쌓여 갔다.
테이프로 봉인된 상자들은 아직 정리되지 않은 마음처럼,
어딘가 불안정하게 놓여 있었다.
새로운 변화는 늘 두 얼굴이었다.
설렘과 두려움이 동시에 따라왔다.
남편은 홍콩·심천 사무소 소장으로 발령을 받았다.
그는 이미 새로운 일 속으로 깊이 들어가 있었고,
나는 다시 출발선 앞에 서 있었다.
해외살이는 이미 한 번 겪어 본 일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조금은 덜 흔들릴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홍콩은 북경과는 전혀 다른 도시였다.
공기는 따뜻하고 가벼웠고,
거리는 분주했고 멈추지 않았다.
네온사인이 번져 있는 거리,
유리창에 반사되는 사람들,
끝없이 솟아오른 건물들이 하늘을 잘게 쪼개고 있었다.
사람들은 빠르게 걸었고,
에스컬레이터는 쉼 없이 사람들을 위로 밀어 올렸다.
신호등이 바뀌기 무섭게 인파가 쏟아졌고,
나는 그 흐름에 휩쓸리듯 몇 걸음씩 밀려났다.
귀는 더 멍해졌다.
온 세상의 언어가 뒤섞여 있었다.
광둥어가 빠르게 스쳐 지나가고,
그 위를 영어가 덮었다.
어딘가에서 익숙한 중국어가 잠깐 스쳤다가 사라졌다.
북경에서 겨우 붙잡기 시작했던 언어는
이곳에서 다시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렸다.
나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이미 한 번 해본 일이었지만
낯섦은 여전히 낯설었고,
이 도시는 나를 기다려 주지 않았다.
잠시 멈춰 설 틈도 없이
나는 그 빠른 흐름 속으로 밀려 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또다시
아이들 학교 문제 앞에 서 있었다.
이번에는 선택지가 너무 많았다.
그래서 더 어려웠다.
기준은 높아졌고,
무엇이 맞는 선택인지 더욱 헷갈렸다.
사실 그때의 나는 조금 지쳐 있었다.
북경에서의 힘겨웠던 시간들이
몸 어딘가에 여전히 남아 있었다.
하지만 나를 돌볼 틈은 없었다.
아이들은 또다시
새로운 환경 속으로 들어가야 했다.
엄마인 나는
먼저 길을 찾아야 했다.
가라앉는 마음을 붙들고
홍콩의 학교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인터넷을 뒤지고, 전화를 걸고,
입학 설명회를 찾아다니며
지도 위에 점을 찍듯
학교 이름들을 하나씩 표시해 나갔다.
당시 홍콩에는
50개가 넘는 국제학교가 있었다.
그중에서도
홍콩국제학교와 중국국제학교가 눈에 들어왔다.
이름만으로도 단단한 벽처럼 느껴지는 곳들이었다.
이미 긴 대기 명단이 있었고,
입학은 ‘가능성’이 아니라 ‘확률’에 가까웠다.
누군가는 몇 년을 기다렸고,
누군가는 거액을 기부하고도 자리를 얻지 못했다고 했다.
홍콩국제학교는 보다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미국 대학 진학을 지향하는 커리큘럼을 운영했고,
중국국제학교는 보다 체계적인 교육을 바탕으로
영국·유럽 및 홍콩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나는 일단 홍콩국제학교에 지원서를 넣고
연락을 기다렸다.
한 달, 두 달, 세 달.
기다림은 생각보다 길었다.
그 사이 아이들을 그대로 둘 수는 없었다.
우선 집 근처의 미국국제학교에
두 아이를 먼저 보냈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빠르게 적응해 갔다.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영어로 웃고 떠들며
자기 자리를 만들어 가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모든 것이 잘 흘러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도
내 마음은 그 자리에 머물지 못했다.
나는 계속해서
더 좋은 곳을 향해 시선을 옮기고 있었다.
북경에서도 그랬다.
나는 늘 ‘가장 좋은 선택’을 하고 싶어 했다.
홍콩에서도
그래야 한다고 믿었다.
주변에서는 말했다.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이 정도면 괜찮다고.
하지만 나는 멈출 수 없었다.
이상할 만큼 간절했다.
아이들에게만큼은
내가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환경을 주고 싶었다.
그 마음은 분명 사랑이었지만,
그 안에는 나도 모르게 스며든 불안이 있었다.
아이들이 좋은 학교에 들어가야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을
비로소 가질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포기했던 것들과
내려놓았던 자리들이
어딘가에서 보상받고 있다고
믿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도시의 속도에 뒤처지지 않으려고
조금 더 빠르게 움직였다.
이미 충분히 하고 있었음에도
스스로를 다그치며
조금 더, 조금 더 나아가려 했다.
나는 그저
앞을 보며 달려가고 있었을 뿐인데,
어느 순간 돌아보니
그 시간들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와 있었다.
낯선 도시에서,
나는 또 한 번 나를 밀어붙이고 있었다.
전력으로.
아이들을 위한 선택이라는 이름으로,
사실은 나의 불안을 증명해 가고 있었다.
그때의 나는
그것이 최선이라고 믿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