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에서 보낸 마지막 겨울
북경에서 설을 보낸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길고 고요한 일이었다.
홍콩 발령을 앞둔 2004년 겨울,
우리 가족은 북경에서 마지막 설 연휴를 맞았다.
무려 열흘.
거대한 도시 전체가
잠시 멈춰 선 듯 조용해졌다.
문을 닫은 상점들, 텅 빈 거리.
사람과 소음으로 가득하던 길들이
낯설 만큼 고요해졌다.
연휴가 시작되기 전, 우리는 서둘러 장을 봤다.
쌀과 채소, 과일, 고기까지.
열흘을 버틸 만큼의 식료품을 집 안 가득 들여놓았다.
타국에서 맞는 긴 연휴는
어쩌면 작은 월동 준비와도 닮아 있었다.
그해 정월 초하루,
남편은 오래 그리워해 온 어머니를 위해
타국에서 제사를 모시고 싶어 했다.
비록 이국의 땅이었지만
한국에서 하던 방식 그대로.
그러나 제사상을 준비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우리는 북경 시내를 몇 날 며칠 돌아다녔다.
한국 식재료를 파는 마켓을 찾고,
대형 마트에 들르고,
동네 시장까지 샅샅이 뒤졌다.
익숙한 재료를 발견하면 반가워했고,
없으면 비슷한 것으로 대신했다.
그렇게 하나둘 모은 재료들로
마침내 제사상에 올릴 음식을 마련했다.
정월 초 하루날 아침,
집 안에 조용히 향을 피우고
우리는 제사를 모셨다.
낯선 북경의 작은 집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한국에서 제사를 지내듯
고요하고 익숙한 공기가 흘렀다.
우리 네 식구는
어머니의 사진 앞에 나란히 서서 절을 올렸다.
각자의 방식으로 기억하고,
각자의 마음으로 그리움을 전했다.
의식을 마친 뒤에는
한자리에 둘러앉아 음식을 나누어 먹었다.
전과 나물, 따뜻한 탕국.
남편은 제사에 올렸던 술을 천천히 마시며
조용히 음복을 했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의 우리는
타국에서 하나의 작은 나라처럼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날, 한자리에 모여 앉아 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크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설 연휴 동안
남편이 구해 온 한국 드라마 '대장금'을 보기 시작했다.
“한 편만 보자.”
그렇게 시작한 이야기는
어느새 다음 편, 또 다음 편으로 이어졌다.
집 밖은 여전히 낯설고 차가운 겨울 도시였다.
함박눈이 소복이 쌓이고,
집집마다 복을 기원하는 홍등이 걸려 있었다.
간간이 터지는 폭죽 소리가
고요한 공기를 흔들었다.
하지만 집 안의 우리는
완전히 다른 시간 속에 들어가 있었다.
화면 속 궁궐,
그리고 작지만 총명한 장금이의 어린 시절 이야기.
우리는 점점 더 깊이
그 시절의 한국으로 스며들었다.
부엌에서 간단한 음식을 가져와 나누어 먹으며
누군가는 억울한 장면에 화를 냈고,
누군가는 궁중 음식과 풍경에 감탄했다.
아이들은
그 드라마를 통해
자연스럽게 한국의 정서와 문화를 배워갔다.
비디오가 끝날 때마다
‘철컥’ 하는 소리가 났다.
누군가 자리에서 일어나
다음 테이프를 갈아 끼웠다.
그렇게 우리는
며칠에 걸쳐
한 편씩, 또 한 편씩 이야기를 이어 보았다.
돌이켜 보면
그 열흘의 설 연휴는
오랫동안 우리 가족의 기억 속에 머물러 있다.
타국의 깊은 겨울 한가운데서도
그 시간만큼은
우리가 익숙하게 살아온 방식으로
서로를 돌보고,
같은 마음을 나누며
우리는 우리만의 집을 만들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북경에서의 마지막 겨울을
보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