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같은 길을 오르고 있었다
4월 첫째 주의 새벽, 나는 북한산으로 향했다.
아직 어둠이 도시를 완전히 밀어내지 못한 시간, 잠든 서울을 뒤로하고 길을 나섰다.
공기는 겨울의 끝과 봄의 시작이 맞닿아 있는 경계에 머물러 있었다.
차가운 기운 속에 미세한 온기가 섞여 있었고, 길가의 나무들은 막 움트기 시작한 연둣빛을 조심스럽게 드러내고 있었다.
주차가 어렵다는 말을 떠올리며 새벽 다섯 시에 출발했지만, 도착했을 때 주차장은 이미 가득 차 있었다.
이 시간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는 사실이 낯설면서도 이상하게 위로가 되었다.
몇 바퀴를 돌다 겨우 빈자리를 찾았다.
차를 세우는 순간, 오늘 하루가 조용히 허락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5시 50분, 산에 올랐다.
산은 아직 완전히 깨어나지 않았고, 공기는 맑고 차가웠다.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몸속 깊은 곳이 씻겨 내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이미 내려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대체 몇 시에 오른 걸까.
스쳐 지나가는 얼굴에는 피로 대신 정돈된 기운이 담겨 있었다.
우리는 하루를 시작한다고 말하지만, 어떤 이들은 이미 하루를 한 번 건너온 표정이었다.
해가 떠오르며 산의 윤곽이 서서히 드러났다.
그 안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사람들, 그중에서도 젊은 얼굴들이었다.
등산로에는 20대와 30대, 그리고 40대가 자연스럽게 섞여 있었다.
한때는 중장년의 전유물처럼 느껴졌던 산이, 이제는 젊은 세대의 일상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나는 걸음을 늦추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이어폰을 꽂은 채 묵묵히 오르는 사람,
가벼운 대화를 나누며 리듬을 맞추는 사람,
혼자지만 흔들림 없이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
서로 다른 표정과 속도.
그러나 그 안에는 각자의 삶이 고요하게 실려 있었다.
지금의 청년들은 많은 것을 짊어지고 살아간다.
빠르게 변하는 세계, 끝이 보이지 않는 경쟁, 쉽게 예측할 수 없는 미래.
그럼에도 이 새벽에, 스스로의 의지로 이 산을 오르고 있다는 사실이 오래 남았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선택한 시간.
그 선택의 방향이, 그들을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고 있는 듯했다.
나는 그들을 보며 문득 안심했다.
아직 괜찮다, 라는 생각이 조용히 스며들었다.
그들 사이에는 또 다른 얼굴들이 섞여 있었다.
낯선 언어들이 공기 속에 흘렀다.
베트남과 몽골, 일본과 중국, 우즈베키스탄,
그리고 더 먼 곳에서 건너온 서양의 청년들까지.
서로 다른 말들이 오갔지만,
발걸음의 속도와 숨의 리듬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같은 방향으로 오르고 있었다.
나는 스쳐 지나며 가볍게 인사를 건넸다.
짧은 눈인사와 미소가 오갔다.
그 순간, 이곳이 하나의 작은 세계처럼 느껴졌다.
한때 우리는 바깥을 향해 나아가던 사람들이었다.
다른 언어를 배우고, 다른 문화를 동경하며, 더 넓은 곳으로 나가고자 했다.
이제는 그 세계가 우리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국적과 언어는 달랐지만,
같은 경사를 오르며 같은 호흡을 나누고 있었다.
각자의 삶을 짊어진 채.
나는 그들 사이를 지나며 마음속으로 짧게 기도했다.
이 길 위에 선 모든 이들이,
자신의 속도를 잃지 않기를.
지치더라도 멈추지 않기를.
끝내 자신을 포기하지 않기를.
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안을 채운 사람들은 충분히 많은 것을 말하고 있었다.
나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정상까지는 아직 거리가 남아 있었지만, 발걸음은 점점 가벼워졌다.
돌계단과 흙길을 지나며 숨은 조금씩 가빠졌고, 그 숨결 속에는 묘한 생기가 실려 있었다.
바람은 여전히 차가웠지만, 그 안에는 분명히 봄의 냄새가 섞여 있었다.
겨울 동안 굳어 있던 산이 천천히 풀리듯,
나 역시 그 흐름 속에서 조금씩 풀리고 있었다.
산길은 단순했고, 그 단순함이 오히려 마음을 고요하게 만들었다.
발걸음 소리, 고르는 숨소리, 멀리서 들리는 새소리.
그 반복되는 리듬 속에서, 나는 나 자신과 조용히 마주하고 있었다.
정상을 향한다는 것은 높이에 도달하는 일이 아니라,
그 과정 속에서 자신을 통과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서두르지 않았다.
그저 이 계절의 경계를 천천히 지나가고 있었다.
등산을 마치고 다시 집에 도착했을 때, 시계는 아직 오전 10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하루가 아직 한참 남아 있었다.
그 사실이 이상하게도 마음을 가볍게 만들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오늘을 조금 더 먼저 살아낸 것이 아닐까.
남들보다 서둘러 하루를 시작했다는 느낌이라기보다,
마치 하루를 하나 더 선물받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아무에게도 빼앗기지 않은 시간.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번 하루였다.
그래서 오늘은,
조금 느슨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조금 천천히 흘러가도 괜찮을 것 같았다.
새벽의 북한산은
내게 단지 풍경만을 보여준 것이 아니었다.
시간을 다르게 살아볼 수 있다는 감각을 건네주었다.
그리고 그 새벽을 오르던 청년들에게서,
나는 오늘을 살아가는 태도를 다시 배운 시간이었다.
각자의 속도로, 각자의 삶을 짊어진 채
묵묵히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으로.
그래서 나는,
오늘 하루를
조금 더 아끼고, 조금 더 단단하게 살아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