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버틴 자리들 [2장]
기억의 시작은 언제나 냄새였다.
그리고 나는 그 냄새 속에서 자라는 아이였다.
나는 1966년에 태어났다.
장미가 울타리를 붉게 물들이고 수국이 파랗게 고개를 들던 초여름,
서울 북아현동 굴레방다리 옆 작은 마을의 한옥 문간방에서였다.
내 기억의 첫 장면은 좁은 시장 골목과 그 문간방이다.
젊고 앳된 엄마, 아빠, 두 동생, 그리고 내가 그곳에서 소란스럽고도 다정하게 살았다.
연탄아궁이 냄새, 석탄난로 냄새,
김이 서린 이발소 창문 틈으로 새어 나오던
따뜻한 비누물 냄새와 젖은 머리카락이 엉켜 만든 공기 냄새,
소풍날 도시락을 열면 먼저 훅 끼쳐오던
새콤달콤한 단무지 향과 참기름 냄새.
아빠 셔츠에 밴 술 냄새와 비누 냄새도 그중 하나였다.
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냄새가 묘하게 섞여
아이였던 나에게는 이상할 만큼 따뜻한 온기가 되었다.
그 모든 것이 내 유년기의 향이자 온도였다.
아빠는 웃을 때 유난히 근사했다.
내가 상을 받아 오면 반달처럼 휘는 미소를 지으며
찐 밤을 꿴 목걸이를 내게 걸어주었다.
나는 그것을 금빛 메달처럼 목에 걸고 다녔고,
걸음을 옮기며 하나씩 밤을 빼먹었다.
서툴고 엉성한 사람이었지만,
아빠는 나에게만큼은 유독 다정한 아빠였다.
그래서 나는 아빠가 좋았다.
한여름 뚝섬 유원지의 기억은 아직도 선명하다.
엄마는 동생들과 모래사장에서 놀고,
아빠는 나를 등에 태우고 강 쪽으로 헤엄쳐 갔다.
수영을 못 하던 나였지만 아빠의 등 위에서는 이상하리만큼 두렵지 않았다.
강물 위 작은 바위섬에 오르면
아빠는 자리 잡고 앉아 강 한가운데를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다.
그 고요한 순간마다
아빠는 피난길에 헤어진 부모님, 잃어버린 고향 친구들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아빠의 등은 내게 가장 안전한 자리였지만
아빠의 뒷모습 한편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외로움이 살았다.
나는 그것을 그때는 몰랐지만,
이제는 안다.
그 외로움마저 아빠의 다정함을 더 깊게 만든다는 걸.
장날이면 아빠는 구겨진 비닐봉지에서
번데기, 삶은 달걀, 뻥튀기, 꽈배기, 찐빵, 국화빵을 하나씩 꺼냈다.
우리는 그것들을 나눠 먹었고
아빠는 내 손끝에 묻은 찌꺼기를 휴지로 조심스레 닦아주었다.
서툴지만 유일하고, 조용하지만 분명한 사랑이었다.
어느 밤, 술에 취한 아빠는
비틀거리면서도 나를 번쩍 들어 어깨에 태웠다.
차갑고 선선한 밤바람, 가로등 밑에서 반짝이던 먼지들,
그 어깨 위에서 바라보던 세계는
잠시나마 온전히 내 것이었다.
엄마는 황해도 사리원에서 왔다.
여섯 살에 피난길에 오른 어린 소녀.
춤과 노래를 좋아하던 예쁜 막내딸을
전쟁은 한순간에 장사꾼으로 만들어버렸다.
엄마는 남대문 새벽시장에서
자신의 몸보다 큰 봇짐을 지고 아현시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가게 문을 열기 전 반드시 목욕탕에 들렀다.
나는 그 이유를 몰라 “비싼 돈 아깝다”라고 생각했지만
이제야 이해한다.
그것은 엄마가 자기 하루를 단정히 세우는 단 하나의 의식이었다는 것을.
진열대에는 구김 하나 없는 새 옷들이 걸려 있었다.
엄마는 옷걸이 간격을 맞추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피곤이 묻었지만 목소리는 맑았다.
점심 무렵이면 시장은 냄새로 먼저 끓어올랐다.
달큼한 도넛 기름 냄새, 고구마튀김 향,
뜨끈한 번데기 국물 증기,
생선 좌판의 비린내,
군밤 연기의 은근한 단내까지—
뒤섞인 냄새들 속에서 엄마는 흥정했고 웃었다.
그러나 해가 질 무렵이면
돈통에는 남는 것이 거의 없었다.
장사는 할수록 빚이 쌓였고
그럼에도 엄마는 다음 날 새벽
어김없이 진열대를 정리하며
또 콧노래를 불렀다.
나는 그 시절 시장 냄새와
엄마의 웃음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리고 이제야 알게 되었다.
그 냄새들, 그 웃음들, 그 손길들은
가난한 집안의 고단함이 아니라,
우리 가족이 서로에게 내어준 다정함의 방식이었다는 것을.
아빠의 비틀거림 속에도,
엄마의 새벽걸음 속에도,
말로 표현하지 못한 사랑이 있었다.
나는 그들을 닮아
버티는 법을 배웠고,
사랑을 잃지 않는 법을 배웠고,
무너져도 다시 일어서는 법을 배웠다.
어린 시절의 냄새들은
결국 모두 나를 만든 향이었다.
나는 지금에서야
그 시절을 기꺼이 안아줄 수 있다.
가난했던 시절의 냄새들은
결국 모두 나를 버티게 한 향기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이제야, 그 향기를 기꺼이 품어 안는다.
이 글은 제가 가진 가장 오래된 풍경의 기록입니다.
어린 시절의 냄새, 시장의 소란, 부모의 얼굴,
그리고 말로 표현되지 않는 작은 온기들.
잊었다고 생각했던 장면들이 글을 쓰는 동안 하나둘 떠올라
마음 한쪽을 따뜻하게도, 때로는 저릿하게도 만들었습니다.
저는 완벽한 가족 속에서 자라지 않았습니다.
가난했고, 서툴렀고, 때로는 어른들의 외로움이 그대로 전해지는 집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시절을 다시 떠올리면
가장 따뜻한 느낌이 듭니다.
아마도 그때가 부족하지만 서로를 놓지 않았던, 가장 온전한 가족의 형태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시절이 있었기에
지금의 제가 버틸 수 있었음을
세월이 흐른 뒤에서야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이 글은 그때의 저를 떠올리며 적어두는 하나의 기억입니다.
그 시절의 모든 풍경이 아직도 제 안에 고요히 남아 있음을
그저 사실처럼 기록해 두고 싶었습니다.
어린 시절의 부모 이야기를 다시 꺼내 쓰게 된 것은
시간이 흐른 지금에서야 비로소 그 풍경을
다른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완벽하진 않았지만 그 안에는 분명히 존재했던
섬세하고 따뜻한 사랑을 이제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문득 떠오르는 장면들마다
그 기억들이 지금의 저를 지탱해 준 조용한 뿌리였음을 깨닫습니다.
흐려져 가는 과거의 온기를 글로 붙들어 두기 위해,
그리고 오늘의 저를 조금 더 온전히 살아가기 위해
이 기록을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