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버틴 자리들 [3장]
북아현동 작은 한옥을 떠난 뒤
우리 집은 조용히 기울기 시작했다.
아빠의 술, 엄마의 눈물, 무거워진 식탁 공기 속에서
삼 남매는 돌봄에서 미끄러지듯 구석으로 밀려났다.
그럼에도 학교의 라일락 향과 운동장의 햇살은
어린 나를 버티게 한 작은 희망이었다.
기울던 집 안에서도 나는 자라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불행은 늘 소리 없이 시작된다.”
우리 집의 균열도 그랬다.
처음엔 바람이 스치는 듯한 작은 금 같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발을 디딜 때마다 삐걱거리는 바닥이 되었다.
그 변화의 한가운데에서 나는 어린 마음으로
세상의 기울기를 누구보다 먼저 알아차려야 했다.
우리는 북아현동 작은 한옥집을 떠나
시장통의 판잣집으로 이사했다.
가게가 딸린 판잣집이었고,
그 뒤편 쪽방은 창문 하나 없는 어둑한 공간이었다.
나는 그 방에서 그림을 그리고 숙제를 했다.
가난했지만, 세상은 생각보다 그렇게 비참하지만은 않았다.
이사한 집은 학교에서 가까웠고,
나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운동장으로 달려가 맘껏 뛰놀 수 있었다.
나는 늘 통통 뛰는 아이였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했고,
무엇이든 발견하면 눈이 반짝이던, 호기심 많은 아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봄이 오면 학교 운동장에 퍼지는 라일락 향을 사랑했다.
보라색 잎 사이로 번지던 그 향은 작은 희망처럼,
하루를 살아가게 하는 이유가 되어주곤 했다.
나는 육상선수였고, 그림을 잘 그렸고,
노래도 곧잘 해서 상장을 모아가던 아이였다.
엄마는 시장 사람들에게 자주 나를 자랑했다.
“우리 딸은 학교에서 1등이래요.” 그 말 한마디가
나를 조금 더 씩씩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아빠는 내가 상장을 들고뛰어 들어오면
환하게 웃으며 나를 번쩍 들어 올렸다.
세상을 보여주듯 나를 높이 들어 올리던
그 미소가, 그 몸짓이 그 시절의 나를 행복하게 했다.
하지만 행복은 오래 머물지 않았다.
언제부턴가 불행이 우리 집 문틈으로 스며들었다.
아빠는 술에 젖었고, 집보다는 집 밖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고,
시장의 어른들과 술과 노름에 빠져들었다.
열 살의 나는 그 이유도 알지 못한 채
집 안으로 스며드는 불행의 기척을 또렷하게 감지했다.
엄마는 울었고, 아빠는 등을 돌렸다.
그 사이에서 나는 어린 나이에 너무 많은 진실과 마주해야 했다.
그 순간부터 기억은 얼룩처럼 번졌다.
어떤 지점부터는 아예 희미해졌다.
돌이켜보면, 기억하지 않기 위해
내가 먼저 놓아버린 장면들이었을 것이다.
불행이 우리 집 문턱을 넘던 날,
세상은 조용히 기울기 시작했다.
드라마처럼 요란하지 않았지만
어딘가에서 '뚝’ 하고 부서지는 소리가 내 마음엔 분명히 들렸다.
식탁 위 공기는 이유 없이 무거워졌고,
엄마의 말끝은 점점 닳아 없어졌고,
아빠의 발걸음은 날이 갈수록 느려졌다.
하루, 이틀, 또 하루…
우리 집은 기울어진 배처럼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내려앉았다.
그리고 어느 날, “우리 삼 남매는,
마치 잠시 내려놓고 잊힌 물건처럼
집 안 한쪽 구석에서 조용히 굴러다니기 시작했다.”
철없는 어른들은 더 철없는 아이들을 남겨둔 채
저마다의 무너짐을 간신히 붙잡고 있었다.
엄마는 눈물을 숨기려 했고,
아빠는 고개를 돌린 채 끝내 현실을 외면했다.
그 틈에서 나는 아무도 돌보지 않는 빈자리에서
스스로 살아남는 법을 배워야 했다.
아직 너무 어린 나이였지만,
그때 나는 누구보다 일찍
‘어른이 되는 법’을 알아버렸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그 혼란의 한가운데에서도 세상은 여전히 굴러가고 있었다.
아침이면 학교 종이 울렸고,
운동장은 언제나처럼 햇빛을 반사했고,
창문 너머로는 라일락 향이 어김없이 스며들었다.
나는 그 속에서
두 개의 세계를 동시에 사는 아이였다.
집에서는 조용히 숨을 죽이고,
학교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통통 뛰어다녀야 했다.
어른들의 상처를 대신 짊어진 채
아이의 껍데기를 쓰고 살아가는 일이
그때의 내게는 가장 어려운 숙제였다.
그럼에도 나는 끝내 무너지지 않았다.
누가 잡아주지 않아도
어디선가 작은 새싹 같은 힘이
아주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자라고 있었다.
어두운 방구석에서 그림을 그리고,
하굣길 언덕을 헐떡이며 뛰어오르고,
시장 사람들에게 엄마가 나를 자랑하던 순간을 떠올리고,
아빠가 나를 번쩍 안아 세상을 보여주던 미소를 떠올리며—
나는 조용히 견디고 또 견뎠다.
혼자 버텨야 했던 시간들이
결국 나를 만드는 토양이 되었다.
상처는 깊었지만
그 상처가 나를 기울이지는 못했다.
그저 나를 다른 방향으로 자라게 했을 뿐이다.
돌아보면,
그 시절은 참혹하면서도 기적 같은 시간이었다.
무너지는 집 안에서도
나는 자라는 일을 멈추지 않았으니까.
“기울던 집은 결국 무너졌지만, 기울던 나는 끝내 무너지지 않았다.”
지금도 아현동 골목을 지나면
어릴 적 내 그림자가 조용히 뒤따라온다.
그 아이에게 나는 말해주고 싶다.
“괜찮아, 정말 잘 자라줬어.”
이 글은 제가 오래도록 외면해 온 기억의 문을 조용히 다시 두드리는 과정에서 태어났습니다.
돌아보고 싶지 않았던 장면들, 어른들의 상처가 아이에게 고스란히 전해지던 순간들,
그 가운데에서 제가 너무 일찍 ‘어른의 표정’을 배워야 했던 시간들.
그 모든 것이 오랫동안 제 안에서 굳어 있었다는 것을
이 글을 쓰며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불행은 큰 소리로 오지 않았습니다.
스며들었고, 흔들렸고, 조금씩 기울었습니다.
그 균열 속에서 저는 세상의 기울기를 남들보다 먼저 감지하는 아이가 되어야 했습니다.
그 시절의 저는 늘 두 세계를 동시에 살고 있었지요.
집에서는 조용히 숨을 죽이고,
학교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뛰어다니는 아이.
그럼에도 저는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라일락 향이 스쳐 지나가던 운동장,
엄마가 시장 사람들에게 자랑하던 목소리,
아빠가 저를 번쩍 들어 세상을 보여주던 그 순간들—
그 작은 온기들이 제 안의 뿌리가 되어
저를 조용히 붙잡아주고 있었다는 것을
이제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글을 쓰며 깨달았습니다.
기억이 아픈 것은 여전히 그 기억 속의 아이가 돌아보지 못한 채
혼자 남아 있기 때문이라는 걸.
그래서 저는 그 아이에게 가 닿고 싶었습니다.
그 시절의 저를 바라보고, 말을 건네고,
늦었지만 따뜻하게 안아주고 싶었습니다.
이 글은 그래서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과거의 저를 다시 맞이하는 작은 의례입니다.
놓아버렸던 장면들을 다시 붙잡고,
흐릿해진 냄새와 감정을 다시 꺼내며,
그때의 제가 얼마나 최선을 다해 살아냈는지를
온전히 인정해 주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확실히 말할 수 있습니다.
"그때의 그 아이가 버텨준 덕분에
지금의 내가 존재한다고"
이 글이 저에게 그러했듯,
누군가의 오래된 마음의 균열에도
작은 위로처럼 닿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