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버틴 자리들 [6장]
내 어린 시절의 중심에는 ‘순복 언니’와 작은 다락방이 있었다.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천장에 닿던 낮은 공간,
햇빛은 하루에 한 번 손바닥만큼만 들어오는 방.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어둡고 눅눅한 다락방은
그 시절의 나에게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곳이었다.
아마 그곳에서는 누구도 우리를 급하게 재촉하지 않았고,
어른들의 한숨도 닿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엄마가 시장에서 장사를 하던 시절,
우리 집에는 ‘순복 언니’가 함께 살았다.
시골에서 올라와 남의 집을 돌보며 살아야 했던,
그 시대엔 흔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너무 슬픈 존재—어린 식모였다.
언니는 나보다 몇 살 많지 않았지만
이미 어른의 일을 해야 했다.
밥을 하고, 설거지를 하고, 막내를 업고 재우고,
빨랫감을 들었다 놓았다 하던 작은 몸이
늘 하루보다 먼저 지쳐 있었다.
그런데도 다락방에 올라오면
언니는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히, 아주 조용히 웃었다.
그 웃음만큼은 언니가 잠시나마
아이로 돌아올 수 있는
유일한 순간처럼 보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웃음은 지금 돌아봐도 쉽게 설명되지 않는다.
어린아이의 웃음치고는 너무 조용했고,
그 안에는 오래 참아온 사람이 지닌
묘하게 따뜻한 온기가 스며 있었다.
마치 밝음과 슬픔이 같은 자리에서
조용히 숨을 섞고 있는 듯한 웃음이었다.
다락방은 좁았고, 어두웠고,
겨울이면 유난히 춥고 여름이면 숨이 찼다.
그런데도 우리에게 그곳은 비밀스러운 쉼터였다.
낡은 집의 지붕 아래에서
우리는 서로의 숨소리에 기대어
아무도 모르는 세계를 만들었다.
순복 언니는 글도 잘 모르고, 학교에 다닌 적도 없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림은 정말 잘 그렸다.
언니는 늘 눈이 유난히 큰 여자 인형을 그렸다.
슬프고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는 눈.
그리고 그 인형에게 입힐 옷들을
정성껏 그린 뒤 조심스럽게 오려서 내게 건네주었다.
그 옷에 색을 칠하는 일은 언제나 내 몫이었다.
나는 색연필을 골라
종이 드레스의 주름 한 줄 한 줄에 색을 얹었다.
언니가 선을 만들고, 나는 그 안에 색을 채웠다.
그렇게 둘이 만들어낸 종이 인형의 세계는
어두운 다락방을 잠시 환상의 궁전으로 바꾸어놓곤 했다.
천장에는 곰팡이가 피어 있었고,
바닥은 삐걱거렸고,
우리 손은 늘 거칠고 더러웠지만
그 작은 인형들 사이에서는
우리는 누구보다 화려한 삶을 상상하는 아이들이었다.
아마 그 무렵부터였을 것이다.
누군가가 그은 선 위에
내 마음의 색을 얹는 일—
그 단순하고도 신비한 행위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는 법을 조금씩 배워가기 시작한 때가.
우리는 종이 인형을 가지고
궁전에 살고, 왕자를 만나고,
가난에서 벗어나 행복해지는 이야기들을 반복했다.
언니의 이야기는 항상 같은 결말로 끝났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결말은
언니가 평생 가보지 못했을지도 모를 ‘다른 삶’의 문을
끝까지 열어두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몇 해를 보내고
어느 날, 순복 언니는 말했다.
“오빠들을 찾으러 갈 거야.”
그 말이 언니가 남긴 마지막 문장이었다.
언니는 조용히 떠났다.
가방 하나 없이, 누구의 배웅도 없이,
다락방 문턱을 넘던 언니의 뒷모습이
지금도 내 기억 한 구석에 남아 있다.
그리고 나는 다시는 언니를 보지 못했다.
언니가 떠난 뒤에야
그 인형의 큰 눈동자를 다시 바라볼 수 있었다.
어릴 땐 단지 ‘슬픈 얼굴’이라고만 생각했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 돌아보니
그 눈빛은 체념이 아니라
멈추지 않고자 하는 작은 희망의 흔들림이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아주 조용히 깨달았다.
언니가 짊어진 세상은
내가 상상하던 것보다 훨씬 더 험했을지 모른다는 걸.
그리고 동시에—
언니의 삶보다 내 삶에는
조금 더 많은 가능성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나는 적어도
엄마와 아빠, 그리고 두 동생이 있었다.
비록 가난하고 완벽하지 않았지만,
내게는 부를 수 있는 이름이 있는 가족이 있었다.
그 작은 울타리는
내가 앞으로 걸어갈 수 있는 길을
조용히 남겨준 셈이었다.
순복 언니가 만들어주던 종이 인형의 옷처럼,
삶도 때로는 갈아입을 수 있다는 것을.
어린 나는 그 사실을 어렴풋이 믿었고
그 믿음은 이후의 긴 시간 동안
나를 버티게 한 오래된 힘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그 시절 간직했던 꿈과 마음들이
지금의 나를 만든 가장 오래된 힘이었다.
이 글은 제 어린 시절 한 귀퉁이에 조용히 놓여 있던 풍경을 다시 꺼내어 쓴 기록입니다.
순복 언니와 함께 지내던 다락방, 종이 인형, 어슴푸레한 빛,
그리고 말로 설명할 수 없지만 분명 존재했던 작은 온기들.
그 시절은 가난했고 어두웠지만, 돌이켜보면 제 삶을 지탱해 준 가장 부드러운 시작이었습니다.
글을 쓰는 동안, 마음 한쪽에서 오래 묵힌 상자를 천천히 여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기억은 오히려 흐릿한 부분이 더 많았지만, 그 흐릿함이 당시의 감정을 더욱 정확히 떠올리게 해 주었습니다.
순복 언니는 제게 가족이자 친구, 또 다른 나와도 같은 존재였습니다.
학교에 다니지 못했고 이름 하나 말고는 가진 것이 거의 없던 언니가
종이 인형을 그리고, 그 인형에게 아름다운 이름을 붙여주던 모습을 저는 지금도 기억합니다.
그 작은 놀이 속에서 우리는 현실보다 조금 더 나은 세상을 조용히 꿈꾸고 있었습니다.
세월이 흐른 지금에서야 깨닫습니다.
다락방에서 함께 만든 그 소박한 세계가
제게는 상상력의 시작이자, 삶을 견디는 가장 오래된 힘이었다는 것을.
다락방에서 우리는 종이 인형에게 새로운 옷을 입히며 내일을 만들었습니다.
그때는 알지 못했습니다.
삶도 때로는 그렇게, 갈아입을 수 있다는 것을.
당장 원하는 모양을 살 수는 없었지만,
그림을 그리고 색을 고르며 만들어낸 작은 세계가
언젠가는 저를 더 넓은 현실로 데려다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 믿음은 정말로 오랜 시간 동안 저를 버티게 했습니다.
지금의 저는 그때 배운 방식을 삶 곳곳에서 다시 꺼내 씁니다.
현실이 버겁고 마음이 무거울 때면
다락방의 소녀처럼 내 삶의 색을 다시 고르고,
오늘에 더 잘 맞는 마음을 천천히 갈아입습니다.
크게 변화하지 않아도,
마음을 조금 더 따뜻한 쪽으로 옮기는 일만으로도
삶은 다시 펼쳐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글을 쓰며 저는 순복 언니를, 그리고 그 시절의 저를 조용히 떠올렸습니다.
나보다 먼저 어른이 되어야 했던 언니의 그림들,
그 슬프고도 단단한 눈빛을 이제야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시절을 지나온 저 자신에게도
늦었지만 이렇게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때 그 작은 생각 하나로 버텼던 네가, 지금 돌아보면 참 대견하다.”
이 기록은 지난 시간을 미화하거나 상처를 과장하려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그저 어린 시절의 나와 순복 언니를 조용히 안아주고자 한 마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 시절이 있었기에, 저는 지금의 삶을 조금 더 단단히 딛고 서 있을 수 있습니다.
오래된 마음의 결을 다시 어루만지며,
지금의 저를 만들어준 힘들을 잊지 않기 위해 이 글을 남깁니다.
누군가의 어린 시절에도 이런 작은 빛이 있었기를,
그리고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여전히 갈아입을 수 있는 내일이 남아 있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