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마음이 접히던 소리

마음이 버틴 자리들 [5장]

by 이도화


"현실의 벽과 꿈 사이에서 조용히 마음 한쪽이 접히던 순간."

내 유년기는 조용히 접히는 소리들로 만들어진 시간이었다.


뒤돌아보면, 그때의 나는 조금 일찍 철이 들었다.
철이 든다는 것은, 마음 한쪽에서 조용히 ‘무언가가 접히는’ 소리를
스스로 들을 줄 알게 되는 일이라는 것을.
그 시절,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그 접힌 마음의 층 위로, 또 다른 시간이 조용히 쌓여갔다.”


꿈은 컸지만 손끝에 쥘 수 있는 것들은 늘 작았다.
그 사실을 처음 또렷하게 느낀 순간은 누구의 손가락질 때문도,
남들이 가진 것을 갖지 못해서도 아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를 향한 칭찬의 목소리가 들리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어릴 때부터 나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새 도화지를 꺼낼 때 나는 얇은 종이가 서로 비벼지며 내는 바스락 거림이 좋았고,
4B 연필심이 종이결을 긁어내는 서걱거림은
손끝을 타고 가슴까지 작은 떨림이 되어 스며들었다.
크레파스를 쥐면 약간 미끄럽고 둔탁한 촉감이
손바닥에 남아 마음을 조용히 가라앉혀주었다.


색을 섞는 일은 내겐 작은 기적 같았다.
두 가지 색을 살짝 문질렀을 뿐인데
전혀 다른 색이 생겨나는 것이
세상이 나만 알고 있는 비밀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


선생님들은 늘 말했다.
“너는 색을 보는 눈이 있다.”
그 말은 어린 나에게 큰 힘이었다.
복도에는 종종 내 그림이 걸려 있었고,
그 아래에 서서 그림을 바라보면
어쩐지 세상이 조금 넓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그때, 내가 어떤 아이인지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느 날,
미술 시간에 선생님이 내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더니
조용히 물으셨다.


“방과 후에 남아서… 그림 더 그려볼래?”
그 한 마디가 아직도 귀에 남아 있다.


마치 누군가가 내 안 깊은 곳에서
살며시 불을 켜주는 느낌이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수업이 끝나면 누구보다 천천히 가방을 챙겨
교실 맨 뒤 창가 자리로 갔다.
해 질 녘 노란빛이 교실 바닥에 길게 드리워지고,
창문 아래 놓인 커다란 스케치북은
마치 나만을 위한 무대 같았다.

image.png "방과 후에 홀로 남아 그림을 그리던 시간."

선생님은 가끔 내 옆에 앉아
연필을 잡은 손 모양을 살짝 고쳐주곤 했다.
내가 천천히, 조심스럽게 선을 그리면
선생님은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림은 보는 게 반이야.
천천히, 더 천천히 보렴.”


그 말이 종이 위로 살며시 내려앉듯
내 마음에도 고요하게 스며들었다.


처음으로 누군가가 내 손끝에 있던 조심스러움을 칭찬해 준 것 같았다.


우리 둘만 남은 교실은
종종거리던 아이들의 발소리가 사라지고
종이 긁히는 소리와
석양이 기울며 점점 따뜻해지는 공기만 남았다.
나는 연필심이 종이를 미끄러지는 그 촉감,
그 소리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그 순간만큼은
집의 소음도, 시장통의 복잡함도
아빠의 술 냄새도 모두 멀어졌고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시간이 내 앞에 펼쳐졌다.


선생님은 내게 풍경을 보고,
빛의 방향을 보고,
그림자를 느끼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그러다 문득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넌… 보는 눈이 있어.
그림은 기술보다 마음이 더 중요해.”


그 말은 열 살짜리였던 내게
그 누구의 칭찬보다 더 따뜻하게 스며들었다.
'마음이 중요하다'는 말이
처음으로 ‘내 마음도 소중하다’는 뜻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몇 달을 배우고,
선생님의 추천으로 전국 미술대회에 나가 상을 받았을 때
세상에서 가장 먼저 떠오른 얼굴도
선생님이었다.


나는 아직도 그날의 상장에 적힌 ‘입상’이라는 글자보다
해 질 녘 교실에 내려앉던 노란빛,
연필심이 종이를 긁어내던 서걱대는 감촉,
화선지에 번져가던 색의 잔향을 더 또렷이 기억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선생님이 내 그림을 천천히 바라보다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참 잘했다”
그렇게 말해주던 그 순간이
아직도 가장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 시간들은
내가 처음으로 ‘나’를 발견하던 순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미술 선생님이 내 책상 앞에 조용히 서더니 말했다.


“너, 미술학원에 한번 가보자.
배우면… 훨씬 멀리 갈 수 있을 것 같아.”


그 말은 마치 닫혀 있던 창문이
갑자기 ‘쾅’ 하고 열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분필 가루가 가라앉은 교실 안으로
밖에서 날아오던 라일락 향이 스며드는 것만 같았다.


내 앞에 아주 길고 밝은 길이
갑자기 펼쳐지는 느낌이었다.
그 길 끝에는
내가 마음속으로만 몰래 그려오던 세계,
색과 빛과 선으로만 이루어진 어떤 세상이
조용히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았다.


그날 나는
선생님의 말 한마디가
아이 하나의 마음을 얼마나 멀리 데려갈 수 있는지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나는 그 길로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
선생님이 한 말을 숨 넘어가듯 엄마에게 꺼냈다.


엄마는 내 말을 들은 뒤
한참을 말없이 있었다.
표정도, 숨결도,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잠시 뒤 아주 짧게 말했다.


“학원비는… 어렵다.”


그 말은 문장이라기보다
조심스레 내려놓는 한숨 같았다.
더 이상의 설명도, 미안함도 없었다.
엄마는 곧바로 일상의 동작으로 돌아갔다.
마치 방금 오간 이야기가
아이의 꿈이 아니라
잠시 스쳐간 바람 같은 것이기라도 한 듯.


나는 엄마의 말보다
그 무심한 태도에서 답을 더 정확히 알았다.


그 순간 처음 깨달았다.
가정형편이라는 것은
아이의 설렘이나 기대 따위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걸.
“꿈은 가벼웠고, 현실은 늘 묵직했다.”


그날 밤,
나는 창문도 없는 쪽방의 천장을 바라보며 오래 누워 있었다.
어둠 속에서 가만히 눈을 감자
도화지 한 장이 천천히 접혀가는 상상이 떠올랐다.


그 도화지 위에는
내가 좋아하던 색들이 남아 있었고,
접히는 소리는 아주 작았지만
내 마음에는 크게 ‘탁’ 하고 부딪혀 울렸다.
꿈이 종이처럼 얇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그래도 그림을 완전히 놓을 수는 없었다.
학교 미술실에서 남은 물감을 몰래 덜어오기도 했고,


몽당 크레파스 하나를 몇 날 며칠 쥐고서
손가락에 색이 스며들 만큼 그림을 그렸다.


운동장 구석에 쪼그려 앉아
라일락 향이 바람을 타고 떠다니는 동안,
스케치북이 없는 날에는
손바닥 위에 아주 조용히 선을 그어보기도 했다.


그 선은 금방 지워졌지만,
내 안에서 꿈은 그렇게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그림을 그리는 시간은
현실의 벽을 통과해 다른 세계로 스며드는 순간이었다.
좁은 쪽방도, 시장통의 어지러운 소리도
그때만큼은 모두 멀어졌다.


선 하나, 색 하나를 얹을 때마다
내 안에 조용히 문이 열렸고
그 문 너머에는
누구도 훔쳐갈 수 없는 나만의 세계가 있었다.
작고 여린 세계였지만
그곳에서만큼은 내가 흔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 세계를 누구보다 사랑했다.
하지만 그것이 ‘꿈’이라는 이름을 갖기엔
우리 집의 형편은 너무 좁고,
세상은 너무 넓어 보였다.
꿈과 현실 사이의 간격은
늘 내가 감당하기엔 조금 벅찼다.


그래서 어느 순간,
나는 마음속으로 아주 조용히 중얼거렸다.


‘여기까지인가 보구나.’


그 말은 소리도 없었고,
누구에게 들려줄 수도 없는 문장이었다.
나 스스로도 제대로 붙잡지 못한 채
천천히, 아주 천천히 마음속 깊은 곳으로 가라앉았다.


뒤돌아보면,
그때의 나는 남들보다 조금 일찍 철이 들었다.


철이 든다는 건
마음 한쪽이 조용히 접히는 소리와 함께 찾아오는 일이다.


그 접힘은 늘 아팠지만,
그 소리를 견디며
나는 내 마음을 잃지 않는 법을 배웠다.


그 조용한 배움들이
언젠가 나를 단단히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이제야 알겠다.


그때 접혀 있던 마음의 모서리들이
지금의 나를 더 부드러운 사람으로 만들었다는 것을.


“그 시절 접어두어야 했던 꿈과 마음들이
지금의 나를 지탱하는 가장 오래된 힘이었다.”

스크린샷 2025-11-10 231124.png

✍️ 작가 노트

이 글은 제가 가진 오래된 마음의 결을 천천히 더듬어 쓴 기록입니다.
어린 시절의 꿈, 접혀야 했던 순간들,
그리고 그 사이 조용히 자라던 ‘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어릴 때 저는 그림을 좋아했고,
그림 앞에서만큼은 세상 누구보다 솔직한 아이였습니다.
그때 미술 선생님이 내게 해준 말—


“그림은 기술보다 마음이 더 중요해.”


그 문장은 열 살의 제게
처음으로 *‘내 마음도 소중하다’*는 뜻처럼 스며들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때 선생님이 일러준 **‘마음을 먼저 보는 법’**은
그림을 그리는 데서만 사용된 기술이 아니었습니다.


는 미술 학도의 길을 끝까지 걷지는 못했지만,
그 시절 손끝으로 익혔던 감각들은
지금의 저를 살아가게 하는 또 다른 형태의 창작이 되었습니다.
그때의 배움은 제 삶을 들여다보고,
저를 보듬는 방식으로 조용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글을 쓴 이유는 단순한 회상이 아닙니다.
잊힌 줄 알았던 장면들을 다시 꺼내어
그때의 저를 조용히 안아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가난 때문에 접어야 했던 꿈들,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어린 마음들은
사실 지금의 저를 움직이는 오래된 힘이었다는 것을
세월이 흐른 뒤에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과거를 미화하려는 마음도,
상처를 과장하려는 마음도 없습니다.
그저 어린 제가 지나온 시간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싶었습니다.


접혀 있던 마음을 다시 펼치는 데는 시간이 걸렸지만,
그 시간 덕분에 저는 조금 더 너그러워지고,
조금 더 단정한 마음으로 오늘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기록은,
그 오래된 힘들을 잊지 않기 위해
그리고 지금의 저를 더 충실하게 살아가기 위해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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