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가장 오래된 놀이터

마음이 버틴 자리들 [7장]

by 이도화


"새벽 시장에서 짐보따리를 지키던 시절."

순복 언니가 떠난 뒤,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익숙했던 시장통의 소음도, 다락방의 적막도,
어른들의 낮은 한숨 소리도
전과는 다른 결의 소리로 내게 닿기 시작했다. 같은 소리였지만,
조금 더 또렷하게, 조금 더 깊숙이 안으로 스며들었다.


그 변화 속에서
나 역시 서서히 달라지고 있었다.


밝고 명랑하게 통통 뛰어다니던 아이는
어느새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고,
그 시간을 애써 받아들이며
말수가 줄고 마음이 안으로 접히는
내성적인 아이로 변해가고 있었다.
집에는 늘 동생들이 있었지만
어린 나는 이상하리만큼 항상 혼자라는 느낌 속에 있었다.


어수선한 환경 속에서도
내 생각은 늘 한 발짝 떨어진 곳에 있었고,
누군가의 보살핌과는 거리가 먼
소외와 적막 속에서
나는 그렇게 조금씩
혼자 있는 법을 배워가고 있었다.


초등학교 2학년 무렵,
나는 새벽에 일어나 엄마를 도와
새벽 시장에 나가기 시작했다.


누가 시켜서 한 일은 아니었다.
어느 순간부터 새벽 네 시 알람 소리에 눈을 뜨고
엄마를 따라나서는 일이
자연스럽게 일상이 되었을 뿐이다.


첫 버스를 타고
남대문시장으로, 동대문 평화시장으로
옷 도매시장을 오가며
엄마가 물건을 고르고, 반품하고,
흥정하는 동안
나는 말없이 짐보따리를 지키는 역할을 맡았다.


미로처럼 얽힌 상가 골목을
이곳저곳 옮겨 다니는 동안에도
나는 늘 한 걸음 떨어진 자리에서
그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거운 짐보따리 옆에서
사람들의 말투와 손짓,
계산과 눈치가 오가는 시간을
그저 조용히 곁에서 지켜보며
그 세계의 리듬을 몸으로 익혔다.


장을 마치고 나면
잠시 숨을 고른 우리는
시장통 어귀에 나란히 앉아
뜨끈한 국밥으로 말없이 허기를 채웠다.


그 국밥 한 그릇을 비우고 나면
우리는 무거운 짐보따리를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각자의 하루로 흩어졌다.
엄마는 장사의 자리로, 나는 학교로.


그 무렵의 나는
아이였지만 이미
어른의 시간 속에 살고 있었다.


새벽의 공기는
놀이나 꿈이 아니라
움직임과 계산으로 가득 차 있었고,
나는 그 시간 속에서
어린아이답게 굴 기회를
자연스럽게 건너뛰고 있었다.


누군가 철이 들었다고 말해주지 않아도
나는 이미 어른들의 리듬에 맞춰
하루를 시작하는 법을
몸으로 배우고 있었다.


아침 햇살이 퍼질 무렵이면
나는 다시 아이의 자리로 돌아갔지만,
그 새벽의 시간들은
잠시 맡았다가 돌려준 것이 아니라
이미 내 안에
깊게 남아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또래 아이들 사이에 섞여 있어도
나는 종종 한 박자 느린 사람처럼
세상을 바라보곤 했다.


어른들의 눈치를 살피며
조용히 움직이던 나는
어느 순간부터
내가 그들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할 것만 같았다.


그래야 모든 것이 좋아질 것 같았고,
내가 잘하면
다시 행복하던
원래의 우리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철이 든다는 것은
어쩌면 누군가의 고통을
함께 느끼는 일인지도 모른다.


나는 엄마의 힘겨움과
아빠의 숨 가쁜 침묵을
말없이 함께 느끼며
그 시간들을
차곡차곡 내 안에 쌓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쌓인 시간들 속에서
나는 점점
숨을 참고 사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 사이에 있어도
잠시라도 숨을 고를 수 있는 곳을
마음속으로
계속 찾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시장통의 활기를 사랑한다.
북적거림과 상인들의 왁자지껄한 목소리,
서로의 숨결이 뒤엉킨 그 부산스러운 호흡을
지금도 여전히 사랑한다.


하지만 그곳에서의 나는 늘 편하지 않았고,
몸과 마음이 동시에 바빠
잠시도 제자리에 머물 수 없었다.
시장통 안의 집에서는
나는 끝내 온전히 숨을 쉬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새로운 놀이터를 발견했다.


그곳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 아니었고,
누군가를 살피지 않아도,
눈치를 보며 자리를 옮기지 않아도 되는
아주 작은 시간의 틈 같은 장소였다.


방과 후면 나는 집으로 곧장 돌아가지 않고
아현동 언덕을 천천히 올라
오래된 성당을 향하곤 했다.
그 길에서는 발걸음을 재촉할 이유도,
누군가의 속도에 나를 맞출 필요도 없었다.


성당 앞에 서면
십자가 아래로 햇빛이 접히듯 내려앉아 있었고,
무거운 나무문을 열 때마다
묵주가 스치는 작은 소리와
오래된 성가책의 냄새가
조용히 공기 속에 퍼졌다.
그 순간만큼은
내가 서 있던 바깥의 세계가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잠시 멀어지는 듯했다.


성당 한편에는
아이들이 드나들던 작은 도서실이 있었는데,
비좁은 책장에는
손때 묻은 책들이 빼곡히 꽂혀 있었고
바랜 책 등을 사이로
오래된 시간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창문은 늘 반쯤 열려 있어 바람이 스칠 때마다
먼지가 은은하게 일렁였고,
그 느린 움직임마저도
나를 재촉하지는 않았다.

스크린샷 2026-01-25 113400.png "나의 가장 오래된 놀이터_성당 도서관."

나는 도서실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손때가 눌어붙은 동화책과 위인전을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넘기곤 했다.


책 속의 인물들은
소리 없이 말을 걸어왔고,
그 시간만큼은
세상이 잠시
나를 놓아주는 것만 같았다.


그곳에서는
누구도 나를 부르지 않았고,
아무도 내게
무엇을 해내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시장통의 소란도,
집안에 늘 드리워져 있던 무게도
성당의 문턱을 넘지 못한 채
그대로
밖에 머물러 있었다.


나는 그 조용한 공간에서
비로소
‘정적’이라는 감각을 알게 되었다.


책장을 넘기는 작은 소리,
창밖에서 들려오는 까치 울음,
멀리서 천천히 울려오는 종소리—
그 모든 소리들이
어린 내 마음속으로
부드럽게 스며들었다.


돌아보면 그 도서실은
내가 세상을 견디기 위해
처음으로 스스로 만들어 낸
‘안쪽 방’과도 같았다.


말보다 생각이 먼저 자라는 아이,
고요 속에서 마음을 가다듬는 아이가
그곳에서
아주 천천히
만들어지고 있었다.


읽고, 생각하고, 끄적거리며
나는 나 자신을
지키는 방법을
조금씩 배워갔다.


문장을 읽다 잠시 멈추는 법,
스치듯 지나가는 생각을
붙잡아 적는 법,
그리고 조용히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법.


연필을 쥐고
종이 앞에 앉아 있는 동안만큼은
나는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아도 되었고,
누구의 삶도
대신 책임질 필요가 없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무언가를 잘 해내는 일이 아니라
그저 숨을 쉬는 일에
가까웠다.


머릿속에 가득 차 있던 말들을
조용히 꺼내
종이 위에 내려놓고 나면,
그제야
내 마음의 속도는
조금 느려질 수 있었다.


그 시간 속에서
나는 아이로 돌아가기도 했고,
어른 흉내를
잠시 내려놓을 수도 있었다.


누구의 기대도 닿지 않는 자리에서
나는 처음으로
나 자신과
같은 속도로
걸을 수 있었다.


그 시간들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어린 나의 내면에는
내가 숨 쉬며 살아갈 수 있는
또 하나의 공간이
조금씩, 그러나 분명하게
넓어지고 있었다.


어린 시절의 적막은
겉으로 보면 고독처럼 보였지만,
그 고독은
내면의 세계를
깊게 만들어주었다.


사람의 표정과 말 사이에 숨어 있는
미묘한 감정을 읽는 감각,
시장 소음 속에서도
마음을 다스리는 법,
어른들의 심리를
조심스레 짐작하던 습관,
그리고
조용한 자리를 찾아
스스로 머무는 태도까지—


그 모든 시간들이
어린 나를 지탱해 준
보이지 않는
부양토였음을
이제야 비로소 알게 된다.


그리고 그 부양토 위에서
나는 아주 천천히,
그러나 흔들림 없이
‘나’라는 사람을
키워가고 있었다.


그곳은
내가 발견한
나만의, 그리고 가장 오래된
놀이터였다.

✍️ 작가 노트

이 글은
어린 시절의 기억을 돌아보며 쓴 기록입니다.
특별한 사건을 중심에 두기보다는,
그 시간을 통과하며
내 안에 천천히 형성된
태도와 감각에 시선을 두었습니다.


어린 저는
또래보다 조금 이른 시기에
어른들의 리듬 속으로 들어가 있었습니다.
새벽마다 엄마를 따라나섰던 시장의 시간은
노동이라기보다는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먼저 배우는 시간이었습니다.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보는 시선,
말보다 먼저 상황을 읽는 습관,
쉽게 앞에 나서기보다
조용히 흐름을 살피는 태도는
그때 자연스럽게
몸에 밴 것들이었습니다.


시끌벅적한 시장과
어수선한 집 안에서는
온전히 숨을 쉬기 어려웠습니다.
그런 저에게
성당 도서실은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작은 ‘안쪽 방’이 되어 주었습니다.


이 글은
고독을 미화하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다만 혼자 있는 시간이
한 사람의 내면을
어떻게 단단하게 만들 수 있는지,
그 고요가
어떻게 삶을 견디게 하는 힘이 되었는지를
담담하게 기록하고 싶었습니다.


지금의 저는 여전히
조용한 자리를 찾고,
말보다 생각을 먼저 정리하며,
글을 통해
숨을 고르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만들어진 그 ‘안쪽 방’은
지금도
제 삶의 바탕으로
조용히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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