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버틴 자리들 [8장]
초등학교 시절을 떠올리면 기억은 늘 한 장면으로 정리되지 않는다.
나무 책걸상의 삐걱임과 종이 책 넘기는 소리,
교탁을 두드리는 지휘봉 소리, 색분필이 칠판을 긁는 소리,
헝겊 지우개 터는 소리까지
겨울이면
젖은 운동화에서 올라오던 냄새와
겨울 외투에 남아 있던 습기,
문이 열릴 때마다 스며들던
차갑고 마른 겨울 공기의 냄새까지,
서로 다른 감각들이 겹겹이 포개진 채
한꺼번에 떠오른다.
그 많은 장면들 사이에서
아직도 유난히 또렷하게 남아 있는 기억은
겨울 교실 한가운데 놓였던 철제 난로 근처의 따스함이다.
겨울이 깊어지면 교실 중앙에 난로가 들어왔다.
그리고 조개탄 양동이가 왔다.
조개탄이 철제 난로 안에 채워질 때마다
뚜껑이 덜컹 소리를 냈고,
잠시 후 난로 표면으로 붉은 기운이 비치기 시작했다.
차갑던 교실 공기 위로 따스함이 번지고
화기를 잘 먹은 조개탄의 뭉근한 냄새가 교실에 천천히 퍼졌다.
담임 선생님은 철제 주전자에
물을 붓고 볶은 보리 한 줌을 넣어 끓였다.
교실 중앙에는 보리차 끓는 냄새가 퍼졌고
그 냄새는 교실 전체를 오래 붙들어 두었다.
선생님은 난로 뚜껑을 열어 불길을 한 번 살핀 뒤
난로 근처 가장 가까운 자리를 나에게 가리켰다.
“추우니 여기서 공부해라.”
키가 컸던 나는 교실 맨 뒤쪽에 앉아 코 끝을 훌쩍거리며,
손끝을 녹이려고 비비며 공부하고 있었다.
나는 어느 날부터인가 가끔 교실 중앙,
난로 옆 가장 따뜻한 자리에 앉게 되었다.
손끝은 금세 풀렸고 얼굴에는 다시 온기가 돌았다.
하지만 몸은 풀리는데 등은 괜히 곧게 세워졌다.
난로의 열기 때문인지 아이들의 시선 때문인지 얼굴은 발그레 달아올랐다.
난로 가까이에 앉아 있으면 조개탄 냄새가 옷감 사이로 스며들었다.
외투 소매를 스칠 때마다 묘하게 따뜻하고 향긋한 냄새가 났다.
난로 옆, 가장 따뜻한 그 자리는
누군가의 배려로 주어진 자리였고,
나는 그 의미를 어렴풋하게 알고 있었다.
고맙다는 마음과 괜히 눈에 띄는 것 같다는 마음이
늘 함께 따라왔다.
그럼에도 그 시절의 나는 그 자리가 좋았다.
학교는 내가 집보다 오래 머무는 곳이었다.
수업 종이 울리고, 책을 펴고,
정해진 하루의 리듬 안에서 흘러가는
그 안정된 시간이 편안하고 좋았다.
난로 옆 자리에 앉아 있으면
온몸에 닿는 그 온기만으로도
오늘 하루는 무사히 잘 지나가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때의 나는 이 따뜻함이 오래 이어질 거라고
아무 의심 없이 생각했다.
교실의 자리도, 선생님의 시선도,
학교라는 안정된 공간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거라고.
하지만 모든 시간은 같은 속도로 흐르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그 세상의 리듬이
조금씩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변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때의 나는 아직 알지 못했다.
다만,
이제 와 돌아보면
그 겨울의 난로 옆 자리는
내가 세상으로부터
마지막으로
아무 조건 없이
보호받고 있다고
느꼈던 자리였는지도 모른다.
이 글은 초등학교 시절 겨울 교실의 한 장면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기억은 늘 사건보다 감각으로 먼저 돌아옵니다. 소리와 냄새, 공기의 온도와 같은 것들이 겹쳐지며 하나의 시간으로 떠오릅니다.
겨울 교실 중앙에 놓였던 난로 옆 자리는 단순히 따뜻한 공간이 아니었습니다.
그곳은 누군가의 배려가 조용히 머물던 자리였고, 아무 이유를 묻지 않고 보호받고 있다는 감각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온전히 느꼈던 자리였습니다.
어린 시절의 저는 그 의미를 명확히 알지 못한 채 그 온기를 받아들였습니다.
고마움과 함께 괜히 눈에 띄는 것 같다는 마음이 공존했던 기억 또한 지금에서야 분명해졌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삶의 리듬은 달라졌고, 그때의 안정과 보호는 더 이상 당연한 것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겨울, 난로 옆의 온기는 아직도 마음에 오래 남아 있습니다.
이 글은 행복했던 시절을 기록한 글이라기보다, 행복하다고 믿을 수 있었던 시간을
조용히 붙잡아 두려는 기록에 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