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 내리는 쓰레기
(2024년 겨울에 쓴 글입니다)
하늘에서 눈이 떨어진다. 삽질을 멈추고 허공을 바라봤다. 황망한 눈빛으로 방금 눈을 치운 곳을 향해 떨어지는 눈꽃을 보았다. 주말이었다. 평일 간 온갖 고생을 다 하고 겨우 맞이한 주말이었다. 평일에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눈이 주말이 되자마자 작정한 듯 펑펑 쏟아졌다. 덕분에 주말 아침부터 몇 시간 동안 눈을 퍼고 얼음을 깨고 염화칼슘을 뿌렸다. 하지만 눈은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대로면 온종일 제설만 하다가 하루가 날아갈 게 뻔했다. 한숨이 나왔다. 왜 군인이 되면 눈을 싫어하게 되는지 온몸으로 실감했다.
나는 눈을 좋아했다. 사람은 자신이 태어난 계절을 사랑하게 된다고 하던가. 늦가을에 태어난 나는 사계절 중 겨울을 가장 좋아한다. 이유라면 여러 댈 수 있다. 벌레가 없어서, 땀이 안 나서, 눈이 와서, 길거리 붕어빵을 먹을 수 있어서…. 하지만 다 진짜 이유는 아닌 것 같다. 사실 사람이 무언가를 진정으로 좋아할 때 이유 따위 존재하지 않는다. 어쩌면 특별한 이유 없이도 좋아하는 것이 ‘좋아한다’의 필요조건일지도 모른다.
하나로마트는 우리 동네의 랜드마크였다. 친구들과 약속이라도 하면 꼭 하나로마트에서 만났다. 공부방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 길이면 하나로마트를 지났다. 지날 때마다 항상 노래가 들렸다. ‘어서 오세요. 빨리 와요….“ 나와 친구들은 그 노래를 멋대로 개사하여 부르고 다녔다. 가끔 주머니에 지폐 몇 장 들어 있는 날이면 마트 문을 열고 들어가 아이스크림을 꺼내 사 먹었다. 부모님과 함께 장 보러 오면 나는 작은 몸집으로 내 몸만한 카트를 이리저리 끌며 물건을 담았다. 가격 걱정 없이 먹고 싶은 거 죄다 쓸어 담았다. 그런 동네 마트였다.
마트 뒤편에 공터가 있었다. 아마 텃밭으로 쓰였던, 몇 년이 지난 지금은 3-4층 짜리 원룸 빌라가 들어선 공터. 평소라면 사람이 찾아올 일이라곤 전혀 없는 곳이지만, 눈이 오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하얗게 눈밭이 되었다면 그곳은 우리의 전쟁터가 된다. 장갑을 벗어던지고, 눈덩이를 뭉쳐, 둔덕 아래 몸을 숨기고, 기회를 노린다. 팔을 올리고, 호흡을 멈추고, 조준, 발사! 어깨를 힘껏 던져 탄환을 발포한다. 흰 공터를 이리저리 뛰다니며 눈을 던지고 맞고를 반복한다. 손가락이 시뻘게져 굽혀지지 않을 정도로 얼지만 전투는 끝나지 않는다. 전투는 어느 한쪽이 나가떨어질 때까지 지속된다.
눈싸움이 질리면 종목을 바꾼다. 눈덩이 하나를 꾹꾹 뭉친다. 그것을 바닥에 굴린다. 살이 점점 불어가는 눈덩이에 물을 뿌리고 주먹으로 두드리며 완벽한 구를 만들어간다. 아름다운 미인의 조각을 깎아내는 피그말리온의 심정으로 눈사람을 제작한다. 30분이 지나면 새하얀 행성과 위성을 쌓아 눈사람을 완성시킨다.
눈사람을 다 만들었다면 이젠 무너뜨릴 시간이다. 내가 만든 눈사람을 내 손으로 부수는 시간. 사실 이 시간을 위해 눈사람을 만드는 것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인간에게는 창조의 본능과 파괴의 본능이 동시에 존재한다. 똘망똘망한 눈을 가진 녀석을 향해 정권찌르기를 날린다. 내려찍기, 돌려차기, 홍염질풍각을 차례로 날린다. 처형의 시간이 끝나면 눈사람은 다시 눈으로 돌아간다.
어릴 때 좋아하던 것이 어른이 되어 싫어지게 된다. 참 쓸쓸하고 슬픈 경험이다. 눈밭에서 시간 가는 중 모르고 뛰놀던 아이를 영영 잃은 것 같아서. 흰 눈과 같았던 순수성과, 내가 돌아가야 할 고향을 모두 잃은 것 같아서. 쉬는 시간이 끝났다. 나는 다시 삽을 들어 푸석하게 쌓인 눈에 꽂아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