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TI는 우리의 관계를 가로막았다
2010년대 후반부터 MBTI 성격 검사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알던 사람만 아는 검사였는데, 코로나 시기를 기점으로 유행이 폭발하더니, 이제는 사람들이 처음 만나면 MBTI가 뭐냐고 질문하는 시대가 왔다. MBTI는 현대인들의 또 다른 이름이 되었다.
내가 처음 MBTI 검사를 받은 것은 고등학생 때였다. 진로 시간, 선생님이 두툼한 검사지를 가져왔다. 전문기관에서 사비로 사온 검사지라고 했다. 500개 정도 질문에 체크하고, 겹쳐진 종이를 떼서 나타나는 답지를 보고 점수를 측정하는 방식이었다. 나는 INTP였다. E 점수는 1점, F 점수는 0점이었다. 친구들은 내 점수를 보고 “이 새끼 진짜 기계 아니냐”며 신기해했다. 그 이후로도 인터넷에서 몇 번을 다시 검사해도 언제나 INTP가 나왔다. 변하지 않는 결과를 보고 나는 안도감을 느꼈다. 쉽사리 이해할 수 없었던 나 자신을 명쾌하게 파악한 듯한 착각에 빠졌다.
하지만 MBTI가 대중적인 유행이 될수록, 나는 안도감 뒤로 쓸쓸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MBTI가 ‘성격 검사’라는 의미를 잃고 단편적인 편견으로 변질되었기 때문이다. E는 인싸, I는 아싸가 되었다. F는 똥멍청이, T는 싸이코패스가 되었다. 인간의 활력과 감수성, 친화력과 사고방식이 단순한 틀 안에 갇히고 서로가 농담 삼아 힐난하는 풍경이 펼쳐졌다. MBTI가 밈으로 소비되면서, 우리는 서로를 편견으로 바라보았다.
가장 슬픈 지점은, MBTI를 자신을 이해하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닌, 그 유형에 스스로를 억지로 맞추고, 심지어는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는 데 사용하는 점이다. 흔히 ‘MBTI 과몰입러’라고 부르는 사람들. 사람의 행동, 말, 태도, 표정을 모두 MBTI로 설명하려 들고, MBTI에 맞게 살아가려고 한다. “나는 I니깐 낯선 사람이랑 대화하면 안 돼”, “나는 T니깐 공감하지 말고 항상 시니컬한 말을 해야 해”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보이지 않는 감옥에 가둔다. MBTI가 서로를 이해하는 다리가 되기보다, 오히려 편견을 쌓아 관계를 단절시키는 벽이 되어버린 듯했다.
더 안타까운 것은 MBTI를 핑계로 자신의 잘못을 합리화하는 모습이었다. 무례하게 말해놓고서는 “미안, 내가 T여서 그래”라고 하거나, 약속 시간에 늦어놓고서는 “미안, 내가 P여서 그래”하고 가볍게 말하는 이들을 보며 쓸쓸함을 느낀다. 이들에게 MBTI는 일종의 행동지침이었다. 그에 맞게 행동하고 말하면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여긴다. MBTI가 자신의 불완전함을 정당화하는 방패가 되었다. 진심 어린 사과와 이해의 기회는 사라지고 만다.
MBTI가 알려진 것은 분명 긍정적인 면이 있을 것이다. 자신의 성격을 이해하고, 서로가 다름을 인지하는 것은 공동체에서 살아가며 꼭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없는지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복잡하고 다채로운 사람을 영어 4글자로만 바라봐서 진정한 소통과 교감은 사라졌다. MBTI는 참고할만한 재미있는 도구일 뿐, 그것이 우리의 전부가 될 수는 없다.
나는 사람은 스펙트럼이라고 생각한다. 선 몇 개 그어지고 마는 선 스펙트럼이 아닌, 다양한 빛깔이 연속으로 이어진 연속 스펙트럼이다. 나는 서로가 각자의 빛깔을 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피상적인 이해를 넘어, 서로의 복잡한 내면을 마주하고 진정으로 교감하는 세상이 되길 바란다. MBTI 하나만 가지고 타인을 완전히 알았다고 착각하기보다, 자신과 타인을 더 깊이 이해하고 연결되는 날이 오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