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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서 손으로 소설 쓰는 인간

by 천비단

8월에 병장이 되었다. 지겨운 군생활도 이제 3개월 남짓 남았다. 동기들이 하나 둘 전역하기 시작하고, 나도 남은 훈련 개수와 그동안 모은 휴가 일수를 헤아리며 사회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고 있다.


군대는 상상 이상으로 나와 맞지 않았다. 모든 것이 통제된 생활.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고, 정해진 일과를 하고, 정해진 임무를 하고, 정해진 시간에 잔다. 무엇 하나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한동안은 이 통제된 생활에 편안함을 느꼈다. 그것은 생각할 필요 없음에서 오는 편안함이었다. 하루를 꾸려나가는 데 아무것도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결정하지 않아도 된다. 뇌 빼고 시키는 일만 하다 보면 어느새 하루가 끝나 있다.


그러나 이 편안함은 얼마 안 가 권태로 바뀌었다. 하루하루 멍청해져가는 기분이 나를 지배했다. 근무며 훈련이며 체력단련 따위가 시시하게 느껴졌다. 일정이 촘촘하게 짜인 패키지 여행을 다니다가 어느 순간 시간에 좇기느라 제대로 관광을 즐기지 못하고 있음을 깨달은 여행객의 심정이었다. 통제된 생활,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내게 아무런 자유가 없다는 뜻이었다.


나는 무엇 하나 내 맘대로 선택하지 못했다. 일어나고 눕는 것, 몸 위에 걸치는 것, 입에 넣는 것, 몸을 움직이는 것, 말하는 것, 사람에게서 벗어나 혼자 있는 것 모두. 내게 자유가 허락되지 않는다는 걸 깨닫자 심장에 도달한 독이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것처럼 권태가 나를 잠식했다.


10년 전만 해도 직각 식사 같은 부조리를 자랑스럽게 미디어에 소개했었다


개인 시간이 없는 것이 나를 가장 힘들게 했다. 나는 타인이 나를 간섭하지 않고 그 무엇에도 방해받지 않으며 완전히 혼자 존재하는 시간이 필요한 인간이다. 그러나 군대에는 그런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침대에 누워 있어도 집합 방송이 울리거나 동기가 내 옆자리에 함부로 누우며 천박한 농담을 던진다. 그래서 짬지 때는 도저히 타인을 견딜 수 없을 때마다 화장실 변기칸에 들어가 있었다. 집합이 아닌 이상 변기칸에 들어가 있으면 나를 찾는 사람이 없었다. 오래 묵은 똥냄새와 한여름 찜통 더위 속에서 변기에 앉아 문에 머리를 박고 있으니 내 처지가 너무 처량해서 몇 번이나 울었다. 허벅지와 변기가 닿은 곳이 너무나 찐득찐득거렸다.


그래서 연등 시간이 좋았다. 22시부터 24시까지 사지방이나 열람실에서 공부를 할 수 있다. 병사들의 자기계발을 장려하는 목적이라고 하지만, 책 읽는 걸 금지시킨 마당에(대체 왜?) 목적이야 길고양이 먹이로 줘버린 지 오래다. 대부분 노가리 까거나 유튜브를 보면서 논다. 내가 처음 연등을 한 것은 일병 4호봉 때였다. 병진급 평가 공부를 하기 위해서 열람실에 갔다. 열람실은 독서실처럼 꾸며져 있었다. 책상이 칸막이로 나뉘어 있고, 전등과 독서대, 서랍이 있었다. 서랍 안에는 먹다 남은 아메리카노나 포카칩 따위가 널브러져 있었다. 그 열람실이 나는 좋았다.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니 처음으로 혼자 있는 기분을 느꼈다. 가끔씩 동기가 칸막이 너머로 고개를 불쑥 들이밀거나 말을 걸긴 했지만 그 정도면 참을 만했다. 겨우 2시간뿐인, 그것도 완전한 개인 시간은 아니었지만, 나는 연등을 자주 하기로 마음먹었다.


처음에는 공부하려고 했다. 코딩 공부나 자격증 공부 말이다. 하지만 한 달 정도 지나서 마음을 접었다. 사지방 컴퓨터가 인강도 안 돌아갔다. 나는 20살 이후로 이렇게 사양이 안 좋은 컴퓨터는 처음 보았다. 인강은커녕 웹사이트 하나 들어가는 것도 버벅거리는 컴퓨터 가지고 대체 어떻게 자기계발을 하라는 걸까.


대신 책을 읽고 글을 쓰기로 했다. 물론 사지방에서 글을 쓰지는 못한다. 사지방에는 칸막이가 없다. 동기가 불쑥불쑥 내 모니터를 구경하며 ‘너 뭐하냐?’라고 묻는다. 그래서 나는 열람실에서 노트에 글을 쓴다. 고등학생 때 기숙사 자습 시간에 공부하기 싫어서 했던 짓거리를 26살이 되어서 다시 하고 있다.


노트에 손으로 글을 써본 적 있는가? 1만 자가 넘어가는 긴 분량의 글을 말이다.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이 할 짓이 아니다. 손가락, 손, 팔뚝, 어깨 근육이 혹사당하는 것이 실시간으로 느껴진다. 머리에서 좋은 문구가 스파크처럼 파바박 떠올라도 쓰는 속도가 너무 느려서 80%는 쓰지 못하고 그대로 사라진다. 손으로 글을 쓰는 것은 비효율, 비상식, 비이성의 극치다. 마치 한국 군대 같다.


헤밍웨이도 글은 타자기로 썼는데 왜 나는


나는 이것이 굉장히 비효율적인 행위임을 알면서도, 계속 글을 썼다. 열람실에 연등할 때에도, 당직 서면서 밤을 새울 때도 나는 샤프로 글을 썼다. 그리고 휴가나 외박을 나오면 컴퓨터에 글을 옮겨 적었다. 이렇게 나는 군생활을 버텼다. 군생활을 연등 시간에 글을 쓰면서 버티다니. 자격증 공부를 하거나 인생에 도움 되는 생산적인 자기계발은 하나도 안 하고. 아무리 생각해도 정상은 아니다.


대부분 소설을 썼다. 이왕 소설 쓰는 거, 제대로 써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유튜브에서 가끔 보던 스토리 작법 강사 ‘홍톡끼(유튜브​, 포스타입​)’가 쓴 작법서를 샀다. 5만 원인가 했던 것 같다. 그것을 A4 1장에 4면씩 인쇄한 다음 형광펜 그어가면서 공부했다. 그리고 스토리를 설계한 다음 노트에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지금 쓰고 있는 소설은 노트 14장을 넘어가고 있다. 문제는 아직 30%도 쓰지 못했다. 저번에 브런치에 올린 소설 <기술이 너무 발전해서 인류가 멍청해지는 이야기​>가 노트 5장이었다. 그것의 3배 분량을 썼는데 아직 30%도 못 썼다니. 대충 계산하니 예상 분량이 11만 3천 자다. 절대 전역 전까지 완성 못 한다. 전역할 때까지 2부만이라도 다 쓰는 게 목표다.


그 외에도 쓴 글이 몇 개 있다. 올해 브런치에 올린 글들이 바로 그것이다. 그것들 말고도 웹툰 <검은인어> 리뷰, 게임 <림버스 컴퍼니> 7장 리뷰, 게임 <리버스: 1999> 우주의 서곡 리뷰, 에세이 한두 개 썼다. 나중에 기회 되면 퇴고해서 브런치에 올릴지도 모른다.




군대에 갇혀 있던 1년 6개월이라는 시간이 내 인생에 어떤 의미를 지닐까. 아직 전역하지는 않았지만, 득보단 실이 훨씬 큰 시간이라고 확언할 수 있다. 진로를 정하지도, 자격증을 따지도, 국방부장관상을 받지도 못했다. 이제 슬슬 사회에 나와 뭘 해 먹고살아야 할지 고민해야 하는데, 아무 생각 없다. 지금 드는 생각은 이번에도 계엄령 터져서 훈련 취소되면 안 되나 따위밖에 없다.


이런 젠장! 말년에 호국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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