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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비단 Feb 19. 2021

단지 고양이가 귀엽다고 말할 뿐인 글

반박 시 대머리

 고양이는 귀엽다. 이 세상 모든 귀여운 것들 중에서 고양이가 가장 귀엽다. 자기 기분 내키는 대로만 행동하고 주인을 노예 취급하는 버르장머리에도 불구하고 우아하고 도도한 품위에 홀려 많은 집사들이 고양이에게 음식과 츄르를 조공해왔다는 사실은 이미 자명하다. 조선 19대 왕 숙종은 나라의 정세를 살필 때 치즈냥이 '금손'이에게 의견을 물었고, <노인과 바다>를 쓴 헤밍웨이는 글이 막힐 때마다 손가락이 6개였던 하얀냥이 '스노우 화이트'에게 영감을 구걸했다.


믿으면 대머리


 우울한 글만 써재끼다가 한 달 동안 잠수 타놓고 갑자기 돌아와서는 웬 이상한 소리를 하는 거냐. 솔직히 별 이유 없다. 그냥 고양이가 귀엽다는 글을 쓰고 싶어서 이 글을 쓰는 것이다.


 브런치 작가가 되고 난 후 한동안은 열심히 글을 올렸다. 예전에 블로그에 썼던 글을 다듬고, 우울증 수기도 쓰면서 하루에 하나씩 올렸다. 하루 종일 노트북 앞에 앉아서 글을 썼다.


 그러나 일주일이 지나자 더 이상 글이 써지지 않았다. 무슨 글을 쓸지는 정했으나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이런 적이 처음은 아니다. 글이 마음대로 나오지 않는 경험은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있다. 이럴 때는 다른 글을 쓰거나, 아예 손을 놓고 머리를 비우고 와서 다시 쓰는 수밖에 없다.


 나는 다른 글을 쓰고 싶었다. 그런데 어떤 글을 써야 할지 도통 감이 안 잡혔다. 쓰고 싶은 글은 많다. 하지만 쓰고 싶은 글을 맘대로 써도 될지 모르겠다. 브런치에 이런 글을 써도 될까? 브런치에 이런 글이 어울릴까? 한 문장을 쓰고 세 문장을 지우기를 반복했다. 알 수 없는 자기검열이 글쓰기를 방해했다. 결국 하나도 쓰지 못했다.





 또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다. 어느샌가 유튜브 세상에 널리 알려진 개념이 있다. 바로 '알고리즘'이란 것이다. 알 수 없는 유튜브의 추천 영상 알고리즘으로 한 영상이 뜬금없이 조회수가 폭발할 때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았다고 한다.


 유튜버라면 알고리즘의 입맛대로 영상을 제작해야 한다. 확실히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유튜버들 사이에 널리 퍼진 소문으로는, 알고리즘이 채널의 성향을 파악해서 원래 채널 성격과 다른 영상을 업로드하면 추천 알고리즘에서 제외된다고 한다. 즉 유튜버는 한 채널에 같은 색깔의 영상만 올려야 자신의 영상이 추천 알고리즘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요리 유튜버가 운동기구 리뷰 영상을 올린다거나, 게임 유튜버가 일상 브이로그 영상을 올린다거나 하면 알고리즘의 신이 크게 노하셔서 조회수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나는 이 논리가 브런치에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결국 독자는 사람을 보는 것이 아니라 글을 본다. 독자는 나라는 사람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쓴 글을 읽고, 그것으로 내 글을 계속 읽을지, 내 브런치를 구독할지를 결정한다.


 그런데 이놈이 여태껏 우울한 글 잘만 쓰다가 갑자기 고양이가 너무 귀엽다는 글을 올린다면 어떻게 될까? 누가 봐주기라도 할까? 아니, 절대로. 그 누구도 관심 갖지 않을 거야. 오히려 지금 내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도 실망하고 떠날 거야. 나는 사람들이 원하는 글을 써야만 해.





 결국 이러이러한 이유로 한 달 동안 글은 쓰지도 못하고 유튜브로 고양이 영상만 주구장창 봤다. 누가 보면 팬 많은 인기 작가라도 되는 줄 알겠다.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보니 참 멍청한 생각에 갇혀 있었구나 싶다.


 한 가지 결심을 했다. 나는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쓸 것이다. 알고리즘이니 뭐니 그런 복잡한 생각 따위 버리고, 정말 내가 쓰고 싶은 글을 맘대로 쓸 것이다. 우울증 수기도 천천히 올릴 것이다. 우울증에 대한 글을 쓰는 게 우울증 극복에 도움이 될 줄 알았더니 오히려 트라우마를 들쑤셔서 우울증과 무기력증이 심해졌다. 의사 선생님은 아예 쓰지 말라고 했지만, 나 자신과 약속한 것이니 몇 달이 걸리더라도 쓸 것이다.


 이 글의 결론은 고양이는 그 무엇보다 귀엽다는 것이다. 고양이의 귀여움은 하찮은 인간 따위는 감히 이해하지 못할 영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당신은 고양이에게 음식과 츄르를 고개를 조아리며 조공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고양이의 신이 당신을 벌할 것이다. 혹시나 고양이가 귀엽지 않다느니 하는 망언을 한다면 삼대가 머리카락이 빠지는 저주에 걸릴 것이다. 고양이는 우주에서 가장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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