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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비단 Mar 15. 2021

내가 3학년이라니

이거 실화냐

 2주 전 개강을 했다. 잉여로웠던 방학이 끝나고, 다시 시골에 내려오게 되었다. 방학 동안 한 일이라곤 병원을 다시 다니기 시작한 것과 운전면허 학원에 다닌 것밖에 없다. 거기에 면허학원은 필기시험을 보는 게 두려워서 며칠이나 미루는 바람에 일정이 잔뜩 꼬여 기능시험만 겨우 봤다. 주행 연습 일정을 잡으니 중간고사 기간과 정확히 겹쳤다. 중간고사 보는 와중에 주말에 집에 와서 면허학원에 가야 하다니. 참 웃기다.


ㄹㅇㅋㅋ만 치라고 아 ㅋㅋ


 어느새 3학년이 되었다. 맙소사.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벌써 3학년이 된 걸까. 내가 벌써 이 학교를 2년이나 다녔다고? 그렇다고 하기엔 딱히 한 게 없는 것 같은데. 고등학교 3년은 그렇게 길게 느껴지더니, 대학 새내기 2년은 어찌 이리도 짧을까. 인간이란 참으로 이기적인 존재구나 싶다. 힘든 시절은 끝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게 느끼고, 좋은 시절은 시작도 안 한 것 같은데 지나가버린다고 생각하니.


 다만 내가 대학교를 다닌 이 2년을 좋은 시절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아니, 객관적으로 보자면 나쁜 쪽에 가깝다. 공부는 손 뗀 채 시험을 던져버리는 재미를 알아버리고, 공부는 3학년 때부터 라며 1, 2학년은 놀아야 한다며 합리화하고, 그렇다고 술은 아예 마시질 않으니 유튜브나 게임으로 하루를 죽이는 나날이 반복되었다. 그 와중에 병원은 어영부영 안 가게 되어 우울증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내게 캠퍼스 낭만이란 게 있었다면 그나마 대학 생활을 즐겼지 않았을까. 낭만 없는 삶이란 정말 칙칙하기 짝이 없다.


 3학년. 우스갯소리로 사망년이라고 불리는 그 학년이다. 다른 학교는 취업 준비하랴 스펙 쌓느랴 바쁠 때, 내가 다니는 이 학교는 사범대. 학점이나 토익 점수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되지만, 우리에겐 임용고시가 있다. 임용고시 준비는 3학년부터다, 너네는 놀 수 있을 때 놀아둬라, 늦어도 3학년이 되면 임용 준비를 시작해야 된다. 일이 년 전 선배들이 한 말이 그때는 아직 먼 일이라고 느껴졌다. 아직 이 년이나 남았으니까, 아직 일 년이나 남았으니까 하며 별생각 없이 지내다가 3학년이 되고 말았다. '공부는 3학년부터'라는 변명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제 꼼짝없이 공부를 할 수밖에 없다.


 스터디에 들어가고 공부란 걸 시작했다. 분명히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는 용어, 개념을 읽어나갔다. 공부할 게 뭐 이렇게 많은지. 오늘 공부를 끝내면 내일 공부가 남아 있고, 이번 주 공부를 끝내면 다음 주 공부가 산더미처럼 밀려온다. 고등학생 때보다 공부를 더 많이 하는 것 같다. 평일에도 남는 시간을 쪼개가며 공부를 해야 할 정도다.


개강 4일 전 에타.jpg




 공부가 재밌던 적이 있었다. 몇 시간이고 책상에 앉아서, 문제집을 척척 풀고, 교과서에 줄을 그어가며 읽고, 새롭고 더 어려운 내용에 호기롭게 맞서 이 녀석을 이해해버리고 말겠다는 의지로 공부를 한 적이 있다. 그때는 내가 공부를 좋아하고, 공부에 재능이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친구들보다 더 좋은 성적을 받고, 어른들에게 칭찬과 기대를 받으며 하찮은 자존감을 채웠다. 심지어는 자부심도 느꼈다. 나는 똑똑하고 공부를 잘하고 늘 좋은 성적을 받는 놈이라는 같잖은 자부심. 지금 와서는 아무 의미도 쓸모도 없는, 오만에 가까웠던 그 마음. 그때의 나는 내 가치를 증명할 길이 그것밖에 없었다.


 그러나 얼마 안 가 그 오만은 산산조각 났다. 나는 그렇게 공부에 특출 난 재능을 가지고 있지 않고, 공부를 딱히 재미있어하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말았다. 나는 공부를 즐기던 게 아니었다. 착하고 영특한 모범생이라는 타이틀을 즐기던 뿐이었다. 그러나 그 타이틀조차 쓰지 못하게 되자 나를 지탱해주던 그 무언가가 사라졌다. 공부에 대한 열의가 식자 나는 학교 공부를 '적당하게' 하기 시작했다. 그저 내신을 적당히 유지할 수준으로, 적당한 학교에 들어갈 수준으로. 공부나 노력 따위에서 오는 성취라곤 느낄 수 없었다.


 고등학생이 되고 입시를 준비하면서 나 자신을 희망찬 꿈이 있고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가진 젊은이라고 속였다. 그러자 대학에 합격할 수 있었다. 대학에 합격한 사실은 담임선생님이 알려주었다. 수능이 끝난 기념으로 반 애들이 다 같이 놀러 간 떡볶이에서. 나는 그 사실을 듣고도 전혀 놀라지도, 기뻐하지도 않았다. 더 이상 특별한 것 하나 없는 평범한 나에게는 기뻐할 권리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어른이 되었다. 어쩌면 어른이 되는 것은 나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평범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인 것 같다. 부모 눈에는 남 자식보다 자기 자식이 가장 이뻐 보이고, 그 흔한 걸음마조차 자기 자식이 하면 무슨 대단한 큰일을 한 것마냥 손뼉을 쳐준다는 사실을 어린 자식은 알 리 없다. 어른이 되고 나서야 자기는 마땅히 잘하는 것 하나 없는 인간임을, 이제 주위에 나를 위해 손뼉을 쳐줄 사람은 없다는 현실을 마주한다. 그리고는 평범하게 태어나버린 자신을 키워주고 길러주신 부모님께 죄송스러운 마음으로, 대학에 들어가고, 알바를 하고, 스펙을 쌓고, 취업에 목을 매고,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부끄럽지 않은 인간이 되기 위해 분투한다.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되기 위해 내가 할 일이라곤 내게 주어진 일을 해나가는 것뿐이다. 임용고시라는 큰 목표가 생겼으니 한심한 과거를 청산하고 공부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나저나 이 거지 같은 학교는 왜 졸업시험을 격주로 1년이나 보는지. 수업에 과제에 스터디에 시험 준비까지... 하루에 글을 쓸 한 시간도 내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렇지만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반강제적으로 공부를 엄청 하다 보니 덕분에 유튜브를 보는 시간을 많이 줄였다. 그리고 다시 공부를 시작하면서, 공부의 재미를 되찾고 있다. 지난 토요일에는 공부를 12시간이나 했다. 순수 집중 시간이 12시간이라니, 이렇게 오래 공부한 적은 고1 이후로 처음이다. 그냥 자랑하고 싶었다. 나름 열심히 살고 있다고.

근데 아무리 그래도 2주에 한 번은 너무하지 않습니까 교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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