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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비단 Jul 20. 2021

우울증이 패션이 되어버린 나라에서

패션 우울증에 대하여

여름학기가 끝났다. 필수로 들어야 하는 수업을 코로나 때문에 못 듣게 되어서 어쩔 수 없이 여름학기 수업을 들었다. 방학 동안 집에 가지도 못하고 학교에 짱박혀 있는 게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모르겠다. 평소라면 방학 내내 생활패턴이 엉망이 되어 폐인 생활을 했겠지만, 수업 덕분에 반강제로 부지런한 생활을 했다.


3주 동안 항우울제를 먹지 못했다. 약이 떨어졌는데 병원을 못 갔다. 우울증 환자는 병원에 찾아가는 것부터가 고비다. 침대에 일어나는 것도 힘든데 씻고 외출하고 병원에 찾아가고 의사 선생님과 대담하는 것은 엄청난 의지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약을 갑자기 안 먹어서 하루 종일 두통과 피로에 시달리면서도, 병원을 미루는 건 정말 '게으르다'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다.




내가 우울증이란 사실을 인정하고 나서 줄곧 떠올리던 질문이 있다. 우울증이란 과연 무엇일까. 우리 사회에서 우울증은 도대체 어떤 존재일까.


우울증은 어느 순간부터 유명해졌다. 한 10년 전부터 TV에 간간이 나오더니 한국이 자살률 1위니, 청소년 우울증이 심각하다니 하며 여기저기서 떠들어댔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나도 알고 있었을 정도였다.


'패션 우울증'이란 단어가 생겼다. 말 그대로 우울증이 아니면서 우울증인 '척' 하는 것을 말한다. 자신이 우울하다고, 불행하다고 하며 사람들의 관심을 갈구하는 사람들을 비하하는 말이다. 실제로 우울증 환자나 성격장애 환자 중 일부는 자신의 병을 밝히는 짓을 한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도 우울증을 앓고 있다거나, 어렸을 때 학대를 당했다거나 하는 사연을 들려주는 식이다.


그러나 '패션 우울증'에서 지칭하는 사람은 실제로 병을 앓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우울증이 아닌데 우울증인 척하는 사람이다. 사람들의 관심을 얻기 위해서 일부러 우울한 척을 하는 사람 말이다.


왜 하필 우울증인 '척'을 하는 걸까? 관심을 끄는 게 목적이라면 다른 수단도 많을 텐데. 개인적인 생각으로, 아마도 멋있어 보여서 아닐까 싶다. 몇 년 전 우원재, 빈첸 등 우울증을 앓는 래퍼가 큰 인기를 끌었다. 그래서 우울증에 멋있다는 이미지가 붙은 것 같다.


당시에 '우울증 컨셉'이라고 비난하는 사람이 꽤 있었다.


신조어의 탄생은 그 사회에 어떤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지 보여준다. 예를 들어 '꼰대'라는 표현을 통해 기성세대를 향한 젊은 세대의 반감을 볼 수 있다. 이런 신조어는 누군가, 어떤 것을 비하하는 멸칭인 경우가 많다. 멸칭 신조어의 문제점은 남용되기 쉽다는 점이다. 나이 많은 사람이 젊은 사람에게 도움되는 조언을 해도 지가 듣기 싫으면 틀딱 꼰대의 잔소리로 치부하는 것처럼 말이다.


내게는 패션 우울증이란 단어가 그러하다. 패션 우울증은 우울증이 아닌 사람이 우울증을 멋지다고 생각해 우울증인 '척'하는 짓을 조롱하는 단어다. 그러나 이 단어를 자주 쓰는 사람은 진짜 우울증 환자에게도 패션 우울증이라는 단어를 들먹인다. '꼰대'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하는 사람 주변에 유난히 꼰대가 많은 것과 비슷하다.


그래서 나는 주변 사람에게 내가 우울증인 사실을 밝히기 싫다. 패션 우울증 취급당하기 싫기 때문이다. 내가 우울증이라고 말했을 때 그가 나보고 패션 우울증 아니냐고 하면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진단서라도 떼와야 하나? 공황장애 약이라도 보여줘야 하나? 내가 병을 앓고 있단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는 사실이 짜증 난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이면 알 것이다. 우울증이 얼마나 거지 같은 병인지. 그런데 그게 어떤 이들에게는 선망과 의심의 대상이 된다는 게 불쾌하다. 나는 이 병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데, 누군가는 그 병에 걸린 척을 하다니. 마치 부자들이 가난을 빼앗는 것과 같은 불쾌감이다. 정상인들은 우울마저 뺏어갔다. 우울을 자신을 치장하는 장신구로써 앗아갔다.

마치 이거랑 비슷한 기분




나는 아직도 내가 우울증인지 잘 모르겠다. 이성으로는 인정했지만,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다른 병은 확실한 증상이라도 있지. 우을증은 그렇지 않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무기력하고, 모든 일에 의욕이 없는 게 우울증 증상인지 아니면 그냥 내 성격이 이 따위인 건지 알 수 없다. 다만 세상이, 의사 선생님이, 검사지가 너는 우울증이 맞다고 답해줄 뿐이다.


우울증 환자는 자신이 우울증 환자임을 인정하려 하지 않고, 일반인은 우울증 환자인 척을 한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상황인가.


우울증이 패션이 되어버린 나라에서 나는 우울증 환자로 살아가고 있다. 새로 바꾼 수면제는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다. 시간에 딱 맞춰 먹으라길래 휴대폰에 알람을 두 개나 맞춰놓았다. 가루약이 쓰게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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