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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비단 Mar 28. 2021

내가 죽으면 세상은 변할까요

영화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우편배달부인 남자는 어느 날 자전거를 타다가 정신을 잃고 쓰러진다. 병원에서 그는 뇌종양 말기 판정을 받는다. 의사는 난처한 표정으로 언제 죽을지조차 알 수 없다고 말한다. 아직 서른밖에 안 된 나이인데 갑작스럽게 시한부를 선고받은 남자. 그날 저녁, 집에 돌아가자 남자 앞에 자신과 똑같은 모습을 한 '악마'가 나타난다.


 악마는 남자가 내일 죽게 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리고는 거래를 제안해 오는데, 그것은 바로 목숨을 하루 연장해주는 대신 세상에서 어떤 한 가지를 없애겠다는 것. 남자는 얼떨결에 거래를 승낙한다. 악마는 첫 번째로 없앨 것은 '전화'라고 말한 뒤 사라진다.


 다음날, 그는 첫사랑이었던 전 여자친구와 만난다. 잘못 걸린 전화로 우연히 이어진 인연이었다. 안부를 주고받으며 둘은 추억을 회상한다. 헤어지기 직전 그녀에게 자신이 곧 죽는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 남자 앞에 악마가 다시 나타난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악마가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악마는 시간이 되었다며, 그대로 '전화'를 이 세상에서 없애버린다. 사람들의 손에 들린 전화기가 점점 녹아서 사라져 간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본 남자는 속에서 정체모를 불안이 피어오른다. 그는 다시 전 여자친구에게 돌아간다. 그러나 그녀는 남자를 알아보지 못한다.


 악마는 실실 웃으며, 다음으로 무엇을 없앨지 말하기 시작한다.




죽음을 통해 깨닫는 삶의 소중함


 이 영화에는 3명의 주인공이 나온다. 현재의 주인공, 과거의 주인공, 그리고 악마. 악마는 척 보면 구분 가능하지만, 과거의 주인공과 현재의 주인공은 구분이 어렵다. 특히나 여러 시점의 과거가 앞뒤 설명 없이 튀어나오기 때문에 집중하지 않으면 지금 시점이 언제인지 놓치기 쉽다. 그에 대한 배려인지 현재의 주인공은 얼굴에 반창고를 하고 있다. 자전거에서 넘어지면서 생긴 상처인 듯하다.


 주인공은 하루라도 더 살기 위해서 악마가 제안한 거래를 받아들인다. 그러나 어떠한 존재가 사라지면 그 존재와 관련한 모든 추억과 관계가 함께 사라진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꼭 악마는 이런 중요한 조건은 말을 안 해주는 걸까. 현실이었다면 사기죄가 성립했을 텐데.


악마가 호구를 낚는 중이다


 주인공은 현실에서 계속 도망쳤다. 죽음에서, 추억에서, 아버지에게서, 떠올리기 싫은 기억에서 도망쳤다. 항상 현실에 맞서기보다, 피하는 쪽을 택했다. 행동하지 않고, 제자리에서 고민만 했다. "만약 ~한다면" 하는 그의 말버릇도 현실에서 벗어나려는 그의 모습이 투영된 것이다.


 그는 불안을 즐기지 않는다. 영화의 결말을 미리 알고 봐야 맘이 편하다. '이다음에 어떻게 될까?' '저 사람 죽는 거 아니야?' 하는 영화를 보며 당연히 느끼는 일말의 불안감조차 견딜 수 없어서 결말을 미리 알아야 맘이 편한 것이다.


 이런 그가 옛 추억을 잃으면서 추억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사소한 물건이라도 그에 얽힌 추억은 소중하다. 그는 전화가 있었기에 연인을 만날 수 있었다. 영화가 있었기에 친구를 만날 수 있었다. 죽기 전에는 몰랐다. 우리가 하루 종일 만지작거리는 전화기와, 심심하면 아무거나 틀어서 보는 영화, 그리고 그것에 얽힌 수많은 인연과 추억. 죽을 때가 다가와서야 그 소중함을 깨닫는다.


 소중한 게 많으면 죽기 싫지 않을까. 그러나 주인공은 세상에 소중한 것이 많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야 죽음을 받아들였다. 죽음에서 도망치다가 삶의 소중함을 깨달아서야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현재의 나, 과거의 나, 악마(또 다른 나)가 모두 바다에 서 있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순간 현재의 나 혼자만 남는다. 비로소 현재를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죽음을 부정하고 도망치다가, 끝내 현재를 받아들이고, 그는 아버지를 찾아간다.




표현이 결핍된 사랑


 주인공은 아버지를 싫어했다. 악마가 처음 나타났을 때 전화를 없애기 전 마지막으로 전화할 기회를 줄 때 주인공은 아버지에게 전화할까 말까 고민하다 하지 않는다. 주인공에게 아버지는 그런 존재였다. 죽기 전이라 할지라도 전화하고 싶지 않은 상대.


 아버지는 쉽게 말하자면 츤데레다. 가족을 사랑하면서, 표현하지 못한다. 어머니에게, 자식에게 사랑한다는 말 한 번 한 적 없고, 어머니가 죽을 때까지 병문안 한 번 오지 않았으며, 어머니가 병상에 누워 죽었을 때 처음 찾아와서는, 어머니를 덮은 이불 위에 시계를 올려놓으며 '시계 다 고쳤다'라는 말만 할 뿐, 슬픈 기색 하나 보이지 않는다.



 주인공은 아버지를 원망했다. 그래서 아버지가 자신과 어머니를 사랑한단 사실을 외면했다. 아버지는 아픈 어머니를 위해 고양이를 데려왔고, 늦은 밤 여행지에서 숙소를 찾아 이리저리 뛰어다녔고, 어머니의 시계를 언제나 고장날 때마다 고쳐주었다. 자식 또한 사랑했다. 마지막 장면에서 갓 태어난 주인공을 바라보며 고맙다고 말하는 아버지의 모습. 아버지는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가족을 사랑했다. 그게 단지 주인공에게 와닿지 않았을 뿐이다...


 ...라고 말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생각이 반대다. 표현하지 않는데 어떻게 그것을 사랑이라 부를 수 있을까. 당사자에게 닿지 않았는데 그것을 표현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영화에서도 죽기 전에야 주인공이 아버지를 찾아갔지, 그전까지는 주인공은 아버지가 싫어 집에서 나와 따로 살고, 연락도 하지 않았다. 주인공은 아버지가 자신과 어머니를 사랑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가족을 사랑했으나, 표현은 서툴렀다. 그래서 자식의 원망을 받았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자기 자식이 자신을 원망한다면, 그자의 인생은 여러모로 실패한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절대로 아버지 같은 사람이 되지 않고 싶다.




비록 내가 죽더라도 세상은


 영화에서 사라지는(또는 사라질 뻔한, 사라질) 것들은 총 5개다. 순서대로 나열하자면 전화, 영화, 시계, 고양이, 그리고 주인공이다. 원래 계약대로라면 고양이도 사라지고 그다음도 이어서 쭉쭉 사라지는 건데, 주인공이 계약을 포기하면서 고양이는 사라지지 않고 자신이 사라지게 되었다.


 이들은 모두 주인공이 가진 추억의 일부다. 전화는 연인과 함께한 추억, 영화는 친구와 함께한 추억, 시계는 여행에서 만난 톰과의 추억, 고양이는 가족과의 추억. 주인공은 이것들이 사라지면서 그들과 함께했던 추억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는다.


놔라 인간


 여기서 가장 의미심장한 부분은 이것이다. 가장 맨 처음에 사라져야 했던 것은 바로 주인공, 자기 자신이다. 악마와 계약을 맺으면서 주인공 대신 주인공의 추억을 상징하는 존재들이 사라지게 된다. 주인공 대신 사라지는 것들이 추억의 일부라면, 주인공은 과연 무엇일까? 바로 가장 완전한 추억, 추억 그 자체다.


 감독이 말하고자 한 게 이거 아니었을까. 당신은 추억과 관계로 이루어진 존재다. 악마가 한 말과 달리, 당신이 죽더라도, 그 추억과 관계는 사라지지 않는다. 왜냐? 우리는 추억과 관계로 이루어진 존재니깐. 당신이 세상에서 사라지더라도, 세상에 남은 사람들은 당신과 함께했던 추억과 함께 이 세상을 살아갈 것이다.




내가 살아 있었다는 증거


 '영화'가 사라지고 난 다음, 갑자기 회상씬이 나온다. 주인공과 여자친구가 유럽여행을 갔을 때인데, 그곳에서 '톰'이라는 일본인을 만난다. 톰은 엄청난 여행광이다. 주인공과 친해지고 난 뒤 톰은 자신이 여행하는 이유를 말해준다. 그 이유는 시간에서 달아나기 위해서라고 한다. 며칠 뒤 주인공 일행과 톰은 마지막 인사를 나누며 헤어진다. 그러나 주인공과 여자친구가 뒤 돌고 나서 몇 초 후 톰은 차에 치여 죽는다.



 톰의 장례식을 치르고, 주인공의 여자친구는 톰이 죽었음에도, 세상은 전혀 바뀌지 않고 잘만 돌아가는 현실에 절망한다. 그리고 예전에 톰이 바다에서 그랬던 것처럼, 쏟아지는 폭포 앞에서 "난 살 거야, 살아남을 거야"하고 소리 지른다.


 톰은 바다에서 살아남겠다고 소리쳤다. 바다는 탁 트여 있는 곳이다. 바다는 무한한 가능성과 미래를 뜻한다. 하지만 여자친구는 폭포에서 소리 지른다. 폭포는 물이 떨어지는 곳이다. 바다와 다르게 폭포는 막혀있다. 그래서 폭포는 반대의 의미를 가진다. 가능성 없음, 현실, 톰의 죽음. 톰이 죽었는데도 세상은 전혀 변한 게 없는 현실에 여자친구는 크게 슬퍼한다.



 내가 죽어도 세상은 그대로일까? 생각해보면 그럴 것 같다. 기껏 해봐야 가족이 슬퍼할 거고, 몇몇 친구들도 슬퍼할 거고, 그리고... 없다.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나 하나 죽는다고 세상은 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나중에 주인공이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말한다. 내가 죽고 세상은 변하지 않더라도, 내가 죽고 나서 생길 조금의 차이가 내가 살아있었다는 증거가 될 거라고. 내가 죽고 나서 누군가는 슬퍼할 것이라는 사실, 그것이 내가 이 세상에 살아있었단 증거라고.


 위에서 말했듯이 우리는 추억과 관계로 이루어진 존재다. 내가 대통령이 아닌 이상 내가 죽더라도 세상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 추억과 관계에 얽힌 사람들, 그들에게 일어날 변화는 분명히 있다. 누군가는 슬퍼할 거고, 누군가는 그리워할 거고, 누군가는 원망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이 세상에 살았다는 증거다.




애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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