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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비단 Jul 22. 2021

추리소설의 여왕, 애거서 크리스티

애거서 크리스티 대표작 3편 리뷰

추리소설은 마이너한 장르다. 소설이라고 하면 수려한 문장과 아름다운 스토리 같은 게 떠오른다. 하지만 추리 소설은 그런 것과 거리가 멀다. 문장은 딱딱하고, 허구헌날 사람이 죽어나가고, 주인공은 그저 범인 찾기에 바쁘다.


그러나 추리소설은 오래전부터 매니아층에게 사랑받아온 장르다. 그것은 추리소설에는 특별한 매력이 있다는 뜻이다. 셜록 홈즈라는 탐정 캐릭터를 전 세계 사람들이 아는 것처럼 추리 소설은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다.


언젠가 추리 소설 리뷰를 쓸 생각이었다. 처음엔 셜록 홈즈를 쓸까 했다. 하지만 셜록 홈즈 시리즈는 전통적인 추리소설과는 좀 결이 달라서 첫 추리소설 리뷰에는 어울리지 않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대신 애거서 크리스티를 소개해주고자 한다. 흔히 '추리소설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작가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대표작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을 살펴보고, 추리소설이 왜 재미가 있는지 알아보자.


Agatha Christie




세 작품의 스토리를 간단하게 짚고 가자. 스포일러는 없으니 안심하고 읽어도 된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어느 날 도착한 초대장. 8명의 남녀는 제각각 초대장을 받고 무인도로 모인다. 그곳에는 하인 부부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폭풍우가 치는 밤, 응접실에 모인 그들은 서로 이야기를 나누지만 초대장을 보낸 주최자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수상함을 느낀 그 순간, 기괴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며 '이곳에 모인 10명은 과거에 저지른 죄를 심판받기 위해 모였다'며, 그들의 죄를 하나하나 읊조린다. 혼란에 빠진 사람들과, 응접실에 놓여 있는 인디언 인형 10개와 인디언 동요 가사. 그리고 그날부터 사람들이 하나둘 살해당하기 시작한다. 범인은 이 섬 안에 있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

눈보라가 휘날리는 밤, 정차한 기차에서 밤사이 승객 한 명이 살해당한다. 창문 바깥에 펼쳐진 눈밭에는 발자국 하나 없다. 범인이 기차 내부에 있는 건 확실한 상황. 새벽에 들린 피해자의 마지막 목소리와, 용의자들의 완벽한 알리바이, 그리고 여러 사람이 목격한 정체불명의 여인. 그러던 와중, 피해자의 정체가 몇 년 전 세상을 들썩이게 한 유괴 살인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명탐정 에르퀼 푸아로는 범인을 잡을 수 있을까?



애크로이드 살인사건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제일가는 부자인 애크로이드가 살해당한 채로 발견된다. 애크로이드의 친구이자 의사인 제임스 셰퍼드는 범인을 잡기 위해 노력하나, 사건 현장은 밀실이었고, 피해자를 마지막으로 목격한 사람은 다름 아닌 바로 자신이었다. 턱없이 부족한 증거에 갈피를 못 잡는 그때, 얼마 전 옆집에 새로 이사 온 이웃이 은퇴한 명탐정 에르퀼 푸아로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지금까지 세 작품의 스토리를 간단하게 살펴보았다. 이 작품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반전이 있다는 점이다. 각각 무슨 반전이 있는지는 아래에 하얀 글씨로 적어놓을 테니 알고 싶은 사람은 빈 공간을 마우스로 드래그해서 확인하길 바란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에서는 범인이 죽은 척을 해서 용의 선상에서 빠져나간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에서는 용의자 13명이 모두 범인이다.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에서는 화자(서술자)가 범인이다.


우리는 왜 추리소설을 읽으면서 재미를 느낄까? 추리소설의 재미는 사건이 어떻게 일어났을지 상상하고, 도저히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은 사건을 주인공이 해결하는 데에서 오는 카타르시스에서 나온다.


상상은 문학이 가지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글로 묘사된 상황을 머릿속에서 그려내며 만족을 얻는 것이다. 추리소설은 거기에 더해 미스테리한 사건이 더해진다. 사건은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이해불가의 영역에 있다. 독자는 곳곳에 던져진 단서 조각만을 가지고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범인은 누구일지, 범인의 동기는 무엇일지 상상한다. 이 과정에서 흥미를 느끼게 된다. 사건 해결 그 자체에서만 재미를 찾을 수 있다면 그것은 소설이 아니라 수수께끼에 가까울 것이다. 소설은 풀이의 대상이 아니라 상상의 대상이다.


또한 주인공이 사건을 해결하는 카타르시스도 큰 부분을 차지한다. 자기는 풀 수 없는 문제를 탐정이 멋지게 해결하여 범인을 잡아내는 과정에서 엄청난 재미가 온다. 『셜록 홈즈 시리즈』가 카타르시스를 극대화하여 성공한 대표적인 케이스다. 이 얘기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루겠다.


반전은 이 카타르시스를 증폭시켜주는 장치다. 흔히 반전을 마주했을 때 '뒤통수 맞았다'라는 표현을 쓴다.  그동안 당연하게 사실이라고 받아들였던 것이 반전으로 인해 갑작스럽게 부정당하면서 뒤통수 맞은 상태가 되었다가, 서서히 모든 게 이해되며 카타르시스가 몰려온다.


역사에 남을 통수 짤


반전은 잘못 사용하면 독이 된다. 카타르시스가 아니라 짜증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잘 만들어진 반전이어야 충격을 받고 재미를 느끼지, 이도 저도 아닌 반전이라면 '뭐야 이게?'가 된다. 밀실에서 사건이 일어났는데, 알고 보니 범인만 알고 있는 비밀통로가 있더라 하면 생각만 해도 어이없지 않은가? 더군다나 독자가 비밀통로의 존재를 알아차릴 단서가 전혀 주어지지 않았다면 욕 엄청 먹을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애거서 크리스티가 이 작품들을 내고 욕을 먹은 것도 당연하다. 그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반전 기법을 추리소설에서 선보인 것이다. 추리소설이 독자와 작가 간의 두뇌 싸움이었던 그 당시에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반전은 독자를 향한 기만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문제 출제자가 의도적으로 문제를 속여서 낸 꼴이다. 범인을 잡으려고 머리를 쥐어짜매고 있던 독자들이 배신감을 느낄 만하다.


그런데 어째서 애거서 크리스티는 독자를 속였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추리소설의 여왕이라는 수식어를 얻게 되었을까? 간단하다. 재밌기 때문이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속임수가 우리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결국 추리소설은 수수께끼가 아니라 소설이다. 그리고 소설의 본질은 재미를 주는 것이다. 소설뿐만 아니라 영화, 게임, 음악 등 거의 모든 예술은 소비자에게 재미를 느끼게 하는 게 가장 원초적인 목적이다.


아무리 두뇌 싸움의 성격이 퇴색되었다 한들 그것을 능가하는 재미가 있기 때문에 애거서 크리스티는 추리소설의 여왕이 될 수 있었다. 애거서 크리스티가 사용한 각종 장치가 오늘날 추리 장르에서, 더 나아가 다양한 작품에서 쓰이는 건 반전이 주는 카타르시스의 힘이 그만큼 강력하다는 뜻이다.


사실 카타르시스의 정확한 뜻은 따로 있지만 그냥 넘어가자




다음에 한 번 더 추리소설을 리뷰하게 된다면 그때는 셜록 홈즈를 다루겠다. 그때가 되면 말하겠지만, 셜록 홈즈 시리즈는 두뇌싸움은 사실상 포기하고, 소설로써의 카타르시스를 극대화한 작품이다. 혹시나 추리소설에 입문하고 싶다면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보다는 셜록 홈즈 시리즈를 먼저 읽기를 추천한다. 아니면 다른 유명한 현대 추리소설도 괜찮다. 아무쪼록 더 많은 이가 추리소설의 재미를 맛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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