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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비단 Jan 28. 2023

휴머노이드의 인간적인 이야기

김영하 『작별 인사』

소설가 김영하가 9년 만에 신작 장편소설 <작별인사>를 출간했다. 몇 년 전 밀리의 서재에서 연재한 소설을 고쳐서 낸 것이라고 한다. 장르가 무려 SF다. 김영하가 쓴 SF라니. 어떤 소설일지 감이 안 갔다. 서점에서 발견하자마자 바로 구매했다.



읽어보니 일반적인 SF랑은 결이 달랐다. 일반적인 SF라 하면 기발한 미래기술과 미래사회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작가가 독특하고 창의적인 미래기술을 상상해 내는 것이 중요한 장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작별인사>에서 나타나는 미래기술은 어디서 많이 본 것들이다. ‘휴머노이드’는 SF의 대표적인 클리셰가 된 지 오래다. 그러나 김영하는 특유의 현실적인 시각으로 미래사회를 그려냈다. 충동적으로 구매했다가 버려지는 휴머노이드, 휴머노이드의 인권을 중시한다면서 수용소에 가둬놓는 정부, 복제인간으로 장기매매를 하는 브리더, 차별로 인해 일어나는 반란, 인공지능에 의존하는 인간, 그리고 인간의 멸종을 기다리는 인공지능 등등…. 그 과정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인간이란


인간이란 무엇일까?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주인공 철이는 수용소에 끌려온 이후로 계속 이런 질문에 시달렸다. 수용소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자신이 인간임을 증명하려고 했으나, 증거가 하나도 없었다. 철이는 한국에서 가장 큰 휴머노이드 회사인 휴먼매터스에서 제작된 휴머노이드다. 최신 휴머노이드들은 인간과 구분할 수 없었다. 그들은 인간처럼 음식을 먹어 에너지를 얻고, 똥오줌을 배설하며, 밤에는 잠을 자고, 상처가 나면 피를 흘렸다. 철이는 자기 자신을 인간이라고 확신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철이는 아버지인 최진수 박사와 만나기 위해 애쓴다.


인간과 휴머노이드의 차이는 무엇일까? 인간은 난자와 정자가 만나 수정되고, 유전정보에 의해 발생이 진행되어 인간이 된다. 휴머노이드는 인간에 의해 설계되고 제작된다. 하지만 나는 소설을 읽으면 읽을수록 이 차이가 큰 대수인가 싶었다. 철이가 아니라 민이 수준만 해도 ‘인간’과 구분하기 어렵다. 그들은 인간과 똑같이 밥을 먹고, 똥을 싸고, 피부가 부패하고, 총을 맞으면 죽고, 의식이 있고, 감정을 느끼며, 목표를 세우고, 타인 그리고 세상과 소통한다.


수용소에서 만난 선이는 어떠할까? 선이는 복제인간이다. 난자와 정자의 수정 과정만 없었을 뿐, 선이도 다른 인간처럼 유전자 정보를 토대로 발생한 인간이다. 휴머노이드가 인간과 탄생 방법이 달랐기 때문에 인간이 아니라면, 복제인간 또한 인간과 탄생 방법이 다르니 인간이 아닌 걸까? 하지만 우리는 직관적으로 복제인간은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않은가?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복제인간을 인간으로 취급하는 것처럼, 인간은 두 대상이 외관상으로 그리고 기능상으로 차이가 없다면 같은 존재로 여긴다. 그러니 철이와 같은 휴머노이드 또한 인간으로 취급해야 옳지 않을까.


 과거에는 노예는 인간 취급을 하지 않았다. 또한 백인들은 흑인을 사람 취급하지 않았다. 여성 또한 같은 인간으로 취급받지 못한 시대가 있다. ‘인간’이라는 생물종이 모두 인간 취급을 받기 시작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며 인간의 범위가 점차 확장되어 온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란 개념은 절대적이지 않고, 변화 가능하다.


몇백 년 전만 해도 노예는 인간이 아니었다.


미래에 휴머노이드와 복제인간이 많아지는 때가 온다면 ‘인간’의 범위를 확장하여 그들을 인간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끝내 그들을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을 것인가.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사회적으로 많은 고민과 합의가 필요할 것이다.




선이, 누구보다 인간적인 복제인간


선이는 수용소에서 철이와 민이에게 자신의 신념을 설파한다. 선이는 ‘의식’에 집중한다.


 “걱정하지 마. 누나가 고쳐줄 거야. 넌 내가 지금까지 만난 그 어떤 인간보다도 훌륭하고, 그 어떤 인간보다도 온전해. 우리는 의식을 가진 존재로 태어났어. 민이 네가 인간이든 기계든 그건 중요하지 않아.”

 그녀는 의식과 감정을 가지고 태어난 존재는 인간이든 휴머노이드든간에 모두 하나로 연결되고 궁극에는 우주를 지배하는 정신으로 통합된다고 생각했다. 선이는 수용소에 들어오기 전부터, 우주의 모든 물질은 대부분의 시간을 절대적 무와 진공의 상태에서 보내지만 아주 잠시 의식을 가진 존재가 되어 우주정신과 소통할 기회를 얻게 된다고 여겼다.


선이는 의식을 가진 존재는 모두 우주정신에서 왔다고 생각한다. 모든 존재는 우주에서 먼지처럼 떠다니지만, 어떤 특별한 계기로 아주 잠깐 의식을 가진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어떤 존재는 동물로, 어떤 존재는 인간으로, 어떤 존재는 휴머노이드로. 즉 그녀에게 인간과 휴머노이드는 본질적으로 같은 존재이다. 태어나게 된 방법은 다 달라도, 우리는 의식을 갖고 미래를 인지하고 보다 위대한 목표를 추구하며 우주정신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라고, 그렇기에 삶은 소중한 것이라고 역설한다.


즉 선이는 의식을 가졌다는 점에서 인간, 복제인간, 휴머노이드가 모두 같다고 주장한다. 앞서 복제인간과 휴머노이드를 인간으로 인정할지 말지 고민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선이는 ‘선한 인간’의 상징이다. 복제인간으로 태어나 늙은 인간에게 장기가 뜯겨 무의미하게 죽을 운명이었던 선이가 이러한 신념을 갖게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자신이 왜 태어났는지, 자신은 어떤 존재인지, 자신은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지 고민한 결과 우주정신론이 탄생했다. 선이의 우주정신론은 최진수 박사나 달마의 생각보다도 훨씬 인간적이라고 느껴진다. 복제인간이 다른 누구보다도 인간적이라고 느껴지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여담으로 읽다 보니 선이가 진주인공이라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철이보다도 목표가 뚜렷하고, 비극도 겪고, 이야기 후반부에 인간성이 옅어지는 철이와 달리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적으로 행동한다. 그만큼 선이라는 캐릭터는 매력적이다. 선이 시점의 스핀오브 소설을 읽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최진수 박사, 그의 모순


선이가 ‘선한 인간’을 상징한다면, 최진수 박사는 ‘악한 인간’을 상징한다. 여기서 ‘악하다’라는 것은 도덕적으로 나쁘다는 뜻보다는 인간과 인공지능을 완전히 다른 존재로 구분 짓는, 인간중심적 사고를 가졌다는 의미다.


최진수 박사는 인공지능을 경계한다. 인공지능이 발전해서 인공지능이 인공지능을 만드는 수준까지 도달한다면 인간에게 큰 위협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인간은 인공지능에 의존하고, 인공지능은 더이상 인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 날이 올 거라고, 그날이 오면 인공지능이 인간을 멸망시킬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두려운가 휴먼?


그래서 최진수 박사는 인간보다 인간다운 휴머노이드를 만들었다. 인간처럼 사고하고, 자기 자신을 인간으로 인지하고, 인간의 문화유산을 후대에 물려줄 철이를 만들었다. 그래서 최진수 박사는 철이에게 인류의 문화를 가르쳤다. 철이에게 다양한 감정을 교육했다. 철이를 자신의 아들처럼 길렀다. 철이를 진심으로 자신의 아들처럼 여기는 듯했다.


그러나 후반에 가서 최진수 박사는 철이를 인간이 아닌 휴머노이드로 대한다. 자신에게 돌아오지 않는 철이를 향해 기능을 강제로 정지시켜 데려가겠다고 협박하는 모습에서 철이를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철이의 자유와 의지를 전혀 배려하지 않고, 그저 자신의 물건을 수거하러 온 듯한 뉘앙스로 철이를 대한다. 철이는 그런 최진수 박사를 보고 자신은 인간도, 아들도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휴머노이드를 만드는 게 정말 그 휴머노이드를 위해서일까? 인간에게 필요한 장기를 생산하기 위해 선이와 같은 클론을 배양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같은 이유일 것이다. 인간은 모든 것을 도구로만 여기고 그것의 활용을 고민한다. 나의 ‘용도’는 정확히 무엇일까? 그것을 분명히 알기 전에는 휴먼매터스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최진수 박사에게 철이는 아들이 아니라 ‘도구’였다. 자신의 신념을 현실화할 도구. 인간의 위대한 문화를 지키고 전수할 도구. 자신의 명령을 듣지 않으면 강제로 수거해오는 도구. 인간과 똑같은 휴머노이드를 만들어 인간과 휴머노이드를 연결하겠다던 사람이, 소설 속 그 누구보다 철이를 휴머노이드로 여긴다는 점이 최진수 박사의 모순이다. 그리고 그 점이 인간답다고 느껴진다.




태어나지 않는 게 낫다


민이가 죽고 난 뒤, 철이와 선이는 민이의 머리를 챙겨 이동하던 중 휴머노이드 달마를 만난다. 달마는 철이와 선이를 기지로 안내한다. 그 기지는 여러 휴머노이드들이 자체적으로 휴머노이드를 개발하고 인류의 멸망을 기다리는 곳이었다. 인공지능이 인류를 공격하고 파괴하는 일은 없었다. 대신 그들은 인류가 자연선택에서 도태되어 스스로 멸종하기를 기다렸다.


선이는 민이의 머리를 가지고 민이를 살려달라고 한다. 민이의 머릿속 기억장치를 이용하면, 적당한 휴머노이드 육체에 이식하여 민이를 되살릴 수 있다. 그러나 달마는 ‘죽은 민이를 왜 되살려야 하나’라며 반문한다. 여기서 이 소설에서 가장 철학적인 논쟁이 펼쳐진다. 누구보다 인간다운 복제인간과, 누구보다 인공지능다운 휴머노이드의 삶과 죽음을 둘러싼 논쟁이다.


달마는 민이를 되살리는 것은 민이에게 고통을 안기는 일이므로 옳지 않다고 말한다. 모든 의식을 가진 존재는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다고 주장한다. 이 세상에 태어난다는 것은 불필요한 고통을 겪게 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민이는 극심한 고통을 경험하고 죽었다. 되살아난다면 더욱 고통을 받을 것이다.


선이는 반박한다. 민이는 살해당했다. 살면서 고통밖에 겪지 않았다. 아직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한 채 죽었다. 아예 태어나지 않는 것이 좋은 방법일 수는 있겠으나, 민이는 이미 태어난 존재다. 그러니 의식을 되찾아서 삶의 의미를 추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 우주에서 의식을 갖고 태어나는 것은 너무나도 귀한 일이기 때문에, 의식을 가진 존재는 마땅히 해야 하는 의미 있는 일이 있다. 그것은 바로 불필요한 고통을 줄이는 일이다. 불필요한 고통을 줄이는 일은 의식과 지성을 가진 존재만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민이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논쟁이 이어진 결과, 민이를 되살리는 데 따르는 책임은 모두 선이가 지는 것으로 달마는 민이를 되살려주기로 결정한다. 이 논쟁은 ‘인간의 삶에는 어떠한 의미가 있는가’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짧게나마 요약해주었으나 직접 책으로 보길 바란다.


달마는 자신들의 최종 목표가 모든 의식(인간의 의식, 인공지능, 기계지능 모두)을 절대적인 의식으로 통합하는 것임을 밝힌다. 자아의 개념이 없고, 모두가 연결되고 통합되는 절대적인 의식체가 되는 것이다. 철이가 선이에게 우주정신과 비슷한 거 아니냐고 묻자 선이가 반박한다. 우주정신은 개체의 개별성을 인정한다고. 우연한 기회로 의식을 가진 생명체로 태어나면, 그 생명체의 자아를 인정하고 그렇게 개별적인 의식을 가지게 된다고.




의식을 갖는 존재


이 챕터 이후로 철이는 달마의 제안대로 기계지능의 일부가 될지, 아니면 최진수 박사를 만나 예전의 삶으로 돌아갈지 고민한다.


달마의 기계지능과 선이의 우주정신을 좀 더 들여다보자. 달마의 기계지능은 모든 의식의 절대적인 통합이다. 기계지능에서는 모든 의식의 자아, 정체성, 개별성이 사라진다. 섞이기 전의 각자의 특성은 모두 사라지고 커다란 혼합체가 되는 것이다. 기계지능에 통합되면 자아가 없기 때문에 삶의 목적이라든가, 경험이라든가, 욕구라든가,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모든 것이 사라진다. 만약 철이가 기계지능으로 통합된다면 기계지능은 인간의 감정을 갖게 되겠지만, 단지 그뿐. 경험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감정이란 것도 큰 의미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철이는 기계지능이 되길 두려워한다. 자신이 살면서 겪은 경험, 감정, 추억, 관계가 모두 의미가 사라진다는데, 당연히 꺼려할 수밖에 없다.


선이의 우주정신은 정반대다. 우선 모든 의식을 가진 존재는 우주정신에서 우연히 떨어져 나온 것이다. 우주 속에 떠돌아다니던 먼지들이 어쩌다가 모여서 생명체를 이룬다. 의식과 지능을 갖춘 생명체는 우주정신에 대해 사유하고, 탐구하고, 삶을 살아가는 축복을 누린다. 그 후 생명체가 죽고 나서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우주정신의 일부로 되돌아간다.


선이의 우주정신론은 사이비 종교 같기도 하다. 우주정신이라는 신과 같은 절대적인 무언가가 있고, 똑같이 인간에게 별 관심은 없고, 인간은 근거도 없이 그것을 믿는다. 우주정신론과 종교는 모두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만들어졌다. 인간은 삶에 특별한 의미나 목적이 존재할 것이라고 믿는다. 인간이나 대장균이나 별 다를 것 없는데도, 의식이라는 걸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자기 존재가 특별하다고 믿고 싶은 것이다.


어쩌면 인간의 본성일지도 모른다. ‘의식’을 가지게 된 대가로, 삶의 의미와 목적을 궁금해하고, 그것을 갈구하고, 사실 그런 건 없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근거 없는 논리라도 만들어서 믿는. 옛사람들이 종교를 창조했듯이. 복제인간인 선이가 우주정신을 창조했듯이.




마지막 인간


최진수 박사를 해치운 철이는 이후 기계지능으로서 살아간다. 육체라는 제약에서 벗어나 네트워크를 탐험하며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자유롭게 한다. 그래서일까, 철이는 휴머노이드 시절 좋아했던 소설과 영화를 더이상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인간이 소설과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삶이 유한하기 때문에 최대한 많은 경험을 하기 위해서라고, 자신이 소설과 영화에 무덤덤해진 이유는 자신이 불멸의 존재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오랜 시간이 흐르고 철이는 선이의 흔적을 찾았다. 선이는 시베리아 근방의 작은 마을에 살고 있었다. 철이는 선이를 찾아가기로 한다. 어째선지 인간의 육체를 지닌 상태로 만나야 할 것 같다.


   나는 몸이 죽으면 의식도 함께 소멸할 수 있는 상태, 인간들이 오랜 세월 함께했던 그 취약함을 그대로 가진 채로 선이 앞에 나타나고 싶었다. 선이를 내 눈으로 보고 싶었고, 손을 잡고 밤새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그러려면 나도 그녀와 같은 상태여야만 할 것 같았다.


선이는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가 되어 있었다. 갑작스러운 철이의 방문에 선이는 놀란다. 철이가 기억 속 모습과 똑같았기 때문이다. 선이는 복제인간, 휴머노이드, 동물들이 모여 사는 작은 마을의 지도자였다. 철이와 선이는 4년을 함께 지낸다. 철이는 선이가 죽은 후로도 오랫동안 마을에 남는다. 철이는 세상에 남은 마지막 인간이 된다.


 우리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은 예감하고 있었지만 오랜만에 편안해하는 선이를 보니 어쩌면 몇 년은 더 함께 지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작별의 인사를 나눌 수 있도록 허락된, 아주 잠깐의 휴식 같은 것이었다.

 여기서 구조되더라도 육신이 없는 텅 빈 의식으로 살아가다가 오래지 않아 기계지능의 일부로 통합될 것이다. 내가 누구이며 어떤 존재인지를 더이상 묻지 않아도 되는 삶. 자아라는 것이 사라진 삶. 그것이 지금 맞이하려는 죽음과 무엇이 다를까?

 나는 버튼을 누르지 않기로 했다. 선이의 생각이 맞기를 바랐던 것이다. 나는 팔을 내려놓았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야겠지만, 그리고 만나도 알아보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어디서든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그때까지 꿈도 없는 깊고 깊은 잠을 자면 된다.


소설 속에서 철이는 세 번의 작별을 겪는다. 첫 번째는 아버지와의 작별, 두 번째는 유일한 친구였던 선이와의 작별, 세 번째는 마지막 인간으로서 이 세상과의 작별이다.


철이는 원치 않은 계기로 자신의 정체를 알게 되었고, 오랜 시간 동안 인간의 삶과 인공지능의 삶 사이에서 방황했다. 수용소를 탈출할 때만 해도 자신을 인간으로 믿었고, 육체를 잃고 난 뒤 인공지능일 때는 자신의 창조주인 최진수 박사를 해치웠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자신의 유일한 친구인 선이와 만나기 위해 다시 인간으로 돌아왔고, 인간으로서 죽음을 맞이한다. 소설의 마지막 챕터 제목처럼, 철이는 세상에 남은 ‘마지막 인간’으로서 세상과 작별한다. 끝내 철이는 인간의 삶을 선택했다.


<작별인사>라는 제목은 이를 위해 지어졌을 것이다. 작별은 개별적이고 유한한 존재만이 할 수 있다. 기계지능에 통합되어 불멸의 목숨과 개별성이 거세된 인공지능은 ‘작별’할 수 없다. 인간처럼 나와 타인이 다르고, 각자의 개성이 소중함을 이해하고, 언젠가 죽음이 우리를 찾아올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한 존재가 ‘작별’을 이해하고, 그에 슬퍼하고, 그것을 행할 수 있다. 철이가 아버지와 작별할 때는 아무 감정묘사가 없지만, 선이와 그리고 세상과 작별할 때는 가슴 깊이 슬퍼하는 것처럼 말이다.




달마 파트만 제외하면 쉽게 읽을 수 있는 SF 소설이었다. 다만 흔한 소재로 이야기를 진행하기 때문에 SF 매니아라면 식상하다고 느낄 수 있다. SF 단골 소재, 간단한 플롯, 감동적인 엔딩 등 여러모로 SF 입문작으로 적당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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