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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비단 Apr 11. 2023

소년만화계의 이단아 - 『체인소맨』

그 춤


 나는 애니를 안 본다. 그런데 인터넷을 하다 보니 한 애니 얘기가 계속 들렸다. 바로 '체인소맨'. 쇼츠랑 틱톡에서 토카토카 댄스로 유행한 적도 있어서 일반인도 많이 익숙한 애니일 것이다. 처음엔 표지만 보고 저게 뭔 애니지 했는데(왜 머리에 전기톱이...?) 내가 보는 유튜버도 그 애니 얘기를 하길래 얼마나 재밌나 싶어서 봤다.



 체인소맨의 스토리를 한 줄로 요약하면 ‘우연한 계기로 힘을 얻은 소년이 고난을 극복하고 성장하며 적을 물리친다’이다. 딱 보면 전형적인 소년만화 스토리다. 하지만 보다 보면 소년만화의 클리셰를 뒤틀어버리는 만화임을 알게 된다. 체인소맨은 소년만화 클리셰를 어떤 방식으로 파괴했을까?




1. 주인공


체인소맨 주인공 덴지

 주인공 덴지는 우선 목표가 없다. 소년만화의 주인공이라면 응당 거창한 목표가 있다. 나루토는 호카게가 되겠다, 원피스는 해적왕이 되겠다 하는 것처럼 말이다. 소년만화의 주인공은 거대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 그 과정에서 시련을 겪고, 적과 싸우고, 성장한다. 주인공의 목표는 주인공의 강력한 동기이자 독자가 작품을 계속 보게 만드는 원천이다. 원피스를 보는 사람은 루피가 대체 언제 해적왕이 되나 궁금해서 작품을 본다. 원피스를 보다가 하차한 사람도 루피가 해적왕이 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진짜인가 싶어 원피스를 다시 볼 것이다. 이처럼 소년만화에서 주인공의 목표는 작품 내적으로도 외적으로도 중요한 장치다.


 하지만 덴지는 목표가 없다. 굳이 목표라는 걸 꼽아봐도 굉장히 하찮다. 덴지의 목표를 살펴보면 초반부는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다, 전기톱의 악마가 된 이후는 여자 가슴을 만지고 싶다(?), 그 목표를 달성한 후는 마키마와 사귀고 싶다가 끝이다. ‘총의 악마를 잡는다’라는 최종 목표가 있긴 한데 그건 마키마가 덴지에게 총의 악마를 죽이면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해서 덴지가 받아들인 것이다. 덴지는 성욕에만 충실히 행동할 뿐이다. 그 과정에서 덴지가 겪는 사건은 ‘어쩌다 보니’ 겪게 되는 느낌이 크다. (덴지의 진정한 목표는 ‘평범한 삶을 살고 싶다’지만 작품에서 그것이 부각되지 않고 넘어간다)


그저 성욕에 충실한 놈...


 두 번째로 내적성장이 없다. 소년만화의 주인공은 시간이 흐르면서 외적 성장과 내적 성장을 한다. 외적 성장은 강해지는 것이다. 덴지는 체인소맨이 되고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더 강한 적을 만나고 끝끝내 쓰러뜨리며 강해진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내적 성장은 전혀 없다. 내적 성장은 주인공의 내면이 한층 성장하고, 의식이 성숙해지는 과정이다. 덴지는 이야기 처음부터 끝까지 정신 나간 성격 그대로다. 동료가 죽어도 ‘난 왜 동료가 죽었는데 슬프지 않지? 이상하네.’라고 독백하고 넘어가는 게 끝이다


 마지막으로 성격이 나쁘다. 보통 소년만화의 주인공은 정의롭고, 열정 있고, 착한 성격이다. 하지만 덴지는 절대 착하다고 할 수 없는 성격이다. 혼돈 중립에 가까운 성향을 보인다. 악마와 맞서 싸우는 이유는 마키마가 그러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협박해서다. 마키마가 죽인다고 안 그랬으면 범죄자가 됐을 캐릭터다. 시민을 구해야 한다는 정의감, 선의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이 특징들은 체인소맨만의 특징이라기보다는 최근 애니계의 트렌드라고 보는 게 정확하다. 목표가 뚜렷하고, 정의로운 성격의 주인공은 전통 소년만화에서나 보이던, 말하자면 구시대적 클리셰다. 최근 애니, 웹툰, 웹소설의 주인공은 성격이 나쁘고, 목표도 별로 확실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어찌 보면 덴지는 최근 트렌드의 주인공을 소년만화에 적절하게 이식한 캐릭터로 봐도 될 듯하다.




2. 스토리


 체인소맨의 스토리는 남다른 전개를 보인다. 1화부터 주인공을 죽여버린다. 위험한 상황에 빠져서 체인소맨으로 각성해서 극복할 줄 알았더니 그냥 토막 난다. 좀비의 악마를 무찌른 후 마키마가 나타나서 히로인인가 싶었는데 마키마가 덴지에게 충성스러운 개가 되어달라고 한다. 말 안 들으면 죽여버리겠다는 협박과 함께. 영원의 악마의 함정에 빠졌을 때는 무슨 기발한 방법으로 극복하나 했는데 3일 밤낮으로 악마를 계속 베어서 항복을 받아낸다. 사무라이 소드에게 습격을 받자 히메노가 희생해서 유령의 악마를 소환하는데, 유령의 악마가 1초컷 당한다. 그 후 발암 민폐 캐릭터인 줄 알았던 놈이 나타나서 사무라이 소드와 싸워서 승리한다. 진짜 정신이 혼미해지는 전개다.


소년만화의 스토리는 보통 이렇게 구성된다. 일상을 살던 주인공이 목표를 갖게 됨 -> 동료를 만나고 함께 강해짐 -> 적과 만남 -> 패배 -> 더 강해지기 위해 노력 -> 결국 승리함 -> 더 강한 적을 만남 -> 반복. 체인소맨 역시 이 스토리를 따른다. 그런데 다른 소년만화와 차이점이 있다. 다른 소년만화는 주인공이 싸우는 적이나 겪는 시련 등은 주인공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일이다. 이 적을 쓰러뜨리지 못하거나 이 시련을 극복하지 못하면 목표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에 주인공은 포기하지 않고 노력해서 끝끝내 극복한다.


소년만화 스토리 요약.jpg


반면 체인소맨의 덴지가 만나는 적이나 사건은 어쩌다 보니 만나게 된다. 파워 가슴을 만지려고 하다가 갑자기 박쥐의 악마가 공격하고, 임무 수행하러 갔더니 갑자기 내 심장을 노리는 영원의 악마가 나타나고, 밥이나 먹으려고 했더니 갑자기 사무라이 소드가 냅다 공격하고…. 뚜렷한 목표가 없기 때문에 덴지가 겪는 사건은 모두 ‘어쩌다 보니’ 겪게 된다. 이 점이 다른 소년만화와 가장 큰 차이점이다.


 히로인이 존재하지 않는 것도 특이하다. 소년만화에서 히로인의 존재는 거의 필수적이다. 스토리에 히로인이 필요 없다 하더라도, 작가는 의례적으로 히로인을 넣는다. 하지만 체인소맨에는 히로인이 없다. 덴지가 마키마를 좋아하긴 하지만, 마키마는 목적을 위해 덴지를 이용하는 느낌이 풀풀 난다. 마키마는 히로인보다는 덴지에게 목표를 제시해 동기를 제공하는 역할이다. 파워는… 히로인보다는 개그 캐릭터에 가깝다. 주인공 배신하고, 위험할 때 지 혼자 도망치는 캐릭터를 히로인이라고 하기에는 무리 아닐까.


아무리 봐도 히로인이 아니라 최종보스신데요


 동료의 희생을 뒤튼 것도 인상적이다. 소년만화에서 동료가 희생하여 주인공이 각성하는 전개가 흔하다. 이 만화도 중후반부에 히메노라는 동료가 희생한다. 그러나 그 희생은 아무 역할도 하지 못한다. 히메노가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서 유령의 악마를 소환했지만, 소환하자마자 뱀의 악마에게 먹혀 리타이어한다. 그리고 덴지는 히메노의 죽음에 아무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 동료의 죽음에 아무렇지도 않은 주인공이라니. 참신하다고 해야 할까.




3. 아키


 지금까지 체인소맨이 소년만화의 클리셰를 어떻게 뒤틀었는지 알아보았다. 이쯤에서 덴지의 동료인 아키 이야기를 하고 싶다. 아키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전형적인 소년만화 주인공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체인소맨에서 가장 멋있는 장면이 뭐냐고 물으면 십중팔구는 아키가 여우의 악마를 부르는 장면을 고를 것이다. 애니에서 가장 간지 나는 장면이 주인공이 아닌 다른 인물에게 주어졌다는 점에서 아키가 보통 캐릭터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콩"


 덴지는 소년만화 주인공 클리셰를 뒤튼 인물이다. 반대로 아키는 전형적인 소년만화 주인공 캐릭터다. 총의 악마에 의해 가족이 몰살당했고, 복수하기 위해 공안 데블헌터가 되었으며, 소중한 동료가 죽어 슬퍼하고, 더 강력한 악마와 계약해 강해지고, 마지막에는 동료의 죽음을 극복하고 내적 성장까지 이룬다.



 아키의 서사는 히메노와 만나며 더욱 강화된다. 히메노는 아키의 동료로, 아키가 데블헌터를 그만두고 평범한 삶을 살기 원한다. 또한 아키에게 담배를 가르친 인물이기도 하다. 담배를 거부하던 아키는 히메노의 계속되는 권유에 결국 한 대만 피워주겠다며 담배를 피우려 한다. 하지만 아키가 미성년자라는 사실을 알자 히메노는 다시 담배를 뺏어간다.


 “그럼 이 한 대는 내가 맡아 둘게. 네가 어른이 되고 뭔가에 의지하고 싶어지면 그때 돌려줄게.”


 담배는 아키에게 가장 중요한 상징이다. 담배를 피우면 폐가 썩게 되지만, 그럼에도 아키와 히메노는 함께 담배를 피운다. 담배는 언제 목숨을 잃을지 모르는 데블헌터의 삶, 그리고 데블헌터 버디 히메노와의 유대를 상징한다. 또한 히메노가 뺏어간 담배는 어른을 상징한다. 아키는 총의 악마에게 복수하기 위해 살았다. 그 무엇에도 의지하지 않고 복수라는 목표만 맹목적으로 좇는 어린 아이로 살았다. 히메노는 그런 어린 아이 손에서 담배를 뺏었다. 어른이 되면 돌려주겠다는 약속과 함께.



 마지막 화에서 아키는 죽은 히메노한테 담배를 돌려받는다. ‘Easy revenge!’라 적힌 담배. 그것을 보고 히메노를 떠올린 아키는 공포를 극복하고 적을 무찌른다. 모든 일이 끝나고 덴지, 파워, 아키가 모여 평화롭게 소소한 파티를 즐긴다. 아키는 덴지와 파워를 뒤로 하고, ‘Easy revenge!’라 적힌 담배를 태운다. 이 연출은 체인소맨에서 가장 뛰어난 연출이다. 서서히 타들어가는 ‘Easy revenge!’를 통해 아키가 복수를 그만두고 일상을 지키기로 다짐한 것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아키는 히메노에게 돌려받은 담배를 태워보냄으로써 복수를 그만두고, 슬픔을 극복하고, 어른이 되었다. 성격, 서사, 연출까지. 아키는 소년만화의 정석 주인공이라 할만한 매력적인 캐릭터다.


캐릭터의 내적성장을 제대로 시각화한 연출




 ‘소년만화의 이단아’라는 주제로 쓰다 보니 액션이나 마키마, 파워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못했다. 뇌 빼고 보기 좋은 액션 애니이니 흥미가 생겼다면 한 번쯤 보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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