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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비단 Mar 09. 2024

예술의 값어치

현대 사회에 와서 예술의 가치란 값어치를 뜻한다


유치하게 못 쓴 시


 나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시를 썼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매일 진지하게 어떻게 죽어야 덜 아플까 고민하던 시기였다. 하지만 죽을 용기는 없었다. 죽기는 무서우니 대신 시를 썼다. 어째서 시인가? 나도 모른다. 그냥 썼다. 그때 쓰던 시는 감정의 배설구였다. 표지가 거의 뜯겨나가기 직전인 노트에 샤프로 글을 써내려가고, 퇴고 한 번 하지 않고 버렸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진지하게 글을 써보기로 마음을 먹고 블로그에 리뷰나 수필 따위를 올릴 때였다. 소설은 가벼운 마음으로 썼다. 단지 내 머릿속에 떠다니는 상념을 종이에 옮겨 적는 느낌이었다. 기숙사 자습 시간에,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A5 노트에 샤프로 소설을 썼다. 처음 쓴 소설은 한 남자가 자살하는 내용이었다. 약 1000자 정도의 짧은 엽편으로 기억한다.


 그렇게 시작한 시 소설 쓰기를 아직까지 하고 있다. 작가가 되고 싶다는 마음은 있지만, 그다지 재능은 없어 보인다. 하릴없이 쓰고 있기는 한데, 작가가 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출판사에 메일을 보내나? 신춘문예는 대체 또 뭐지?




 나 같은 아마추어 글쟁이라도,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갖게 되는 의문이 있다. 대체 예술이란 무엇인가?


 작가는 글을 매개로 예술을 하는 사람이다. 시, 소설, 희곡 등의 분야가 있다. 예술인지 아닌지 애매한 영역에 에세이가 있다. 나는 시를 쓰고 소설을 쓰니 예술을 한다고 말할 수 있다. 예술을 하는 인간이 예술이 뭔지는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예술의 정의는 똑똑한 양반들도 몇 세기 동안 함부로 내리지 못한 주제다. 한낱 나부랭이가 답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나는 그 대신 다른 질문에 집중했다. 과연 예술의 가치는 어디에서 오는가?


 예술은 가치를 중요시한다. 위대한 작품은 불멸의 가치와 명성을 수반한다. 어떤 작품은 몇 세기가 지나서도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가치를 재부여받는다. 예술 작품을 만들고 그에 걸맞은 가치를 인정받는 것은 예술가의 최종 목표라고 할 수 있다.


 예술가의 삶이 고달프면 가치는 더더욱 올라간다. 생전에 전혀 주목받지 못하고 쓸쓸하게 죽은 고흐라든가, 거대한 시대 흐름 속에서 날개를 펴지 못하고 죽은 윤동주라든가. 괴로운 삶에서 탄생한 예술 작품에 사람들은 열광한다. 역시 예술은 고통 속에서 탄생하는 것이라면서, 아리스토텔레스가 할 법한 말을 지껄인다.


폴 고갱, <해바라기를 그리는 빈센트 반 고흐>, 1888


 하지만 나는 이상함을 느낀다. 사람들이 정말로 예술의 가치를 알아보기나 하는 게 맞을까? 직접 글을 쓰는 나도 아직 알지 못하는 ‘예술의 가치’를, 베스트셀러 판매대를 기웃대는 사람이, 명화 앞에서 셀카를 찍는 사람이, 상영관 의자에 몸을 파묻어 팝콘을 우걱이는 사람이 알기나 할까? 그럴 리가 없다.


 그렇다면 예술의 가치는 누가 매기는 것인가? 평론가? 출판사? 유튜버? 블로거? 투자자? 배급사? OTT 스트리밍 서비스?


 어떤 그림이 몇 억에 팔렸다더라, 어떤 소설이 영화화되어서 몇 억을 벌었다더라, 어떤 노래가 역주행해서 몇 백만 조회수를 찍었다더라. 누구도 예술의 가치에 대해서 얘기하지 않는다. 귀에 들리는 이야기라곤 돈 얘기밖에 없다. 그렇다. 현대 사회에 와서 예술의 가치란, 값어치를 뜻한다.




Vittgen, <Chasing Light>, 2020


 <체이싱 라이트>라는 인디 게임이 있다. 한국의 인디 게임 개발사 비트겐이 제작한 게임이다. 이 게임은 경력 없는 게임 제작자가 투자를 받고 게임을 제작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거기서 이런 대사가 나온다.


 작품이라고 말하는 건 매우 위험해. 이게 상품이라는 사실을 잊게 만들거든

 이 게임은 계속해서 작품성과 상품성 사이에 플레이어를 던져놓고 갈등시킨다. 이 게임에 대해 더 자세히 얘기하고 싶지만, 제작자가 게임 리뷰를 일절 금지시켜서 그럴 수 없다.


 나는 저 게임을 어떤 스트리머가 플레이하는 것을 실시간으로 보았다. 그리고 나는 혼란을 겪었다. 내가 쓴 시와 소설은 작품인가 상품인가. 만약 작품이라면 그만한 가치를 지녔는가? 만약 상품이라면 그만한 값어치를 지녔는가? 나는 어떠한 대답도 내놓지 못했다.




 더이상 순수예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예술가가 있다. 한국 사람의 절반은 책을 아예 읽지 않는다. 소설이라 하면 종이에 인쇄된 문고본보다 길고 어지러운 제목의 웹소설이 먼저 떠오른다. 일진물, 회귀물, 헌터물 같은 비슷비슷한 웹툰이 판친다. 멜론 TOP100에 똑같은 가수가 무더기로 줄을 세운다. 영화관은 폭탄 터지는 소리와 섬광만 가득하다.


 책장에 꽂힌 노트를 꺼냈다. 내가 쓴 비루한 글이 새겨져 있다. 아무 가치도, 값어치도 없는 검은색 흑연 자국에 불과하다. 값어치를 따지는 예술의 세계에 내가 발 들일 곳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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