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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비단 Mar 08. 2024

돈 벌기가 두렵다

나는 내 재능을 돈으로 바꾸는 법을 알지 못했다.



 인간이라면 돈을 벌어야 한다. 이는 헌법에도 나와 있다. 모든 국민은 근로의 의무가 있다. 돈이 없다면 그 무엇도 할 수 없다. 의식주 모든 것에 돈이 든다. 숨만 쉬어도 돈이 절로 빠져나간다. 민주주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일을 하고, 돈을 벌어야만 한다.


 그런데 나는 한 번도 돈을 번 적이 없다. 임용고시에 떨어진 지금도 돈을 벌고 있지 않다. 도서관에 처박혀 하루 종일 책을 읽거나 코딩 공부를 하거나 글을 쓴다. 군대 가기 전에 돈을 벌어놔야 할 텐데, 알바라도 빨리 구해야 할 텐데, 생각만 하고 일자리를 구하려는 시도는 하지 않는다.


 돈을 버는 게 두렵다. 내가 누군가에게 고용되어서 근면성실한 일꾼이 되어 임무를 수행하고 돈을 받아가는 일이 두렵다. 내 경력이라고는 사범대를 졸업하고 임용고시에 두 번이나 떨어진 것밖에 없다. 과연 누가 나를 고용할 것인가? 어떤 능력을 보고, 내게 돈을 줄 것인가?




 내 친구들은 돈을 벌고 있다. 공장에 다니고, 직장에 다녀서 나는 만져보지도 못한 돈을 벌고 있다. 친구들과 만날 때마다 친구들이 내가 계산하지 못하도록 막는 분위기가 깔려 있다. 계산대 앞에 내가 지갑을 꺼내려고 해도 나를 막아서서 자기가 카드를 내민다. 나는 어색하게 서 있다가 멍청하게 지갑을 도로 집어넣는다. 이런 상황이 올 때마다 고마움을 표해야 할지, 미안함을 표해야 할지 모르겠다.



 친구들은 돈을 벌고 어엿한 사회인이 되어가고 있는데, 나는 대체 무얼 하고 있는 걸까. 임용고시에 5년이란 시간을 버린, 경력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백수 새끼다. 열등감이 내 자존감을 깎아 먹는다.




 대학에 다닐 때, 부모님은 나보고 절대 알바를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고생하지 말고, 공부에만 집중하라고. 그 말을 듣고 나는 알바를 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지금 시대에 부모에게 용돈 받아먹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자위하면서 말이다. 꼴에 자존심은 있어서 통장에 돈이 다 떨어져 후불 교통비를 내지 못할 때까지 돈이 필요하다고 말하지도 못했다. 나는 이때쯤에 정신병원을 끊었다. 항우울제를 살 돈이 없었다.


 만약 부모님이 알바를 하지 말라는 얘기를 하지 않았다면, 알바를 한 번 해보라고 말했다면, 지금 내가 돈을 버는 것을 두려워하는 일도 없지 않았을까. 고생 좀 해보라고, 젊어서 하는 고생을 돈 주고서라도 해야 한다고 말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어릴 때는 내게 재능이 있는 줄만 알았다. 항상 좋은 성적을 받았고, 모든 어른이 칭찬했고, 나보고 큰 사람이 될 거라고 말했다. 고등학생 때 내신 올 1등급을 받았을 때는 뭐라도 된 듯이 기뻤다. 그래서 공부에 재능이 있는 줄 알았다.


 글을 잘 쓴다는 칭찬도 많이 받았다. 교내 글쓰기 대회에서 수상하고, 시에서 주최한 청소년 독후감 대회에서 상을 받기도 했다. 국어 시간에 시를 잘 쓴다고 친구들이 칭찬했다. 자기소개서를 쓸 때에 선생님이 놀라기도 했다. 그래서 글쓰기에도 재능이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야 깨달았다. 내게 재능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다. 임용고시는 처참한 점수를 받고 떨어졌고, 내 글은 지저분하고 온갖 오물이 껴 있다. 재능이 있다는 건 어림도 없는 착각이었다. 착각한 대가로 너무 많은 것을 잃었다.


 나는 내 재능을 돈으로 바꾸는 법을 알지 못했다. 내가 알던 내 재능은 어린애의 착각에 불과했다. 나는 결국 아무런 돈도 벌지 못하고 굶어 죽을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안토니오 만치니, <불쌍한 아이(Het arme kind)>, 1880-18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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