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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우 에디터 Aug 06. 2022

'청와대 미술관'은 가능할까?

미술관이 된 왕실의 역사

© YTN

청와대가 뜨거운 이슈에 휩싸였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청와대를 복합 예술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구상을 밝히면서,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쏟아지고 있어요. 이 소식이 전해진 건 지난 7월 21일.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을 레퍼런스로 해, 청와대를 자연유산과 예술이 어우러진 공간으로 가꾸겠다는 이야기가 보도되었습니다.


아래는 문체부가 밝힌 청와대 복합문화예술공간 조성 계획입니다.


© 문화체육관광부

청와대 내부엔 다양한 공간이 있습니다. 본관은 미술관으로 활용하고, 영빈관은 근현대미술관으로, 기자들이 있던 춘추관은 시민들의 공간으로, 2층 브리핑실은 민관에 대관하는 특별 전시공간으로 사용할 예정이라고 해요. 아직까지는 계획이지만, 원형 보존을 전재로 청와대를 한국 최고의 문화자산으로 브랜딩하려 한다고 해요.


그렇다면, 청와대가 예시로 든 '베르사유 궁전'을 한 번 살펴볼까요.


루이 14세와 베르사유 궁전 © wikipedia

베르사유 궁전은 프랑스 베르사유 시에 위치한 궁전입니다.


과거에도, 지금도 프랑스의 랜드마크 중 하나죠. 베르사유 궁전은 태양왕 루이 14세의 권력을 드러내기 위해, 매우 화려하게 지어졌습니다. 바로크 건축 양식이 활용된 걸작이죠. 당시 많은 귀족들이 궁전 안으로 거처를 옮길 수 있을 만큼 큰 공간이었고, 이 과정에서 다양한 미술 작품이 궁 안으로 들어옵니다. 시간이 지나며, 그 양은 점점 더 많아졌고요. 그리고 1830년, 왕위에 오른 루이 필립 왕의 명령으로 1837년부터 국립미술관이 되었습니다.


베르사유가 미술관이 되는데 걸린 시간은 약 7년, 건물의 건축적 아름다움은 유지하면서도, 곳곳에 걸린 미술 작품이 조화를 이루며 세계에서 손꼽히는 박물관이 되었습니다.


금수강산도와 일월도 © 조선일보

청와대에도 많은 미술작품이 있습니다.


약 6-7백여 점 가량이 소장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요. 이것이 '추정'인 이유는, 여지까지 단 한번도 청와대 소장품이 공식적으로 기록된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1997년까지 청와대 소장품은 '비품'으로 관리되었는데요. 비품은 5년에 한 번씩 기록이 리셋됩니다.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에서 청와대 소장품을 전수조사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모두 시도에 그쳤다고 해요.


전혁림 작가의 통영항 작품 © 청와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이 직접 감상할 수 있던 작품도 있었죠. 최근 청와대 개방하며 공개된 작품들입니다. 본관 1층 로비에는 김식 화백의 1991년 작, <금수강산도>가 있고, 연회가 진행되는 인왕실에는 전혁림 작가의 2006년 작 <통영항>, 외빈과 만나는 접견실에는 나정태 작가의 1991년 작 <십장생문양도> 등의 작품을 볼 수 있었죠.


지금까지 남아있는 작품 대부분은 1991년 노태우 대통령 시절, 청와대 본관을 신축하며 커미션 워크, 주문 제작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때문에 공간과 잘 어우러지게 설계된 그림이 많죠. 감상의 가치가 큰 작품들인 셈입니다.


하지만 나머지 수 백여점의 작품은 청와대에서 볼 수 없습니다.


시민 개방으로 공개된 청와대 내부 © 조선일보

용산으로 집무실을 옮겨가며, 수장고로 들어가거나 용산청사에 배치된 탓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와대의 미술관화가 불가능한 건 아닙니다. 이전에 많은 작품들이 전시되었던 만큼, 새로운 작품을 걸 공간은 있을 것 같습니다. 또 천장은 높은데 장식은 절제하여 조명이 들어갈 부분도 있죠. 또 청와대 건물 자체도 감상할 만한 요소가 있어요. 외관은 한국적으로 만들어졌지만, 내부는 유럽의 궁전 양식을 따와 독특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베르사유 만큼은 아니더라도, 충분히 인상적인 건축물이 될 수 있죠.


© Louvre

왕실이나 통치자가 있던 공간을 미술관으로 활용한 사례는 이전에도 많았습니다.


시작은 18세기 중엽 프랑스였어요. 통치공간을 미술관으로 만든 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요. 우선, 당시엔 예술작품 보존이나 유지보수에 대한 개념이 없어 엉망으로 보관되고 있었습니다. 지금처럼 미술작품이 엄숙한 분위기에서 관리된 게 얼마 안 된 일이에요.


© Louvre

때문에 대다수 작품이 가구 보관 창고 등에서 썩는 일이 많았습니다. 이런 상황 속, 예술작품을 창고에 보관하는 대신, 예술가나 일반 대중에게 영감과 교훈을 주는 본연의 역할을 해낼 필요가 대두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국민의 문화향수권 충족도 된다는 점에서 왕실 소유 작품을 부분적으로 공개한 게 시작이었어요.



현재의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이 당시 일부 대중에 공개되면서 전시가 진행되었습니다. 전시는 엄청난 대중적 성공을 거두면서 왕실의 미술관화, 대중공개가 붐을 일으켰죠.


© Louvre

루브르가 미술관이 되기까지, 약 68년이 걸렸습니다.


대중에 공개하자는 이야기가 나오고 30년이 지나서야 준비가 시작되었고, 일부 공간을 오픈하며 이 아이디어가 정말 괜찮은 지 검증 단계를 거쳤죠. 전시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대중적 성공을 거두었고, 이후 본격적인 미술관화에 착수합니다. 이게 처음 이야기가 나온 지 54년 후에요.

© Louvre

이 때부터 루브르는 조명과 공간, 보안 같은 미술관학적 측면의 문제들을 하나씩 해나갔고, 이후 14년이 더 지나서야 왕실의 공식적 인가를 받아 미술관이 되었습니다. 정리하면, 처음 미술관화 이야기가 나오고 68년이 지나서야 미술관이 된 것이죠.


루브르 이후, 왕실의 미술관화는 줄줄이 전세계에서 진행됩니다.

에르미타주 미술관의 풍경 © Sartle

또 다른 케이스는 러시아에서 찾을 수 있어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주 미술관'이죠. 에르미타주는 1754년, 겨울궁전이라는 이름으로 지어졌는데요. 그 건물 그대로 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독특한 점은, 다른 많은 왕실 -> 미술관 케이스 중 드물게 '정궁'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은 왕실에서 별장으로 사용하던 공간이 미술관이 된 케이스죠.


에르미타주 미술관 내부와 예카테리나 대제 © Wikipedia

덕분에 에르미타주에는 많은 왕실소장 예술 작품이 즐비해있었습니다. 왕실에 들어간 만큼 그 퀄리티도 매우 뛰어나죠. 그 시작은 과거 예카테리나 대제 때입니다. 예카테리나 대제는 왕실에 극장, 화랑을 만들면서 문화 향유 공간을 채워넣었어요. 이후 새로운 공간을 추가로 지으며 궁전 내 화랑의 규모가 커졌죠. 당시에도 2천여 점이 소장되었다고 하니, 규모가 엄청납니다.


이 컬렉션은 1852년에 처음 대중에 공개되었는데요. 이후 1917년,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나면서 제국의 컬렉션이 공공재산이 됩니다. 1920년 부터는 아예 미술관으로 바뀌면서, 현재까지 미술관으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죠.


한편,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정도로 아름다운 궁전 출신 미술관도 있습니다.


벨베데레 궁전과 프란츠 페르디난트 © Wikipedia

바로, 오스트리아 빈에 위치한 '벨베데레 궁전'이죠. 

벨베데레 궁전은 클림트의 <키스> 작품이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곳은 오스트리아 빈에 위치해 있는데요. 베르사유와 마찬가지로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입니다. 18세기 중엽, 오이겐 폰 사보이 공의 명령으로 설계됐죠. 사보이 공은 황제에 버금가는 권력을 누리던 인물이었는데요. 덕분에 벨베데레 궁전도 매우 화려한 경관을 자랑합니다. 이후 그가 사망하고 난 후, 합스부르크 왕가가 미술품을 보관하는 곳으로 벨베데레를 사용했어요.


이후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왕위 계승자였던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가 이곳에서 살았습니다. 페르디난트는 사라예보 사태로 사망한 인물이기도 한데요. 이후 발생한 세계 1차대전이 끝난 뒤, 오스트리아가 공화국으로 바뀌면서 벨베데레는 미술관으로 쓰이게 됩니다.


© Versailles

이처럼 왕실이나 권력자의 통치공간이 미술관이 된 사례는 너무나 많습니다. 권력자가 있었던 곳에는 늘 예술작품이 함께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번 청와대의 미술관화에는 많은 비난의 목소리도 들려옵니다. 오래 동안 폐쇄적인 곳으로 사용된 만큼, 충분한 조사를 진행한 후 미술관화에 착수해야하나 지금은 너무 성급하다는 것이 첫번째 이유죠. 또 원형보존을 염두에 두고 진행한다고 밝혔는데, 원형을 보존하기 위해 원형을 기록하고 조사하는 과정이 상세하지 않은 것도 이유고요. 특히나 문화재청은 이 방안을 들어 '결국 청와대 궁전화'를 초래할 거라며 비난하기도 했어요.


그렇다면, 원형보존 이슈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 문화체육관광부

우리나라에서도 레퍼런스를 찾을 수 있습니다. 바로, 1900년 만들어진 경성역이죠. 현재는 문화역서울 284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복합문화공간인데요. 2009년부터 2년 간 복원작업 거쳐서 전시도 하고 공연도 하는 공간으로 사용되는데, 내부가 청와대와 매우 비슷합니다. 당시의 노하우를 살려 진행해볼 수 있는 방법도 있겠죠.


한편, 또 다른 비난인 '너무 진행이 성급하다'는 이야기는 합당하다 여겨집니다.


앞서 사례를 통해 살펴보았듯, 궁전의 미술관화 진행은 전쟁 등의 이슈가 있지 않은 이상 매우 천천히 진행됐어요. 더구나 과거처럼 왕실 소장품으로 국가 소장품이 묶이는 게 아닌, 국공립 소장품, 미술은행 등 다양한 방식의 소장이 이루어진 지금은 더 많은 걸 고려해 청와대 전시 작품을 선정해야겠죠. 많은 시간과 충분한 인력을 통해 이뤄나가야 할 일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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