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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우 에디터 Aug 30. 2022

미술시장에 침투하는 AI, 그 세 가지 가능성

AI 예술가, 작품 관리 시스템, 새로운 예술 사조의 탄생

© ArtnetNews, 구글이 AI 페인팅 기술로 내놓은 작품


미술시장은 기술 발전과 얼마나 관련있을까요?

전혀 무관한 영역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미술시장에 기술의 발전은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해왔습니다. 철도의 발명으로 예술가들의 활동 영역이 넓어지며 인상주의가 탄생했고, TV의 발명은 백남준의 작품을 탄생시켰죠. 오늘날에는 이 흐름이 미디어 아트로 확장하고 있고요.


최근에는 기술 발전 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습니다.

아이폰의 보급 속도보다 오큘러스(VR기기)의 보급 속도가 더 빠르다고 하죠. 이처럼 빨라지는 기술 발전은 미술 작품을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AI 기술이죠.


© 오비어스, <에드몽 드 벨라미>


01 AI 예술가

AI와 예술하면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아마도 AI 예술가일 거예요. 지난 2019년에는 AI 화가 '오비어스'가 등장했습니다. 프랑스 연구진들이 만든 화가인데요. 이 화가는 <에드몽 드 벨라미>라는 초상화를 그려냈어요.


이 초상화는 2019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낙찰되기도 했습니다. 추정가는 1,300만 원. 하지만 낙찰가는 예상을 깨고 5억 원을 달성했어요.


오비어스의 그림은 독특한 느낌을 자아냅니다. 화풍 자체는 인상주의 느낌인데, 인물의 형태는 고전적인 초상화의 모습을 하고 있죠. 또 인물의 배치를 왼쪽 위에 해 두어, 낯선 느낌을 줍니다.


이 그림은 대부분의 인공지능이 만들어지는 원리인, 딥러닝 기술을 활용한 거예요. 수 많은 작품을 학습한 후에, 사람이 조건을 입력하면 이에 따른 결과값을 내놓는 방식으로 만들어집니다. 때문에 얼마나 많은 그림을 학습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더 정교해질 수 있는 것이죠. 오비어스는 14세기-20세기까지의 서양화, 1만 5천여 점을 딥러닝 했습니다.


여담이지만, 당시 눈길을 끈 건 색다른 요소였어요. 작품 오른쪽 아래, 작가의 서명이 들어가는 부분에 작품 생성 알고리즘이 들어가 주목을 받기도 했답니다.


© (좌) 넥스트 렘브란트 웹사이트 / (우) 만들어진 그림


이 외에는 <넥스트 렘브란트> 프로젝트가 눈길을 끌기도 했어요. 네덜란드의 광고회사 '윌터 톰슨'이 기획하고, '마이크로소프트'가 공동으로 협업해 2년에 걸쳐 만든 프로젝트입니다.


이 프로젝트에서는 렘브란트의 그림 346점을 학습시켰다고 해요. 그림은 3D 프린터로 인쇄돼, 유화의 질감과 물감의 두께까지 구현해냈는데요. 이 역시, 딥러닝한 렘브란트의 그림을 참고했다고 합니다. 이 작품은 2020년 부터 60여개 국가에서 전시되기도 했어요.


놀라운 건 작품의 가치입니다. 전문가들이 추산한 가치는 약 432억 원 정도인데요. 렘브란트 작품 가치는 3천 1백억 원 가량 됩니다. 실제 작품에는 한참 못 미치는 가치이지만, 인공지능이 만든 작품임에도 수백억 원의 가치를 평가받은 것은 이례적으로 여겨져요.


© Next Rambrandt Project


01-1 AI 예술가에 대한 미술계의 반응

하지만 미술계의 반응은 부정적입니다. AI가 그린 작품을 예술로 볼 수 없다는 평이 많아요. 우선 미술시장은, 인공지능이 그린 작품을 '그렸다'고도 하지 않습니다. '생성했다', '산출했다', '결과를 내놓았다'는 식의 '명령에 따른 결과 도출'임을 강조하는 수동적 어미를 사용하죠.


결국 AI는 인간이 입력한 값에 따른 결과를 내놓기 때문인데요. 이 과정에서 작품의 가치 평가 기준도 달라집니다. 기존 예술을 평가하던 기준이 아닌, 기술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다뤄지죠. 얼마나 입력값을 흥미롭게 설계했고, 나온 결과가 창의적인지가 중요 요소에요.


또 저작권에 대한 이슈도 있습니다. 렘브란트 작업을 활용한 작품의 경우, 네덜란드 광고회사와 마이크로소프트가 협업했는데요. 프로젝트에 사용된 가장 중요한 데이터는 결국 렘브란트의 그림입니다. 이런 경우, 작품의 소유권과 저작권을 렘브란트 재단이 가져가야할 지, 제작한 회사가 가져가야 하는 지도 명확히 가르기가 어렵죠.


때문에 현재로서는 AI 예술가의 활용 방안이 제한적입니다. 예술가의 화풍, 특징을 재현하는 수준으로 구현하거나, 여러 예술가의 작업을 섞어서 표현하게 만들거나 하는 식의 작품이 주로 미술시장에 나오고 있죠.


© AI Artists.org에서 꼽은 41명의 유망한 AI 아티스트 (2021)


그럼에도 불구하고, 긍정적 전망도 있습니다.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있는데요.


첫째로는, 기술적 한계로 넘지 못한 영역에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입니다. 이전에 피카소 그림 속 그림을 X-Ray로 확인해 발굴한 이슈를 전해드린 적이 있는데요. 이 때 기술의 한계로 작품을 복원하지는 못했지만, AI 기술을 활용해 작품을 채색하고, 3D 프린팅 기술을 활용해 작품을 실물로 구현해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기존에 기술적 한계로 발굴을 진행하지 못했던 것을 다른 방식으로나마 가능하게 만든 것이죠.


둘째로는, AI를 보조적으로 활용할 경우의 활용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입니다. AI가 만든 작업에 사람이 마무리 한다면, 예술작품으로 볼 수 있을 거라는 의견이죠. 이를 예술계에서는 '휴먼 터치'를 더한다고 표현하는데요. 일례로 AI가 만든 작품 중 클래식 음악의 사례가 자주 언급됩니다. AI가 작곡한 음악은 예술로 볼 수 없지만, 이를 인간 가수가 부른다면 휴먼 터치가 더해져 예술이 될 수 있다고 보는 관점이죠.


마지막으로 최근에는, 여러 부정적 이슈를 해소할 기술도 나왔습니다. CAN이라 부르는 '생성적 적대 신경망'을 기반으로 한 기술인데요. 이름이 조금 어렵지만, 간단히 풀어 설명하면 '입력한 데이터를 토대로 절대 겹치지 않는 결과를 내놓는' 기술입니다. 현재 이 기술에는 8만여 점의 그림과 1천여 명의 예술가가 입력되어 있는데요. 데이터 값이 더 커진다면, 저작권이나 위작 이슈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해결책이 될 것으로 보여요.


© 신세계인터내셔날, 아트빌리지


02 시스템에 적용된 AI 기술

그런가 하면, AI 기술은 미술계 시스템에도 빠르게 침투했습니다.


지난 4일, 신세계인터내셔날에서 빅데이터를 활용한 아티스트 큐레이션 플랫폼을 출시했어요. 이름은 '아트빌리지'. 아트빌리지는 성장 잠재력이 높은 작가를 선정해 대중에게 작가를 소개하는 서비스인데요. 사실 알고리즘을 활용해 추천하는 서비스는 미술계 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자주 활용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간 미술 작품은 그 수도 너무 많고, 세부 특징을 잡아내기 복잡한 특성 때문에 잘 등장하지 못했죠.


아직은 이 서비스의 데이터 양이 많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추후, 규모가 커진다면 기대해볼 만한 기술이 될 것 같아요.


© 아트센터 나비, AI 공포 라디오쇼


더불어 최근에는 미술관에서도 AI 기술을 활용한 행사를 선보였습니다. 아트센터 나비에서는 지난 4일, 'AI 공포 라디오쇼'를 열었어요. AI가 만든 괴담 맞추기 게임을 진행한 건데요. 당시 관객이 키워드를 제시하면, 인간 작가와 AI 작가가 즉석에서 괴담을 만들어내는 행사였습니다. 관객은 어느 것이 AI의 괴담인지 맞추는 역할이었고요.


그런데, 키워드로 제시된 단어들이 매우 짖궂었다고 해요. 민트초코 치킨이나 시금치, 대머리 등이었습니다. 행사에서는 총 7편의 괴담을 감상했고, 이 중 3편이 AI가 만든 창작물이었다고 하는데요. 다행히 관객들은 AI가 만든 괴담을 모두 맞출 수 있었지만, 매우 어려웠다고 전해집니다.


이 행사의 마무리에서 언급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아직은 AI가 만든 이야기가 인간과 비견할 만한 퀄리티를 갖는다고 이야기 하기는 어렵지만, 여기에 인간의 리터칭 과정이 들어간다면 완성도를 높일 수 있을 거라고요. 또 기술의 발전 속도를 고려하면, 언젠가는 인간 없이도 높은 퀄리티의 이야기가 탄생할 수 있을 가능성도 전망되었습니다.


© The Converstation, AI 예술가 Ai-Da의 모습


03 AI 기술의 발전 가능성, 어디까지일까?

긍정적 전망이 있는 만큼, 보수적으로 보는 관점도 있습니다.


특히나 'AI 예술가'에 대해서는 보수적이에요. AI 예술가가 수단으로 사용되든 제한적으로 사용되는 간에, 결국 예술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라는 관점입니다. 예술은 예술가가 겪은 현실에 공감하거나, 비판하거나, 사유하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데요. AI 기술은 이런 '사유'의 기능이 없이, 입력값과 출력값으로 결과를 도출해내기만 하기에, 결국 예술작품의 성질은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죠.


© Singularity Hub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능성은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CAN 기술의 경우, 그간 많은 예술가들이 이야기했던 '이제 완전히 새로운 예술은 등장할 수 없다'는 말을 해소할 수 있기 때문이죠. 인간이 한계를 느껴 온 창의성과 상상력의 영역에서 데이터를 분석하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걸 창출하는 기술인 덕분입니다. (물론, 소거법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만 보기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더불어 인간의 '리터칭'과정을 거치면, 새로운 예술장르의 탄생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일례로 뒤샹의 <샘> 작업을 떠올려보면, 기성품인 변기에 서명과 날짜를 더해 예술 작품이 된 걸 볼 수 있는데요. 당시 기성품을 예술로 인정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많았지만, 현시점에서는 현대미술의 탄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AI 작품 역시 휴먼터치를 더해, 새로운 장르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엿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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