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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우 에디터 Nov 04. 2022

AI 기술 발전을 미술사의 관점에서 바라봐야할 이유

'사진'도 예술이 되기까지 50년이 걸렸다

AI 작품 '에드몽 드 벨라미' 앞에 선 관계자 © Christie's

최근 AI 기술이 미술시장에 빠르게 침투하고 있습니다.

그동안에는 AI 기술이 인간의 영역에 들어오며, 그 자리를 위협할 수 있다는 내용의 콘텐츠가 많았죠. “AI 기술 vs 인간” 구도의 싸움이라 여겨진 겁니다. 



01.  AI 기술은 ‘기술 vs 인간 구도’의 싸움이었다

Edmond de Belamy, 2018 © Obvious

일례로 2019년 AI 화가 오비어스의 <에드몽 드 벨라미> 작품은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5억 원에 낙찰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미술시장에서 가장 비싸게 팔리는 화풍인 인상주의와 고전주의 화풍을 딥러닝 해 만들어졌어요. 

딥러닝 기술은 수많은 작품을 학습한 후, 사람이 조건을 입력하면 이에 따른 결괏값을 내놓는 방식으로 만들어집니다. 때문에 얼마나 많은 그림을 학습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더 정교해질 수 있는 것이죠.

오비어스는 14세기-20세기까지의 서양화 1만 5천여 점을 딥러닝 했습니다. 그리고 이 기술로 만든 작품이 경매에서 낙찰되며, 기술로 만든 작품이 인간의 작품이 설 자리를 뺏는다는 식의 이야기가 많았죠. 



02 . 이제는 인간 vs 인간의 싸움

렘브란트의 그림 346점을 학습시켜 만들어진 AI 작품. 가치는 약 4백억 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 NextRembrandt

하지만 최근, 상황은 바뀌었습니다. 기술 vs 인간이 아닌, 기술을 무기로 든 ‘인간과 인간’의 싸움이 되었죠. AI가 만든 작품에는 필연적으로 기존 작품이 사용됩니다. 그렇다면 기존 작품의 저작권자에게 허락을 받거나, 작품 수익을 분배하는 등의 방법이 필요하겠죠. <에드몽 드 벨라미>의 경우, 이미 저작권이 만료된 올드 마스터 작품들을 주로 활용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재단이나 소장 미술관의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아직 관련해 명확한 규정이나 법안은 없죠. 

문제는, 이제 누구나 이 기술을 활용할 수 있게 됐다는 겁니다. 최근 ‘달리', ‘미드저니', ‘스테이블 디퓨전' 같은 생성 AI가 등장해 누구든 이 기술을 활용해 작품을 만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관련 법안이 없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저작권 만료된 작품뿐만 아니라, 왕성히 활동 중인 생존 작가의 작품을 가져다 그림을 만들기도 했죠. AI 기술이 일종의 저작권 세탁 도구로 활용되는 겁니다. 



03.  기술 시장과 미술 시장의 대립

콜로라도 박람회에서 인간과 경쟁해 우승을 차지한 AI 작품, 'Théâtre D'opéra Spatial’.  작품을 만든 예술가는 '기쁘지 않다'고 말했다. © NewYorkTi

이런 상황이 이어지는 건, AI 학습에 작품을 활용하는 것이 일종의 ‘데이터 공정이용'에 해당되기 때문입니다. 데이터 공정 이용이란, 뉴스보도나 연구 같은 특정 상황에서 저작권이 있는 콘텐츠라 하더라도 동의 없이 사용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산업적인 측면에서는 이 방향성을 지지합니다. AI 기술 발전을 위해, 데이터 공정 이용을 제도화해 더 다양한 기술을 선보일 수 있도록 만드려 하죠. 


데이터 공정 이용을 AI 예술작품에 활용하기 위해서는 다듬어져야 할 부분이 많습니다. 이는 법적인 영역에서 현재 논의가 일어나고 있죠. 한편, 미술시장에서는 제도가 만들어진다 하더라도 AI 작품이 팔릴 수 있는 명분, 혹은 장치가 필요합니다. 지금 미술시장에서는 AI 작품을 작품 그 자체로 보기보다 하나의 '재료'로 바라보기 때문이죠. AI 기술 자체에는 예술의 본질인 ‘사유'가 없다는 이유에서 입니다.


Henry Peach Robinson, 임종, 1853 © Wikiart

일례로 1800년대에 카메라가 처음 등장했을 때, 사진을 예술작품으로 볼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활발했습니다. ‘정성과 사유의 결과인 예술가들의 회화 작품과 비교할 수 없다'는 공식 주장도 프랑스에서 나왔었죠. 하지만 이후 50여 년이 지나 사진은 예술 장르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위의 작품 <임종>은, 작가가 인물을 따로 따로 찍어 합성해 만든 사진입니다. 임종의 순간을 극적으로 묘사하기 위한 사유를 거쳐 만들어진 것이죠. 사진이 예술작품으로 여겨지게 된 대표적인 작품으로 여겨집니다. 


미술시장에서는 AI 작품을 보수적으로 바라봅니다. AI 작품이 예술이 되기 위해선, 저작권 이슈 해결과 더불어 ‘사유'가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죠. <임종>의 사례처럼요.


GAN이 활용된 모습. 현재는 초상권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 주로 사용된다. © VentureBeat

최근에는 입력한 작품 이미지를 아예 사용하지 않는 기술도 등장했습니다. GAN(생성적 적대 신경망) 기술이죠. 이는 학습한 기법이나 스타일을 모방하지 않도록 프로밍해, 입력한 어떤 데이터와도 겹치지 않는 결과물을 내놓습니다. 미술시장에서는 이 기술에 인간이 리터칭을 더하는 등 사유의 과정을 거치면, 새로운 예술 장르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고도 봅니다. 


그렇게 되면, 이슈의 주체는 작품의 창작자인 예술가에게 넘어갑니다. 자신의 작품을 AI 기술의 학습에 활용하는 것을 동의할지 말지가 관건이죠. 현재는 예술가들이 AI 기술 활용 동의 여부를 자체적으로 표기하는 경우도 있지만, 아직 제도화된 건 아닙니다. AI 기술을 발전시키려는 기술계와 저작권을 지키려는 예술가 간 합의가 이뤄진 게 없기 때문이죠.


man ray, 'glass tears' 1932 © Wikiart

사진이 예술이 되기까지 약 50여 년이 걸렸습니다. 기술의 발전 속도가 나날이 빨라지는 현재, AI 작품이 예술이 되기 위해 얼마의 시간과 논의가 필요할 지는 미지수입니다. 하지만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점차 좁혀져가고 있는 모습이에요. 기술 발전과 예술의 전통성 유지 간의 치열한 대립 속, AI 기술이 내놓은 예술은 어떤 모습으로 펼쳐질지 주목해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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