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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우 에디터 Jun 18. 2022

3D 법칙: 미술시장에 A급 매물이 쏟아져 나올 때

경매 총액 1조 1,725억 원, 매클로 컬렉션

지난 80년 간 서구 미술 최고의 업적들이며, 미술시장의 결정적 순간이다.
의심의 여지가 없는 작품들이었다.

-sotheby's CEO, Charles F. Stewart


파블로 피카소, 앤디 워홀, 마크 로스코 등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예술가들의 작품이 경매에 나왔습니다. 미국 부동산 재벌 부부의 이혼이 진행되며, 재산을 분할하기 위해 작품들을 경매에 부친 건데요. 작품은 지난 주 모두 낙찰되었고, 판매액 총합은 약 1조 1,725억 원이라고 해요. 기업이나 국가가 아닌, 개인이 소장한 컬렉션 경매 중에서는 역대 최고 금액입니다.


매클로 부부의 모습 (좌) 해리 매클로, (우) 린다 매클로

이 어마어마한 작품들을 내놓은 건, 미술계 큰손 컬렉터인 '매클로 부부'였습니다. 남편인 해리 매클로는 뉴욕의 부동산 개발업자로, 2007년 포브스 잡지가 뽑은 가장 부유한 미국인 중 239위를 차지한 인물이에요. 보도 당시, 재산이 한화 약 2조 9천억 원이었다고 합니다.


아내인 린다 매클로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명예 이사입니다. 현대미술 작품 수집에 매우 열성적이었다고 하는데요. 남편의 부동산 사업과 아내의 컬렉팅이 시너지를 내며, 이들은 막대한 부와 엄청난 작품을 수집할 수 있었죠.


이들 부부는 2018년, 50여 년의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이혼을 결심합니다. 그리고 재산 분할을 시작했는데요. 이들이 가진 재산이 워낙 많아, 분할 절차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게다가, 남편인 해리 매클로는 86세, 아내 린다 매클로는 85세로 모두 고령인데요. 재산 분할 절차가 오래 걸릴 것을 고려해서, 뉴욕 법원은 공동소유한 미술작품 65점을 경매에 부치고, 수익금을 나눠 가지라고 판결합니다. 그 결과로 그들의 작품은 'The Macklowe Collection' 이라는 이름으로 경매에 오릅니다.


매클로 컬렉션 경매가 진행된 현장의 모습 © sotheby's

경매는 2019년, 그리고 올해 두 번에 걸쳐 진행되었습니다. 2019년 진행된 경매에서는 총 35점이 판매되었고, 이번 경매에서는 30점이 판매되었죠. 매클로 부부의 컬렉션 65점의 총 판매액은, 1조 1,725억 원이었습니다.


가장 비싸게 판매된 것은 자코메티의 조각작품 <Le Nez>. 한국어로 '코'를 의미하는 이 작업은 마치 피노키오를 보는 것 처럼 매우 긴 코를 가진 얼굴 조각인데요. 이전에 자코메티는 경매를 통해 1천억 원을 넘는 가격을 기록해, '유일하게 1천억 원이 넘는 조각가'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는데요. 이번 경매에서 역시 992억 8천만 원에 낙찰되며, 높은 금액으로 판매되었습니다.


© sotheby's

이 외에는 마크 로스코의 추상화 <No. 7>이 한화 약 608억 원에 낙찰되었는데요. 마크 로스코는 색으로 캔버스를 가득 채운 색면 추상을 주로 선보여 온 작가입니다. 그리고 이 작업은 버건디, 네이비, 다크 퍼플 색상으로 구성되어 있죠. (상단 오른쪽 위 사진)


이 외에도 앤디 워홀의 자화상이 237억 원에 낙찰되고, 윌리엄 드 쿠닝의 <무제> 작품이 225억 3천만 원에 낙찰되는 등 (상단 오른쪽 아래 사진) 연일 고가 행진, 낙찰 행렬을 이어갔다고 해요.


매클로 컬렉션 경매가 진행된 현장의 모습 © sotheby's


이번 경매는 미술계에 역사를 남겼다 평가받습니다. 개인 소장품 경매 최고가를 달성한 덕분인데요. 기업이나 국가가 아닌, 개인이 내놓은 소장품 중에서 역대 최고가 기록을 세웠습니다.


이전에 개인 소장품 경매 최고가 1위 기록을 세웠던 건, 록펠러 부부의 컬렉션이었습니다. 총 8억 3,500만 달러로 한화 약 1조 563억 원이었죠. 당시 작품 수가 총 1,500점 이었는데요. 이번 매클로 부부 컬렉션은 단 65점이고, 1조 2천억 원이라는 최고가에 모두 낙찰되었다는 점에서 미술시장 역사를 새로 썼다 평가받습니다.



경매 진행 전, 출품작을 볼 수 있도록 열린 프리뷰 전시 © sotheby's



부동산 재벌 부부의 이혼으로 미술 시장에 쏟아져 나온 고급 매물들. 이런 현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미술시장엔 이런 현상을 일컫는 용어도 있죠. 바로, 3D 법칙.


미술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건 고가의, 뛰어난 명성을 가진 작품을 구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경매회사나 갤러리 등 미술품을 취급하는 곳에서는 좋은 작품을 소장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이슈인데요. 또 이들에게는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컬렉터들이 언제, 어떻게 작품을 내놓을지도 큰 화두입니다.


그리고 미술시장에서는 컬렉터들의 작품이 쏟아져 나오는 타이밍을 3D 법칙이라 부릅니다. Death(죽음), Divorce(이혼), Debut(빚)의 머리말을 따 만들어진 말인데요. 이 3D 법칙에 해당하는 이슈가 발생하면, 대작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온다고 해요.


패션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 © Magnum Photos


DEATH, 죽음의 사례의 가장 대표적인 인물은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을 들 수 있어요. 2008년 이브 생 로랑이 사망하고 이듬해, 그의 미술품 컬렉션 경매가 파리에서 열렸습니다. 당시 피카소, 마티스, 로마시대 조각 작품 등 733점의 작품이 경매에 나왔는데요. 당시 경매에서 팔린 작품들은 모두 합쳐 3억 7천만 유로, 한화 약 5천 12억 원의 금액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이브 생 로랑의 배우자였던 피에르 베르제는 수익금을 자선단체와 의학 연구에 기부하기도 했어요.



시인 T.S 엘리엇, © The Guardian


또 천재 시인이라 불리는 T.S 엘리엇의 사망 후, 그의 아내인 발레리가 2012년 사망하며 유언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남편의 미술품 컬렉션을 경매에 내놓아 달라는 것이었죠. 그리고 그 수익금은 젊은 시인과 예술가 지원에 써달라고도 언급했습니다. 이처럼 유명인들의 사망으로 인해 시장에 나온 미술품들은 제각기 낙찰되어 뿔뿔이 흩어졌지만, 그 수익금은 좋은 일에 쓰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3D 법칙의 마지막 D, Debut는 기업에서 사례를 찾아보기 쉽습니다. 2008년 당시 리먼 브라더스 사가 파산하면서, 세계 금융시장이 불황을 맞았었는데요. 당시 리먼에서는 미술품 수집을 오래 동안 해오고 있었는데, 당장 돈이 급해지면서 리먼은 회사의 컬렉션을 조금씩 시장에 팔아 자금을 확보했습니다. 당시 리먼은 2010년 9월 소더비 경매에서 1,200만 달러의 경매 낙찰 기록을 세웠습니다. 한화 약 152억 5천만 원이죠.


물론 컬렉션을 판매한 돈으로 모든 빚을 갚을 수는 없었지만, 리먼의 급한 불은 끌 수 있었죠. 이렇게 사업이 위기에 처해서 급히 현금이 필요할 때, 컬렉터나 기업은 미술 작품을 팔아 자금을 마련하곤 했습니다.



이 법칙은 우리나라에서도 통했습니다. 지난 2013년, <전재국 컬렉션 경매>가 열렸는데요. 이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미납 추징금 환수를 위해, 장남인 전재국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을 압류해 진행했습니다.

당시 경매에 부쳐진 작품은 총 605점, 1년 간 여섯 차례 경매가 열렸습니다. 그리고 총 72억 원 가량의 작품이 낙찰되며 수익금은 국고에 귀속되었죠.


매클로 컬렉션을 통해 낙찰된 앤디워홀의 자화상, © sotheby's


그렇다면 이 3D 법칙은 미술 시장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요? 미술계 대형 이벤트, 대작이 쏟아져 나오는 타이밍이 공개되면 시장에 작품이 돌기 시작합니다. 이런 대작을 구매하는 건 신진 컬렉터가 아닌, 기존에 작품을 구매해오던 이른바 큰손 컬렉터들인데요. 이들은 대부분 이미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경매 출품작을 사기 위해 기존 소장품을 처분하는 것을 쉽게 찾아볼 수 있어요. 


대작이 시장에 나온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대작 급은 아니지만 높은 가치를 지닌 작품이 덩달아 시장에 진출하는 것인데요. 이 과정에서 그간 복잡한 이해관계 때문에 대중에 공개되지 않았던 작품들이 매체를 통해서든, 전시를 통해서든 공개되면서 이 영향은 관객에게까지 퍼져나가게 됩니다. 그 결과로 더 많은 사람들은 예술을 향유할 수 있게 되겠죠.



이처럼 컬렉터는 미술시장에서 매우 큰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아트 딜러, 갤러리, 경매사, 미술관 모두 컬렉터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어요. 그리고 오늘 이야기 나눈 매클로 컬렉션은, 그 정점을 보여준 사건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번에 낙찰된 작업은 또 어떤 루트로 대중을 마주하게 될 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운 포인트가 될 것 같습니다.





�  뉴스 요약

1. 미국의 부동산 재벌 '매클로 부부'의 이혼으로 그들의 컬렉션 65점이 경매에 나왔다.

2. 작품은 모두 낙찰되었고, 총 수익금은 1조 1,725억 원으로 개인 컬렉션 역대 최고가를 갱신했다.

3. 미술시장에는 이처럼 대작이 쏟아져 나오는 타이밍을 이른바 '3D 법칙'이라 부른다.

4. 3D란, 이혼 (Divorce), 사망 (Death), 빚 (Debut)을 의미한다.

5. 이처럼 시장에 대작이 쏟아져 나오면, 이를 구매하려는 움직임에 의해 더 많은 작품이 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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