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판매되었다
지난 3월 21일,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18세기 만들어진 우리나라의 달항아리가 456만 달러, 한화 약 59억 6500만 원에 낙찰되었습니다. 추정가였던 12억-15억을 훌쩍 뛰어넘는 금액이었죠.
달항아리는 17세기 후반-18세기, 조선 후기에 만들어진 백자 항아리 양식을 일컫습니다. 온화한 백색, 유려한 곡선이 특징인데요. 이 달항아리의 이름은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예술가, 김환기가 붙였다고 전해집니다. 김환기는 달항아리를 매우 사랑했던 작가였고, 그 아름다움에 공감한 김환기의 친구, 전 국립중앙박물관 관장 최순우가 함께 '달항아리'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추정되죠.
그렇다면 이 달항아리는 왜 이렇게 비싼 금액에 팔린 걸까요? 이번에 낙찰된 달항아리는 높이 45센티 정도로, 시중에 거래되는 대부분의 달항아리보다 큽니다. 같은 날 경매에 출품된 다른 달항아리가 높이 30센티 정도였는데, 1억 3천만 원에 낙찰되었어요. 달항아리의 크기가 가격과 비례하는 이유는, 만들기가 매우 까다롭기 때문입니다. 달항아리는 통상 1400도 정도에 굽지만, 크기가 클수록 더 높은 온도가 필요합니다. 또 구워진 달항아리는 절반 가량을 버릴 정도로 제작 자체가 까다롭다고 해요. 보통 위와 아래를 따로 만든 후 합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장인의 숙련도가 요구되죠.
이번에 낙찰된 달항아리는 최근 10년간 경매에 나온 달항아리 중 가장 훌륭한 작품으로 여겨집니다. 제작 이후 특별한 보수의 흔적도 없었고요. 더불어 경매에 나온 작품은 이전 소장자의 이름값도 중요하게 작용하는데, 이번 달항아리는 일본 일반인 컬렉터 소장품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0억에 낙찰될 정도로 퀄리티도, 크기도 훌륭했죠. 여담이지만, 과거 리움미술관에서 전시된 국보 달항아리의 높이는 44센티로 이번 달항아리보다 1센티 작습니다. 일반인 소장품이었지만 국보급 작품이었던 셈이죠.
달항아리를 너무 사랑해 이름을 붙인 김환기 작가 이후, 우리나라의 많은 예술가들이 달항아리에 대한 사랑을 작품에 표현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세 명의 예술가를 꼽을 수 있는데요. 첫 번째로는 고영훈 작가입니다. 고영훈 작가는 1952년생으로, 한국 극사실주의 회화의 대표 예술가예요. 그의 작품엔 책이나 돌 등 다양한 소재가 등장하지만, 함께 자주 다뤄지는 것이 달항아리입니다. 단순히 달항아리를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것을 넘어, 그리는 과정에서 사물의 본질에 다가가는 것이 특징이라고 해요.
두 번째 예술가는 권대섭 도예가입니다. 1952년 생으로, 달항아리의 전통적인 제작방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가예요. 앞서 달항아리는 위아래 두 개를 따로 제작해 붙여서 완성한다고 말씀드렸는데요. 권대섭 작가는 이를 정반원으로 자르는 것이 아닌, 약간 이지러진 형태로 잘라낸 후 이어 붙입니다. 그리고 불 온도를 디테일하게 조절해 질감표현도 다양하게 구현해 내고요. 조선시대의 달항아리와는 다른 현대적 감성이 더해진 셈입니다. 2020년에 BTS RM은 권대섭 작가 작업실에 직접 찾아가 달항아리를 구매하기도 했습니다. 가격은 약 5천만 원 선이지만, 작업 과정이 오래 걸려 구하기 매우 어렵다고 하네요.
세 번째 예술가는 최영욱 작가입니다. 최영욱 작가는 달항아리를 그림으로 그려내는 작가인데요. 이전에 빌게이츠가 최영욱 작가 작품을 두 점 구매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구매 당시에 빌게이츠 재단 사옥에 걸 100호짜리(세로 160cm 정도 크기) 작품 두 점을 의뢰했다고 해요. 사이즈만 맞으면 뭘 그리든 상관없다고 맡겼죠. 앞서 살펴본 고영훈 작가가 달항아리의 본질에 다가가는 작업을 선보인다면, 최영욱 작가는 달항아리를 주관적으로 해석하려는 시도를 보여주는 게 특징입니다. 그의 그림을 보면 달항아리에 크고 작은 균열이 일어나 있는 게 특징인데, 이 균열을 보면서 관객이 자신의 인생을 투사해 해석하길 바란다고 해요.
최근에 달항아리가 '돈을 부른다'라는 속설이 퍼지면서 원화 뿐만 아니라 판화나 포스터도 많은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흐름 속, 재복을 상징하는 황금 두꺼비나 해바라기까지 달항아리에 새겨 만든 작품이 판매되고 있어요. 이것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원래 달항아리가 청빈함의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이전에 스위스 소설가 알랭 드 보통은 달항아리를 들어 '겸허의 이상을 표현했다'라고 말했고, 영국 대영박물관은 달항아리를 전시하며 '청빈함의 구현'이라고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달항아리의 생김새는 매우 굴곡지고 볼륨감 있는 형태입니다. 비어있지만 무언가를 가득 채울수도 있어서 세속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것이죠. 원래 달항아리의 용도도 정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어 해석의 여지는 많지만, 달항아리 특유의 청빈한 미학이 지워진 채 소비되는 것에 대한 염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청빈함과 겸허함이 사라진 달항아리 소비, 여러분은 어떻게 보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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