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창완 Dec 29. 2020

N.thing: 화성에서도 신선한 야채를

규격화된 농장, 설치만 하면 재배할 수 있다

아무것도 자라지 않는 이 행성에서 3년 치 식량을 재배할 방법을 찾아야 해요.

- 영화 마션(The Martian) - 


 영화 ‘마션(Martian)’의 주인공 마크 와트니의 대사입니다. 와트니는 모래폭풍으로 인해 화성에 홀로 고립되고, 동료들이 돌아오기까지 3년이라는 시간을 혼자 생존해내야 했습니다. 그가 선택한 방법은 화성의 척박한 토지에 동료들의 분을 비료 삼아 작은 감자를 생산해내는 것이었어요. 재배한 감자를 섭취하며 오랜 시간을 버텨낸 주인공은 마침내 동료들과 다시 만나게 됩니다. 


 영화의 내용이 실현 가능한 것일까요? 네, 가능한 일입니다. 나사(NASA)에서는 ‘다른 행성이라도 토지의 화학 성분이 지구와 유사하고 물을 얻을 수만 있다면, 우리가 먹는 야채들을 실내 환경에서 충분히 재배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고, 실제로 이를 적극적으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런 재배 환경을 쉽게 만들어낼 수만 있다면, 화성에서 작물을 키워 먹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최근 기술농업 분야에서 이와 가장 유사한 대안으로 떠오르는 것이 바로 ‘스마트 팜(Smart Farm)’입니다. 스마트 팜이란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인공 지능 등의 기술을 결합한 자동화 작물 생산시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적의 조건을 데이터화하고, 센서와 로봇을 이용해 재배하는 방식이지요. 이번 글에서는 스마트 팜 시설의 규격화, 확장 가능성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는 토종 농업 벤처 엔씽(N.thing)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토마토 농장 아르바이트에서 싹튼 관심


엔씽의 김혜연 대표 / 사진: 매일경제

 엔씽(N.thing)의 김혜연 대표는 한양대학교 전자공학과 재학 중 비닐하우스 자재 회사를 운영하시던 삼촌을 아르바이트 삼아 도와드리게 되었습니다. 김혜연 대표가 도운 일은 우즈베키스탄에 새로운 토마토 농장을 짓는 것이었습니다. 우즈베키스탄은 토마토를 재배하기에는 척박한 환경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김 대표는 여러 가지 생육 조건을 정리하고 생산성 제고를 위한 기술적 개선사항을 반영하는 일을 돕게 되었습니다. 최신 IT기술에 관심이 많았던 김혜연 대표는 아르바이트 경험을 계기로 농업과 첨단 기술을 접목하면 큰 가능성이 있음을 깨닫고 재배 환경의 중요성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농업과 기술의 결합에서 모티브를 얻은 김혜연 대표는 스마트 농업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창업을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2012년, 그는 전자부품연구원(KETI) 연구원이 작성한 IoT 기술에 대한 보고서를 읽고 곧바로 함께 일하고 싶다는 메일을 보냈습니다. 연구원을 설득한 끝에, 김혜연 대표는 KETI의 위촉연구원으로 참여해 개방형 IoT 플랫폼 개발사업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2013년 6월, 김 대표는 대학 창업동아리에서 만난 실력 있는 동료 3명과 함께 ‘글로벌 K 스타트업’ 프로그램에 참여합니다. 여기서 최우수상과 구글 특별상을 수상하며 2,000만 원의 상금을 수상했고, 2014년 이를 기반으로 엔씽(N.thing)을 설립했습니다. 


시공간의 제약을 가장 많이 받는 산업인 농업이
시공간 제약 없는 인터넷과 만나면 어떨까를 상상했습니다.



화분에서 시작한 최첨단 센서 농장


엔씽의 초창기 스마트 화분 / 사진: 조선비즈


 엔씽(N.thing)은 초기에는 대학의 창업지원금으로 IoT 센서와 IoT 솔루션을 주력으로 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센서 기술을 농업에 적용해 작물을 실제로 생산해내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던 것이지요. 다양한 제품의 프로토 타입을 빠르게 만들어 내는 ‘린 스타트업’(Lean Startup) 방식으로 제품을 개발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100일 만에 만들어진 첫 제품이 바로 ‘플랜티’였습니다.


 플랜티의 프로토 타입은 스마트 화분의 기본적인 기능만 갖추고 있었습니다.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으로 식물의 상태를 확인하고, 적정 주기에 도달하면 물을 주는 정도였지요. 글로벌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킥스타터(KickStarter)에 시제품을 공개해 10만 달러(한화 약 1억 2천만 원) 펀딩에 성공하기도 했지만, 이를 제외하고는 창업 2년 동안 큰 실적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김혜연 대표에게는 고민이 생겼습니다


우리가 가고자 하는 방향은 농업 시장인데 어느 순간 보니
 그저 화분만 만드는 회사가 되어 있었습니다.


 2015년과 2016년에 각각 시리즈 A 투자금 20억, 6억을 유치해낸 엔씽이었지만, 연구개발에 투자를 아끼지 않은 김혜연 대표와 엔씽은 점점 자금이 고갈되어 갔습니다. 1년이 조금 넘도록 회사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직원들에게 월급을 지급하기 위해 현금 서비스까지 끌어다 쓰는 일도 빈번했습니다. 


경기도 용인에 설치된 플랜티 큐브 / 사진: 엔씽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했던가요. 2017년, 엔씽은 덴마크의 한 호텔에서 의뢰한 컨테이너형 스마트팜 사업의 결과물인 ‘플랜티 큐브’의 개발에 성공합니다. 엔씽은 플랜티 큐브의 신제품으로 에인절투자 25억을 유치해내며 서울 미아동에 플랜티 큐브 3개 동을 설치하고 자사 최초의 스마트팜 솔루션을 실증해 보였습니다. 2019년에는 시리즈 B 투자로 20억 원의 자금을 유치하고 경기도 용인에 16동 규모의 플랜티 큐브를 구축해 연 30t 규모의 채소 생산 능력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식품 유통이 아닌 농업 솔루션 공급을 향해


 김혜연 대표는 엔씽이 다른 국내 스마트팜 회사와는 다르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대다수 경쟁업체들은 수직형 재배(Vertical Farming)를 통해 생산한 작물을 유통하며 판매 수익을 창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엔씽은 ‘FaaS(Farm as a Service)’를 비즈니스 모델로 내세우며 농업 플랫폼 자체를 서비스 상품처럼 판매하는 솔루션 기업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병렬식으로 연결된 플랜티 큐브 컨테이너 / 사진: 엔씽


 이를 위해 엔씽은 농업에 필수적인 작물 재배, 포장, 배송 기능을 모두 나누어 5개의 컨테이너로 규격화했습니다. 입구동(입구 방역), 육묘동(씨앗 초기 육성), 재배동(옮겨 심고 성체까지 육성), 작업동(수확, 포장, 세척), 출하동(냉장, 제품 출하)으로 나뉜 ‘컨테이너형 농업 솔루션’은 기능성과 확장성을 모두 갖춘 상품이 되었고, 엔씽의 솔루션을 원하는 고객에게 컨테이너를 통째로 배송해 설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플랜티 큐브의 컨테이너 한 동은 약 12.2㎡의 면적을 차지합니다. 그리고 내부 재배 과정은 엔씽에서 개발한 운영체제 ‘큐브 OS’에 의해 운영되고 있습니다. 컨테이너 곳곳에 탑재된 센서들이 온도·관수 상태·조도·대기 습도를 비롯해 이산화탄소 농도까지 탐지하며 이를 바탕으로 생육 환경이 최적화되는 한편, 이용자는 스마트폰과 PC를 통해 실시간으로 농장 정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설치 후에는 정기적인 OS 업데이트를 통해 인건비를 크게 줄일 수 있었고, 유지보수의 편리함과 동시에 솔루션 이용료를 부과하는 형태의 비즈니스 모델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CES2020 혁신상을 수상한 엔씽의 플랜티 큐브 / 사진: CES2020


플랜티 큐브는 ‘상품으로써의 농업 솔루션’이라는 혁신적 가능성을 인정받아 2019년 개최된 '국제 전자제품 박람회(CES) 2020'에서 CES 최고 혁신상을 수상, 한국 모듈형 수직 농장의 선구자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여기에 이어 2019년 여름, 아랍에미리트의 수도 아부다비에도 플랜티 큐브 8동을 수출했습니다. 2020년 현재, 엔씽은 120억 원 규모의 시리즈 B 투자금을 추가로 유치하는 데 성공했고, 수출로만 100억 원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달려가고 있습니다.


엔씽은 모듈화 된 농장을 마치 제품처럼 만들어내는 새로운 개념을 고안해 냈다. 
 그리고 그것을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것 같다.



모듈형 농장, 글로벌 무대를 향해 


 코로나 19로 인해 전 세계 경제가 위축되어 있는 요즘, 중동 국가들과 함께 러시아, 싱가포르, 태국과 같은 농산물 해외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은 식량 부족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농산물 자국 생산 계획을 세우고 전 세계 기업들을 물색하고 있습니다. 아부다비와 엔씽의 수출 계약도 이러한 국가적 계획의 일환인 셈입니다. 


 엔씽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특히 중동국가들은 농산물의 거의 100%를 해외 수입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엔씽은 중동 국가들의 필수(MUST HAVE) 기업으로 자리 잡고자 합니다. 스마트 팜의 오랜 골칫거리였던 운영상의 에너지 비용 문제에도 비교적 자유로운 중동 국가이기에 엔씽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조건인 셈입니다.


엔씽의 향후 계획 / 자료: 엔씽


 시장조사 기관인 그랜드 뷰 리서치(Grand View Research)에 따르면, 전 세계 수직 농장 시장 규모는 2018년 기준 25억 1000만 달러(한화 약 2조 9,400억 원)이고, 연평균 20% 이상 성장하여 2025년에는 약 99억 6000만 달러(한화 약 11조 6,5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습니다. 엔씽도 이에 발맞추어 단기적으로는 전 세계 최대 규모의 수직형 농장 기업이라는 목표를 세우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작은 화분 하나에서 시작한 글로벌 수준의 스마트팜의 여정은 어디까지 진행될 수 있을까요? 더 나아가 향후 화성까지 진출하겠다는 야심 찬 포부를 실현해낼 수 있을까요?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되는 국산 농업 스타트업 엔씽(N.thing)입니다.


저희가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은 전 세계 도시마다 저희 농장을 짓는 거예요. 
 그래서 언제 어디서나 신선한 채소들을 지속 가능하게 공급하고자 합니다.


기술 기업가정신(technology entrepreneurship)으로 진일보하는 엔씽


 지금까지 기존의 사례를 통해 기업가정신에 대해서는 비교적 많이 다루어 보았습니다만, 이번에는 기술 기업가정신(technology entrepreneurship)에 대해서 처음 언급하는 만큼, 다소 생소할지 모르겠습니다. 이번 사례에서는 기술 기업가정신에 초점을 두어, 창업가의 기술 혁신을 통한 비즈니스 최적화가 기술 기업가정신으로  진일보하고 있다는 점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바로 엔씽의 사례가 기술 기업가정신에 기반 한 비즈니스 모델의 발전을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지요. 


 기존 문헌에서는 기술 기업가정신을 가진 창업가 또는 그러한 특성을 가진 개인에 대해 다양한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기존의 비즈니스 기회를 바탕으로 보다 더 발전하기 위한 경각심을 가진 기업가’(SHANE, 2003),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경험적 자산을 가진 개인 또는 그 판단’(FOSS & KLEIN, 2005),  ‘다른 기업가에 비해 정보적 소모 비용이 낮은 또는 낮다고 믿는 개인’(CASSON & WADESON, 2007) 등 다각적으로 논의되고 있는데요. 기업가정신에서 한 층 더 나아가 기술 친화적인 기업가정신으로 거듭난다면 어떤 좋은 점들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우선 기술 기업가정신은 혁신 생태계에서 보다 지속적인 경쟁 우위를 마련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BAILETTI, 2012). 또 특정 영역에 전문화된 개인이 영역 별 기술 간의 속성을 보다 잘 포착하고 그 속성의 조합을 원활하게 개발할 수 있도록 기여합니다(BAILETTI, 2012). 이러한 이유로 기술 기업가정신은 앞으로의 혁신 생태계에서의 생존에 더욱 요구되는 자질이자 특성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엔씽의 스마트 기술 기반의 모듈형 농업 컨테이너는 작은 화분 하나에서 시작했습니다. 작은 화분은 비즈니스 항해의 물꼬가 되었고, 창업가인 그 자신과 기업은 보다 거대한 비즈니스의 대양으로 헤엄쳐 나가기 위해서 작은 물꼬에서 기술친화적인 혁신을 꾀하였습니다. 즉, 보다 근본적으로 창업가 그 자신이 보다 야망적이고 전투적인 기술 기업가로 거듭나는 데 주력한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더 나아가 엔씽은 자신과 같은 기술 기업가정신의 동료를 탐색하여 보다 효율적으로 자원을 활용, 기술 변화의 가능성을 최대한 실현시키고 안정화해 나갔습니다. 요컨대 기술 기업가정신은 개인의 기술 친화적 혁신 성향뿐만 아니라, 공동의 목표 달성을 위해 동원되는 기술 협력의 모든 실행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오늘날,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을 통한 혁신과 4차 산업혁명 기반 기술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은 재론의 여지없이 주목받고 있는 뜨거운 화두입니다.  창업가에게는 기술 기반의 기업가정신을 통해 새로운 사업기회를 포착하기 위한 기술적 속성에 자유롭고 더욱 특화 되어야 함이 요구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엔씽은 화분 하나에서 시작해 농업 솔루션 모듈의 표준 기술을 확립하고 한국형 FaaS 시장을 개척해 나가고 있습니다. 기술 기업가 정신 없이는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지금까지 기술 기업가 정신으로 지속 가능한 혁신 순환의 고리를 만들고 스마트팜 시장의 새로운 표준을 만들어 가고 있는 엔씽의 이야기였습니다.






Where?        한국, 서울

When?        2014년

What?        ICT 기술을 접목한 컨테이너형 첨단 스마트 농장 

Who?        김혜연 대표

Why?        스마트 팜 기술을 활용, 언제 어디서나 안전한 농산물을 생산하기 위해

How?        재배시설의 기능별 자동화&모듈화를 통한 FaaS 구현 



References


“작물 대신 재배 시스템 수출”… 극한기후 뚫는 미래농업, 동아일보, 2019/11/06

CES 2020 최고 혁신상 수상한 ‘엔씽’, 컨테이너에 조성한 첨단 스마트 농장 ‘수출 대박’, 매일경제, 2019/12/30

김혜연 엔씽 대표, 화성에 농장을 만드는 그 날까지, 메트로, 2020/07/06

김혜연 엔씽 대표, 농업의 미래가 바뀐다! 스마트팜 스타트업 ‘엔씽’, 머니투데이, 2020/05/12

모듈형 컨테이너 스마트팜 수출하는 김혜연 엔씽 대표, 매일경제, 2019/12/27

스마트팜 어디까지 진화? 온도·습도·빛·영양… 모두 자동 조절 중동·동남아·러시아서 수출 러브콜, 매일경제, 2020/09/23

스마트 화분으로 1억 원 펀딩 받은 뒤 스마트팜으로 제2의 도약하는 엔씽, 지식비타민, 2019/11/21

엔씽, 모듈형 컨테이너 수직농장으로 기후변화 대응 스마트팜 선점, 글로벌 이코노믹, 2020/09/12

엔씽 CES 혁신상 새 역사, 한국경제, 2020/01/09

엔씽은 농장 파는 인터넷 기업, IT 조선, 2020/03/09

우리는 소비자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는 회사! 엔씽 김혜연 대표, Startup's Story Platform, 2014/04/30

Bailetti, T. (2012). Technology entrepreneurship: overview, definition, and distinctive aspects. Technology innovation management review, 2(2).

Casson, M., & Wadeson, N. (2007). The discovery of opportunities: Extending the economic theory of the entrepreneur. Small Business Economics, 28(4), 285-300.

Foss, N. J., & Klein, P. G. (2005). Entrepreneurship and the economic theory of the firm: any gains from trade?. In Handbook of entrepreneurship research (pp. 55-80). Springer, Boston, MA.

Shane, S. A. (2003). A general theory of entrepreneurship: The individual-opportunity nexus. Edward Elgar Publishing.

작가의 이전글 Six Foods: 친환경 곤충 식품에 도전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