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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창완 Sep 23. 2020

정육각: 고기도 제조 일을 따져보자

고기의 진짜 맛을 느낄 수 있는 신선한 고기를 향해서

기분이 저기압일 땐 신선한 고기 앞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백화점이나 집 주변 마트에서 농산물이나 고기를 구매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먹거리를 구매할 때, 원산지와 신선도를 확인해 봅니다. 그런데 식료품에 비해 육류, 즉 고기를 구매할 때는 이 먹거리가 어디서 왔는지, 시간은 얼마나 걸려서 왔는지 알기 어렵습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이 고기가 얼마나 신선한 지 언제나 의심하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대형마트에 공급되는 냉장육은 진공포장 상태로 도축일로부터 7일~45일에 걸쳐 유통, 판매되고 있습니다. 대량 유통에 특화된 이 유통 경로는 육류에 어느 정도의 품질 하락은 피하기 어렵습니다. 도축일로부터 시간이 지날수록 고기의 신선도는 당연히 떨어지게 되고, 도축할 때는 최상의 품질 이었던 고기라고 하더라도 유통과정에서 점점 품질이 떨어지기 때문이지요.


자료: 정육각


 가축이 도축 되면 사후경직(死後硬直, 죽은 뒤 근육이 굳는 현상)이 고기에 나타납니다. 그리고도축 이후 12시간이 지나야 육류의 사후 경직이 풀리게 됩니다. 경직이 풀린 후 1차적인 숙성을 거치게 되는 데 이 과정까지 이틀 정도가 소요되지요. 이렇게 1차적으로 숙성이 끝난 후 2일~5일까지가 고기가 가장 맛있는 기간으로, 이를 고기의 ‘골든 타임’이라고 부릅니다. 골든타임이 지나면 고기의 신선도는 떨어지고 누린내가 나기 시작해 맛이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평소에 마트나 정육점에서 구입하는 고기는 도축된 지 최소 7일이 지난 것으로, 골든타임이 이미 지나버린 고기인 셈이지요. 


 농장과 목장에서 거리가 멀어지는 만큼 축산물의 유통 과정은 복잡해지며 그로 인한 신선도 하락은 필연적입니다. 신선도가 떨어진 제품을 구매한 소비자는 제품에 대한 불만을 가지게 되고, 이러한 불만은 제품에 대한 소비자의 불신과 구매욕구 저하까지 야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소비자의 신뢰를 얻으면서 유통 소요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면 어떨까요? 믿을 수 있는 고기를 엄선하여 신선하고 안전하게 문 앞까지 배달해주는 정육각이 그 해결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촉망받는 수재의 축산업 도전기


 카이스트에서 응용수학을 전공하고 미 국무부 장학생이 될 기회까지 얻었던 사람이 있습니다. 가족과 주변사람들의 기대를 받고 많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지만, 그 사람은 미국 유학을 떠나기 8개월 전 그 기회를 모두 포기하고 돌연 돼지고기를 팔겠다고 선언합니다.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역시 충격적이었습니다. 자신의 재능을 신선한 고기에 바치기로 한 그 사람은 바로 정육각의 김재연 대표입니다.


김재연 ‘정육각’ 대표 / 사진: 중앙일보

 어린 시절 김재연 대표는 친척 중 한 분이 지리산 자락에서 흑돼지 농가를 운영했다고 합니다. 그 덕에 자연스럽게 도축되자마자 나온 가장 신선한 돼지고기를 두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었지요. 거기에 더해 ‘골든 타임’이 지나지 않은 최고급 품질의 고기를 자주 맛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성장기를 보내고 초등학생 시절부터 혼자 삼겹살을 구워먹을 정도로 김재연 대표의 고기에 대한 애정은 남달랐습니다. 

고향을 떠나서도 김재연 대표의 고기 사랑은 식지 않았고, 기회가 될 때마다 서울과 제주의 소문난 돼지고기 맛집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러나 사 먹는 고기의 맛은 고향에서 먹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친구 집에 삼겹살을 사 갔는데 그 집 강아지가 제가 사온 삼겹살만 먹고 
원래 친구네 집에 있던 삼겹살은 안 먹었어요. 
안심장보기 앱으로 확인하니 제가 산 고기는 도축한 지 20일 된 거였고 
친구 집에 있던 건 100일도 더 된 냉동고기더군요.


 어렸을 적 직접 맛본 고품질의 고기 맛을 찾기 위해 다양한 매장에서 여러 번 비교해가며 고기를 사 먹은 결과, 김재연 대표에게는 ‘도축일로부터 시간이 지날수록 고기 맛은 떨어진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도축장을 직접 방문해 '골든타임'이 지나지 않은 돼지고기의 맛을 보니 확실한 차이를 느낄 수 있었고, 골든타임이 지나지 않은 ‘황금 고기’는 고향에서 먹던 옛 맛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던 것이지요.


 신선도가 맛의 차이를 만든다는 것을 확인한 후, 김재연 대표는 많은 사람들에게 신선한 고기를 공급하고 싶다는 생각 하나로 창업을 구상하기 시작했습니다. 고기 맛에 대한 확신과 창업에 대한 포부는 점점 커졌고, 김대표는 미국 유학을 포기하고 돼지농장으로 달려갔습니다. 하지만 많은 것을 포기하고 시작한 사업이 처음부터 순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사업을 시작하면서 다양한 농장들을 방문했을 때, 도매업자와 농장주를 비롯한 기존의 업자들은 도축 시장에 한 번도 몸 담가본 적 없는 김 대표를 ‘조무래기’ 취급하였던 것이지요. 


 김대표는 난관에 굴하지 않고,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을 모두 사용하며 6개월간 500kg에 달하는 다양한 상태의 돼지고기를 먹어보며 연구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맛의 포인트가 신선도에 있다는 확고한 결론을 얻어냈습니다. 이러한 연구 끝에 김 대표는 도축한 지 5일 내에 먹는 고기가 가장 맛있다는 확신으로 창업 아이템에 적용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기존의 가공, 유통 등의 과정을 유지한 채 창업을 시작한다면 아무리 좋은 고기가 있어도 소비자에게 도달하는 시간이 평균 20일 전후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20일을 단축시키려면 물류 비용 증가가 필히 수반되기에 기존의 방식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았고, 기존 축산업자들도 새로운 유통망 도입에서 발생할 리스크를 선뜻 책임지지 않았습니다.


인터넷으로 신선한 고기를 판다고 하니
축산업 종사자 열에 아홉은 가능성이 없다고 했어요.
그런데 가능성을 발견하고 소비자 만족도 높아지는 걸 보면 
그 즐거움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아요. 
축산업은 오랫동안 변화가 없었어요. 그래서 발전할 부분이 더 많죠.



골든 타임, 골든 유통


기존 유통망의 판매기간이 아닌 골든타임을 중요시한 정육각 / 자료: 정육각


 김 대표는 처음으로 돌아가 소비자 입장에서 생각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고기맛과 유통비용이라는 갈림길에서 단호한 선택을 내려야하는 순간이 찾아온 것이지요. 그리고 김재연 대표가 선택한 것은 당연히 고기의 맛이었습니다. 기존의 육류 판매점은 미리 도축한 고기를 재고로 보관하고 판매합니다. 돼지의 경우, 도축한 후 핏물을 빼고, 고온의 스팀으로 소독한 후 발골 작업을 거치는 데, 이 과정에서 1~2일의 시간이 소요됩니다. 또한 이후에는 영하 4도의 냉동고에서 비계를 굳히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그러나 정육각에서는 이 과정을 과감히 생략하여 시간을 단축하고 불필요한 냉동 과정도 제거하여 신선도를 올리기로 결정합니다. 또한 유통단계마다 끼어드는 중간 도매상을 모두 빼고, 농장과 직거래를 통해 소비자에게 바로 판매하여 유통기간을 육류의 골든타임과 비슷한 수준으로 줄이게 됩니다. 


 이처럼 김재연 대표는 자신의 경험을 밑바탕 삼아 끊임없는 연구와 투자, 과감한 중간 유통 생략, 그리고 IT 기술을 활용한 자동화 저장 시스템을 스스로 개발하였고, 그 결과 대량의 고기를 도축한 지 3일 내에 출고할 수 있는 정육각을 만들어냅니다. 정육각의 새로운 시스템을 통해 소비자들은 가장 신선한 고기를 집에서 살 수 있게 되었고, 무엇보다 제품 본질의 맛으로 소비자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습니다. 마침내 정육각은 개업한 지 한 달 만에 손익분기점을 넘어섰고 사업은 빠르게 안정화 궤도에 들어서게 됩니다. 작년 매출 40억원을 달성한 데 이어, 올해는 매출 200억원을 예상하고 있으며 누적 투자금액은 187억원에 도달했습니다.


돼지를 넘어 축산업을 초(超) 신선하게


정육각에서 판매하는 다양한 축산 상품들 / 사진: 정육각


 정육각은 이제 돼지고기를 넘어 다른 축산물도 유통하고 있습니다. 닭고기와 달걀 같이 우리가 자주 식탁에서 만나는 식재료까지 ‘초’신선한 상태로 배달되어야 한다는 김재연 대표의 뚜렷한 생각 때문입니다. 정육각의 달걀은 오로지 당일 산란된 유정란만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상위 3%의 동물복지 농장과 협력하여 만들어진 신선한 달걀들은, 무항생제 검사와 신선도 선별을 거쳐 소비자에게 유통됩니다. 닭들은 최대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관리된 공간에서 길러지며, 이렇게 키워진 닭들은 최고급 유기농 1등급 닭고기로 탄생하게 됩니다. 모든 닭은 사료부터 생산까지 섬세하게 관리되고, 모든 사육 과정이 협력농장에서 하나하나 직접 통제되기 때문에 정육각에서는 최고 품질의 제품을 제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정육각은 도축 후 1~4일 내 배송하는 초신선 돼지고기를 시작으로, 
당일 도계 닭고기와 당일 산란 달걀로 상품군을 확장,
소비자들에게 일상 속에서 ‘초신선을 먹는 습관’을 만들어 드리고자 합니다.



정육 시장 경쟁의 기준과 제품 변화의 관점을 바꾼, 축산업계의 파괴적 혁신


 이제 축산업도 혁신이 필요한 젊은 시장으로 자리매김해야 하지 않을까요? 정육각과 같은 젊은 축산업 종사자가 늘어날수록 그 변화가 가속화될 것은 당연한 수순입니다. 단, 기존과 같은 방법을 답습하기만 한다면 변하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변화하는 시장과 니즈에 맞추어 생산업체에서의 상품의 차별화도 이루어지고, 주문-생산-유통과정에서도 차별화된 가치를 연구하고 제공한다면, 기존 시장의 한계를 넘어서서 전반적인 인식의 변화를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무한 경쟁의 시대에서 이러한 혁신의 변화와 시장 성장의 기초는 어디에서 연유할까요? 바로 정육각의 사례에서도 살펴볼 수 있듯이, 혁신 제품은 무엇으로 하여금 기존 제품보다 더 나은 우위를 점하게 만들까요? 다양한 논의들을 펼쳐 볼 수 있겠지만, 한 가지만큼은 확실한 것은 시장 관점의 제품 혁신이야말로 바로 기존 시장의 한계를 돌파하고 지속적인 수요를 일으키는 데 충분조건이라는 사실입니다. 더욱이 정육각의 사례가 우리에게 신선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지금까지 혁신의 대상이나 인접 개념이 흔히 ‘기술’(technology)이었던 데 반해, 언뜻 보기에 관련성이 떨어져 보이는 ‘정육’이라는 식료품 소비재에서 시장 관점의 무형의 혁신성을 포착해서였을지도 모릅니다.


 소비자 관점에 기반 한 유통 과정의 차별화가 여느 기술 혁신 못지 않은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고 해당 시장을 선도하는 일은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 현상으로도 설명할 수 있습니다. 파괴적 혁신의 개념(Christensen, 1997)은 우리에게 꽤 잘 알려진 개념이지만, 우리 일상의 구체적인 사례와 연결짓지 못하고 자칫 피상적인 수준으로만 이해하게 된다면 그 역시 잘 알려는 졌어도 누구도 잘 알지 못하는 개념이 될 것입니다. 저는 정육각의 사례가 기술 그 자체에 의해서가 아닌, 시장 관점의 변화를 꿰뚫어 기술로 실현시켰다는 측면에서 파괴적 혁신의 좋은 사례가 아닐까 합니다. 단순히 육류의 판매 기간이 아닌, 신선도와 유통의 골든 타임을 근본부터 다르게 접근한 정육각이야말로, 육류 시장의 근본적인 변화를 초래하고 경쟁 기준을 바꾸는 데 일조하였기 때문이지요. 


 물론 그로 인해 나타나는 파괴의 대상이 되는 제품의 수, 또는 그 정도에 따라 정육각의 사례를 좀 더 세분화된 파괴적 혁신의 유형으로 나눠볼 수도 있겠습니다. 또 파괴적 혁신 과정의 구체적인 단계들을 일원론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측면에서는 정육각의 사례 역시 보다 심층적인 논의가 필요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정육각의 사례는 우리에게 어떠한 측면에서 파괴적 혁신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볼 가치가 충분히 있겠습니다. 이를테면, 파괴적 혁신이 반드시 기술 수준이 높은 산업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고 보거나 또는 ‘파괴적’이라는 말만큼 급진적인 변화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기준이나 관점을 바꿈으로써 일어날 수 있는 현상임을 놓치지 않는다면(이형진 외, 2015), 미래에 또 다른 정육각의 파괴적 혁신을 기대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Where?    대전, 유성구

When?     2016 년 

What?      초신선 돼지고기, 닭고기, 달걀 등 축산물 온라인 판매 

Who?       김재연 

Why?       어린 시절 먹어본 신선한 돼지고기 맛을 전하기 위해 

How?       최대 규모의 친환경 농장과 협력, 최고 품질의 돼지고기를 신선한 상태로 배송



REFERENCES

 

'온 디맨드' 창업을 주목하라, Science Times, 2017/03/29

김재연 정육각 대표 “맛 골든타임 확보, 초신선 육고기시장 열 것, 서울경제, 2017/11/19 

삼겹살의 품격… 향 강한 신선육 vs 고소한 숙성육, 중앙일보, 2018/01/29 

온라인으로만 살 수 있는 ‘초 신선’ 돼지고기, ‘정육각’ , beSUCCESS 한국, 2017/01/17 

축산물 유통 스타트업 ‘정육각’ 김재연 대표, 데일리뉴스, 2017/01/25 

축산업의 퍼플오션을 찾다, 조선일보, 2017/02/24 

카이스트 나와 돼지고기 파는 청년 ‘정육각’ 김재연 대표, 중앙일보, 2017/04/09 

이형진, 김길선, & 김미리. (2016). 시장의 관점을 통한 파괴적 혁신의 이해. Korea Business Review, 20(1), 43-67.

Christensen, C. M.(1997), The innovator’s dilemma : when new technologies cause great firms to fail, Harvard Business School Press, Boston, Massachuset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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