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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두리 Jul 17. 2018

꿈과 희망을 믿는 사진가 비두리

여는 글

지금 만나러 갑니다, 2010, photo by 비두리


여전히 사진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정신 나간 한 젊은이가 있다. 이 사진이야기는 사진 이론이나 촬영기술을 가르치는 강좌도, 이런 사진을 찍었다는 자화자찬도 아니다. 사진으로 ‘꿈’과 ‘희망’을 그리는, 사진의 힘을 믿는 한 사진가의 솔직한 이야기다.


# 2003년 130만 화소 카메라로 사진 시작


2001년, 니콘 필름 카메라 F4가 들어있는 가방의 무게를 견뎌냈다면, 지금 사진가로서 다른 삶을 살고 있을까?


그해 봄, 서울 한복판에서 대학교 신문사 수습기자로 카메라 가방을 어깨에 메고 뛰면서, 사진부는 정말 힘든 곳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 생각은 사진부를 부서 선택에서 제외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이제는 알고 있다. 카메라 가방이 무겁다면, 그만큼 사진가가 짊어져야 할 사진의 무게도 큰 것임을. 물론 카메라의 무게가 가볍다고 그만큼 사진이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다.


2년 뒤 2003년 11월, 6만 원으로 구입한 토이 카메라. 130만 화소, 찍은 사진을 확인하는 액정도 줌도 없었다. 일일이 위치를 옮기며 사진을 찍어야 했다. 이런 카메라로 사진을 배웠다. 정규적인 사진교육 과정을 거치거나 전문가에게 강연 한번 받지 않았다. 사진 동호회 활동을 한 적도 없었다. 고백건대, 수많은 사진가가 남긴 유산, 주요 사진 사이트 그리고 다양한 책을 통해 사진을 배우고, 상상력을 전수받았음을 부인할 수 없다.


두 번째 카메라는 330만 화소에 광학 10배 줌에 당연히 액정이 있는 카메라였다. 하지만 광주에서 잃어버렸다, 산지 채 1년도 안되어. 세 번째 카메라는 두 번째 카메라와 비슷한 기종이었고 4년 가까이 잘 사용했다. 어이없는 고장과 그 절반이 넘는 수리비로 차마 수리하지 못한 채 서랍장에 고이 두었다. 늦은 나이에 간 군대에서 100일 휴가 이후부터 모은 월급으로 2009년 네 번째 카메라인, 꿈에 그리던 DSLR을 구입했다. 그리고 10년 넘게 사용했다.



[연작] 꽃I 中, 2015, photo by 비두리


# 2009년부터 연작 시작


하루에도 셀 수 없는 새로운 사진이 연일 쏟아진다. 가히 사진의 쓰나미이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경계는 이미 사라졌다. 1x.com, 500px 등의 외국 사진 사이트에 접속해보면, 더욱 놀라게 된다. 전 세계에 널린 사진 고수들을 보게 되니까!


예술을 순위로 매길 수 있다면 그래서 사진가의 순위를 세계에서 가장 높은 에베레스트 산에 비유해보자. 저 높은 에베레스트의 몇몇 봉우리는 우리 곁을 떠난 국내외 유명 사진가들이 차지하고 있다. 바로 밑에는 어깨에 카메라 장비를 짊어진 수많은 사진가가 분주히 올라오고 있다.


4000m의 중간지대를 보자. 이곳은 중간이라고 하기엔 이미 발 디딜 틈이 없다. 이제 사진을 시작하는 초보 사진가들이 기본 코스인 동네 뒷산을 올라가고 있다면, 15년 차에 접어드는 이 젊은 사진가는 지금 어디에 위치하고 있을까?


다행스럽게도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2009년부터 하나의 주제를 정해, 일정기간 촬영을 하고 결과물을 발표하는 ‘연작’을 해오고 있다. 뛰어난 사진 한 장으로 승부하는 것이 아니라 주제와 상관있는 다수의 평범한 사진이 모여 힘을 내는 구조라고 볼 수 있다. 이 사진이라는 ‘녀석’이 각각은 힘이 없을지 몰라도, 전체로 모이면 강한 힘을 발휘한다.


2009년 처음 내놓은 <일하는 부모님> 연작이 네이버 ‘오늘의 포토’로 선정되며, 앞으로의 가능성과 미래를 엿보았다. 


비두리님의 사진을 눈여겨 보고 그의 갤러리를 찾아 들어갔습니다. 최근 들어 테마작업을 하는 생활사진가들이 늘어나긴 했지만 비두리님은 제대로 연작을 진행해왔습니다. 일하는 부모님 연작의 마지막 사진인 40번째에 그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그 동안, '[연작] 일하는 부모님'을 지켜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은 올해 4월 초 ~ 5월 중순 동안 찍었습니다. 2달 동안 1주마다 월화수목금 등 5장씩 사진을 올렸습니다. 사진만 찍는 건 아니고, 일도 도와드렸습니다. 사진이 스스로 말하도록, 그간 설명 한 줄도 달지 않았는데, 어떻게 전달됐는지 모르겠습니다. 사진을 봐주신 모든 분께 다시 한번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며, 이상 '[연작] 일하는 부모님'을 마치겠습니다.”

눈여겨볼 대목이 몇 있습니다. 우선 사진이 스스로 말하도록 그간 설명 한 줄도 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찍는 사람의 의도를 글로 남기면 보는 사람의 감상에 편견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알고 배려했다는 뜻입니다. 또 한가지는 사진만 찍은 것이 아니고 일도 도왔다는 대목입니다. 모르는 사람의 축사가 아닌, 자신 부모님의 일터였음에도 불구하고 일을 도우면서 틈틈이 사진을 찍었다는 것은 비두리님의 자세가 대단히 본받을 만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멋진 사진을 찍는다는 목적을 앞세워 다른 사람의 초상권을 침해하며 카메라를 들이대는 거친 행동이 아니란 점이 훌륭하며 그보다 더 눈여겨 볼 것은 사진이란 것이 삶의 현장과 분리되어선 안된다는 철학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전체 40장의 사진을 모두 한 번 이상씩 클릭해봤습니다. 하나의 스토리로 만들 수 있는 소재였고 연작입니다. 40장을 전부 발표할 것은 아니라고 보여집니다. 중복되는 사진이 많았는데 아마 이점을 비두리님도 알고 있을 것입니다. 4, 5, 8, 9, 11, 13, 16, 18, 21번 정도가 변별력이 있는 컷으로 생각됩니다. 연작엔 포함되어 있지 않지만 컬러로 작업한 ‘누구냐 넌’의 경우, 같은 곳에서 찍었다면 흑백으로 변환시켜 연작에 포함하면 아주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는 사진입니다. 앞으로 계속 연작을 시도하십시오. 기대하겠습니다.


더욱이 “앞으로 계속 연작을 시도하십시오. 기대하겠습니다.”라는 곽윤섭 심사위원(한겨레신문 사진기자)의 주문에 부흥하기 위해 10년째 연작을 계속 ‘시도’하고 있다.  



[연작] 야구장 中, 2010, photo by 비두리


# 좋은 사진은?



당신을 웃거나, 울거나, 가슴 아프게 한다면 제대로 된 사진입니다.

- 에드워드 T. 에덤스(1933~2004)



퓰리쳐상 사진전의 광고 카피다. 좋은 사진이란 무엇일까? 앞서 나온 감동을 주거나 심금을 울리는 사진, 초점이 잘 맞아 선명하고 한눈에 보기에 무슨 의도인지 알 수 있는 사진, 저명한 상을 받은 사진도 좋은 사진이다. 물론, 답은 있지만 꼭 하나의 정답이란 없다.


내게 좋은 사진이란, 시선을 고정시키는 힘을 가진 사진이다. 사진의 본질은 죽음이라는 롤랑 바르트는 저서 <카메라 루시다>에서 스치듯 말했다.


 결국 사진은 두려움을 주거나 격분시키거나 상처 입힐 때가 아니라 생각에 잠기게 할 때, 파괴적인 힘을 갖는다.


내 사진은 어떻게 비칠까. 


사진을 보고 즐거워하는가 아닌가, 혹은 감동을 받는가 아닌가는 사진가의 문제가 아니라 보는 이의 것이다. 사진가가 보는 사람의 재미까지 생각한다는 것은 사진이 뭔가를 담아보려고 강요했던 오류를 반복하는 것이다.

- 다큐멘터리 사진가, 여동완


지당한 말씀이다. 그럼에도, 이 사진이야기가 독자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자못 궁금하다. 다음 연재부터는 연작을 화두로 본격적인 사진이야기를 진행한다. 다음 사진이야기를 쓸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즐거워진다. 변변찮은 내 사진과 사진이야기를 보는 독자들도 즐거운 시간이 되길 바란다.


비두리(박창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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