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두리 Jul 23. 2018

부모님을 통해, 나를 찾는 긴 여정

1화 - [연작] 일하는 부모님(2009 ~ )

[연작] 일하는 부모님 中, 2009, photo by 비두리


부모님의 일하는 모습을 담은 '일하는 부모님'을 연재하고자 합니다. 낙농업을 하는 부모님의 일하는 사진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보아온 풍경이라 제게는 익숙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생소한 모습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첫 연작인 ‘일하는 부모님’(2009~ )를 시작하면서 쓴 글이다. 2003년부터 사진을 시작했지만, 부끄럽게도 2009년 이전까지 6년 동안 찍은 부모님 사진은 50장 미만이다. 부모는 자식을 키워냈지만, 정작 자식의 안중에 부모는 없었다.


# 가족사진 프로젝트의 시작


2009년 1월, 제대하고 나서 군대에서 모은 월급으로 새 카메라 장비를 장만했다. 100만 원이 넘었다. 가격만큼 가치 있는 사진을 찍고 싶었다. 가족사진을 찍지 않은 반성 하에 어려운 것도 아니었는데 늘 곁에 있을 거라는 안심으로 카메라를 들지 않았다”면서 부모님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부모님 사진 작업을 하는 내게 힘과 용기를 주는 사진집이 있다. 바로 <윤미네 집>이다. 1990년 첫 출간했다. 고(故) 전몽각 선생이 큰딸 윤미 씨가 태어나서 결혼할 때까지의 가족사를 기록한 사진집이다. 대학교수라는 본업이 있음에도 무려 26년 동안이나 카메라를 내려놓지 않았다. 가족에 대한 따뜻한 사랑은 사진을 뛰어넘어 깊은 감동을 전한다.


[연작] 일하는 부모님 中, 2009, photo by 비두리


부모님의 삶을 통해 나를 찾다


사진가는 사진을 통해 자신의 관심, 세계관, 가치관을 표현하기 마련이다. 한 장의 사진으로 이 모든 걸 파악하긴 힘들지만, 작업한 사진을 묶어보면 그의 정체성을 파악할 수 있다. 그것이 드러나지 않고, 단지 아름다운 풍경이나 신기하고 낯선 피사체를 찍은 사진은, 그저 단순한 이미지에 불과하다. 사진가 역시 작가로서 불행하게도 수준 미달이다. 세상에 나오는 모든 사진이 작품이 되지 않는 것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현대 사진에 많은 영향을 끼친 스위스 태생의 미국 사진가인 로버트 프랭크(1924~ )는 말했다. 

작가는 사진에 자기 삶의 무게를 표현하게 된다. 예술과 생활은 불가분의 관계다.


자라온 곳이 배경이고 길러주신 부모님이 주인공인 일하는 부모님 연작은 결국 나를 찾는 긴 여정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끝은 정해져 있지 않다. 그래서 한 달에 한 번꼴로 집에 내려갈 때마다 틈틈이 작업하고 있다.


12월의  어느 날, 그전까지의 작업량이 많지 않아 밤잠을 설치다시피 하고 새벽부터 부모님을 따라 일어났다. 추운 겨울날, 세상은 그야말로 암흑이었다. 새벽 6시에 일을 하는 부모님, 그리고 그것을 사진 찍는 자식. 어떤 풍경일까?


어느 일이 쉽지 않겠냐마는, 낙농업은 정말 고된 일이다. 하루 일과 중 어느 것 하나도 소홀할 수 없다. 목장을 하루 이상 비우는 여행은 불가능하다. 평소 열 마디를 넘기 어려웠던 부모님과 참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평생 일만 해야 하는 부모님이 안쓰럽기도 했다. 자기 하고 싶은 것만 하느라 고생만 시키고 효도도 제대로 못하는 자신이 한심하기도 했다. 일도 도와드리면서 사진 찍는 것이 효도라고 스스로를 위안하기도 했다. 부모님 사진을 찍으면서 철이 조금 든 것 같기도 하다.


[연작] 일하는 부모님 中, 2010, photo by 비두리


# 일도 도와드리면서 작업하는 이유는?


“사진이 스스로 말하도록, 사진 설명은 하지 않겠습니다.”


‘일하는 부모님’을 통해 가급적 사진설명을 배제하는 원칙을 세웠다. 사진가는 사진으로 말해야 된다. 이미 내용이 담긴 사진을 소위 ‘글발’로써 포장하려는 것에 반대하는 입장에서다. 그래서 사진설명을 잘 하지 않는다.


사진을 잘 찍는 노하우 혹은 기술? 그런 것들은 넘쳐나서 별로 논할 마음은 없지만 인물사진을 잘 찍는 방법은 사실 단 하나로 충분하다. 사진을 찍기 전에 먼저 사진 찍을 인물과 친해져라! 세계적인 다큐 저널리스트인 세바스티앙 살가도(1944~ )의 충고를 빌리면 다음과 같다.


사진은 사진작가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촬영하려는 사람과의 관계에 따라 사진은 더 좋은 작품이 되거나 더 좋지 못한 작품이 되기도 한다.


아무리 부모 자식 관계라 해도, 어느 부모가 집에 올 때마다 일하는 곳에 와서 먹잇감을 사냥하듯 사진 찍는 자식에게 관대할 수 있을까. 그래서 일을 도와드리는 것은 당연하다. 사진 촬영을 하지 말아야 하는 상황에선 그에 맞게 행동했다. 부모님의 일하는 모습을 ‘이용’해서, ‘작품 활동’을 한다거나 ‘상’을 받거나 ‘사진작가’ 자격을 얻으려고 하는 작업은 아니므로.


[연작] 일하는 부모님 中, 2010, photo by 비두리


# 가족사진 작업, 늦기 전에 시작하라


일하는 부모님 연작을 하는 이유는 가족사진을 담아야 한다는 의무와 책임이 크다. 부모님이 낙농업이 아닌 다른 일, 예를 들어 식당이나 세탁소나 혹은 제과점이었다면 이 일을 하는 부모님 사진을 찍었을 뿐, 연작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1826년 프랑스의조세프 니세포르 니에프스(Joseph Nicéphore Niépce)가 8시간의 노출 끝에'라 그라에서의 조망'이라는 최초의 사진을 완성한 이례, 200년에 가까운 사진사에서 인물사진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중 가족사진은 많은 의미가 있다. 결혼식에서 부케는 빠질 수 있어도, 카메라는 절대 없어선 안 된다. 결혼식 전후로의 가정사는 모두 사진으로 기록된다. 그래서 어느 가정이나 가족 앨범 한 권씩은 있기 마련이다.


어떻게 하면 의미 있는 사진을 해볼까 궁리하면서도 외부로만 눈을 돌리고 있는 이들에게 가족사진 작업을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타인도 가능하겠지만 가족을 오랫동안 깊이 있게 사진으로 담아낼 사람은 역시 가족 내 구성원이다. 아무리 기술이 진보하고, 사진보다 더 강력한 매체가 나온다고 해도, 가족사진의 가치는 결코 빛이 바래지 않을 것이다.


사진을 잘하기 위해 깨달아야 할 점은, 기술이나 노하우에 집착하거나 비싼 카메라를 마련하거나 예쁜 모델을 앞세우거나 시선을 끄는 화려한 피사체나 신기한 장면을 쫓아다니는 것에 있지 않다. 왜 사진을 찍는지 명확한 이유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하고, 사진을 하는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 이론에 너무 집착할 필요는 없지만 자신의 사진 작업에 대한 개념과 이해가 충분해야 좋은 사진이 만들어진다.


세상에 대한 애정과 삶에 대한 긍정성으로 진심을 다해 사진 작업을 하면(다른 일도 마찬가지) 지금은 비록 세상이 몰라볼지라도 언젠가 그것을 알아줄 누군가가 반드시 나타난다.


나는, 당신을 믿는다. 그러니 앞으로도 계속 매진하시길.


비두리(박창환)

매거진의 이전글 꿈과 희망을 믿는 사진가 비두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