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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두리 Jul 24. 2018

동물원, 연작의 의미

[연작] 동물원(2009 ~ )

“나는 날 믿는다. 난 계속 사진을 찍을 것이고 내 길을 찾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만의 동물원 사진을 완성할 것이다.”


[연작] 동물원4를 준비하며 쓴 메모이다. ‘동물원’ 연작은 ‘일하는 부모님’ 이후에 새로운 주제를 찾던 중 우연히 어느 사진책에서 미국 사진작가인 게리 위노그랜드(1928~1984)가 뉴욕의 동물원을 찾으며 찍은 사진집 'The Animals'가 있다는 정보를 접하고 2009년 8월에 시작했다. 지난 10년 동안 서울과 경기도를 비롯해 부산, 광주, 울산, 전주, 김해, 진주, 대구, 원주, 춘천, 고령 등 전국에 있는 모든 동물원에 다녀왔다.


# 세상과 '맞짱' 뜨는 작업

Spotted Seal, 2009, photo by 비두리

일하는 부모님 연작이 가족사진에 대한 의무와 책임에서 비롯된 작업이라면, 동물원 연작은 사진으로 세상과 ‘맞짱’ 뜨는 작업이다. 그래서 넘어서야 할 산이 만만치 않다.


누구나 손쉽게 동물원 사진을 할 수 있고, 동물원을 소재로 작업한 전문 사진가들도 많다. 이로써  ‘코드화 된 사진의 재생산’을 하지 않고 자신만의 동물원 사진을 완성해야 할 과제가 생긴다. 그래서 동물원을 200번 이상 다녀왔고 현재도 계속 가고 있다. 하지만 단지 횟수만 채운 다고 해서 냉엄한 현실을 극복하긴 어렵다.


외국 사진 사이트 ‘1x’(1x.com)는 회원들이 올린 사진들을 내부적으로 평가한 뒤에 발행 여부를 결정한다. 평가가 좋지 않으면 자신의 계정에서만 사진이 공개되고, 사이트 내에서는 비공개 되는 구조이다. 1x는 동물원 사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 바 있다.


“자연이 아닌 동물원에서 찍은 것으로 보이는 분명한 동물 사진 그러나 특별한 점이 없어 보이는 동물원에서 찍은 사진은, 대단히 좋지 않으면 발행되지 않을 것이다. 술집에서 기대어있는 듯한 슬픈 동물의 사진과 대조적으로 행복한 동물의 사진 발행은, 동물을 감금하는 게 과연 옳은 것인가 그렇지 않은가에 대한 질문을 가중시킬 뿐이다.”

Reticulated Giraffe, 2014, photo by 비두리

동물원 연작에 대한 정면적인 반박이자, 동물원 사진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기도 하다.


어쩌면 1x의 설명처럼, 그간 단지 ‘동물원’을 소재로 “이게 무슨 장면이지?” 하는 호기심, “불쌍한 녀석들, 갇혀있으려니 힘들겠군.” 같은 동정심, “맹수들은 할 일 없이 잠만 자네, 부럽다!” 같은 오해나 편견 또는 단순한 재미만을 전달하고 50년도 더 지난 동물원에 대한 케케묵은 담론만 재생산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동물원 연작을 계속하는가’에 대한 당위성을 설명한다면, 모든 예술이 마찬가지지만 소재는 주제를 만드는 재료이고 도구일 뿐이다. 결국, ‘소재’를 어떻게 가공해 무엇으로 빚어낼지가 핵심인 것이다.


# 늘 면회하는 것처럼 가는 동물원

Fennec Fox, 2012, photo by 비두리

스위스의 사진가 베르너 비숍(1916~1954)은 말했다. “기법의 문제보다도 작가의 내면이 드러나지 않는 사진은 가치가 없다.”


좋은 지적이다. 내면을 드러내기 위해 사진 속에 들어갈 수 있다면 사진 속에 나를 파묻고 싶은 심정이다. 그것은 불가능하기에 나름대로 노력을 기울인다. 동물원에 동물들을 면회하는 마음으로 간다. 여러 번 갔어도 늘 처음 가는 사람처럼 사진을 찍는다. 스치듯 찍는 스냅 촬영도 하지만, 대개 동물 우리 앞에 5분에서 10분 정도 머무른다. 한 곳에서 30분 넘게 촬영하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두세 번은 동물원을 모두 돌아야 촬영이 끝난다. 서울대공원을 세 바퀴 돈 적도 있다.


동물 사진은 동물들에게 “야! 왼쪽으로 움직여!” 같은 지시를 내려 포즈를 취하게 할 수 없다. 그래서 때로는 ‘노력’보다는 ‘운’이 크게 작용하기도 한다. 동물원에 단 한 번 갔어도 ‘운’이 좋다면 작품이 될 만한 사진을 누구나 건질 수 있다. 반대로 운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열 번 가도 소용없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진정한 노력은 운을 깰 수 있다고 믿는다.


#  10년을 맞이한 동물원 연작

Ring-tailed Lemur, 2015, photo by 비두리

세상사에 정답은 없고, 자신만의 답을 찾는 과정이 삶이라고 생각한다. 동물원 연작에 대한 답은 주어져 있지 않다. 그래서 계속 동물원에 가고, 사진을 찍고 내보인다.


진동선 사진평론가에 의하면 “사진작가 배병우는 <소나무 시리즈>를 30년 넘게 찍었고, 김아타는 <뮤지엄 프로젝트>를 20년 넘게 찍었으며, 구본창의 경우 <백자 시리즈>를 10년 넘게 찍었다. 소재 하나에 이런 시간이 필요한 것은 전문 사진가로서 작품의 완성도 때문”이라고 한다.


올해로 10년을 맞이했지만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고도 험난하다. 비록 부딪히고, 깨지고, 상처 입고, 산산조각 날지라도, 계속 가라.


비두리(박창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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