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와 jtbc의 뒤바뀐 운명...
"나를 키운건 팔할이 손석희다." 김주하 앵커가 한 십년전쯤 쓴 자전적 에세이 '안녕하세요, 김주하입니다' 에서 서정주의 시 "자화상"의 한 구절 '나를 키운건 팔할이 바람이다'에서 따온 챕터 제목이다. (개인적으로 서정주의 '자화상'은 서정주의 친일과는 별개로 한국어가 빚어낼 수 있는 최고의 경지를 보여준 시라고 생각한다. 윤동주의 서시와, 고은의 만인보와 신경림의 농무를 다 합쳐놓은, 이들의 원형이자 영감이 된...)
암튼 그때는 김주하도 손석희도 mbc도 거칠것 없는 리즈 시절이었다. '거침없이 하이킥' 정도였던 손석희는 이제 '지붕뚫고 하이킥' 을 넘어 지금은 거의 뭐 invincible 또는 untouchable 의 경지에까지 간거 같지만.
손석희 뉴스룸의 시청률이 9%대를 넘어 두자리수에 육박하는 것을 두고 많은 가십성 기사가 쏟아지고 있다.
가시청 채널 수에 있어 이미 미국과 다를 바 없는 한국에서 일개 종편의 특정 뉴스 프로그램 시청률이 공중파를 제치고 두자리수를 넘보는것은 분명 하나의 '현상'이고, 저널리즘적으론 연구 대상임도 분명하다. 이와 관련된 온갖 가십성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음도 일견 이해할만하다.
그런데 이와 관련된 기사 대부분의 논조와 흐름은 이렇다.
'이번 최순실 사태의 최대 수혜자는 jtbc 손석희 뉴스룸이다, 분노하거나 궁금한 거 많은 수많은 사람들이 뉴스룸으로 몰리고 있다, 연일 역대 최고 시청률을 경신하고 있다. 오늘은 어디까지?' 대부분 이런 내용이다.
잘 쓰려면 잘 봐야한다. 팩트의 나열이 트루쓰는 아니다. 선후관계를 인과관계로 치환하는 것은, 인과관계가 없음에도 원인결과 관계로 쓰는건 모르고 그랬음 무식한 거고 알고도 그랬으면 범죄다. 전전 직장에서 글쓰기를 하며 금과옥조로 삼은 것들이고, 후배들 가르칠 때도 누누이 강조한 것들이다.
오비이락.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 오해받을 일은 애초에 하지 말라는 속담이지만, 논리학에선 인과관계 오류의 전형적인 사례로 쓸 수 있다. 까마귀가 나는 것과 배가 떨어지는 것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작금의 사태, 많은 사람들이 분노해 하고 궁금해 하는 것. 이건 어느날 갑자기 무조건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고 (jtbc 혼자 했다고 할순 없지만 상당부분) 손석희 뉴스룸이 만든 것이다. 즉, 많은 사람들이 분노해 하거나 궁금해하는 작금 현상을 만들어낸 것, 현상의 원인이 된 것이 손석희 뉴스룸인 것이다.
그런데 시청률이 올랐다고 손석희 뉴스룸을 작금 사태 최대 수혜자로 보는 것은, 뉴스룸 보도가 지금 상황을 만들어낸 전제나 원인이 됐다는 시실을 빼먹고, 원인이 빠진 현상만을 전제로 뉴스룸 시청률 제고를 바라본 것으로, 작금 사태 최대 수혜자는 jtbc나 손석희가 아니고 뉴스룸으로 인해 '순실의 진실'에 눈 뜬 대다수 국민들이다, 뉴스룸의 폭발적인 시청률은 그 작은 보답에 불과한 것이다.
즉, 최순실 사태로 뉴스 수요가 많아져 뉴스룸 시청률이 올라간게 아니라, 손석희 뉴스룸으로 뉴스 수요가 많아진 거고 이 수요가, 수요를 창출해낸 뉴스룸으로 자연스럽게 몰려가고 있는 것이다.
하긴 원인과 결과를 혼동하거나 거꾸로 보는 것, 의도적으로 누락하거나 왜곡하는거, 그동안 이른바 공영 방송들이 숱하게 저질러온 행태에 비하면 '작금 사태 최대 수혜자는 jtbc 손석희 뉴스룸' 이라는 연예매체 기사는 그냥 애교로 봐도 될듯하다.
jtbc기자들이 촛불집회 현장에 나타사면 시민들이 격려와 응원의 환호를 보낸다 한다. jtbc 방송 차량이 지나갈수 있도록 없던 길까지 터준다 한다. 반면 촛불집회 현장에 간 mbc기자들은 mbc로고가 붙은 카메라나 마이크를 떼고 방송한다고 한다. 그래도 엠비시 기자임이 '탄로'나면 격한 야유와 조롱, 현장에서 나가라는 항의를 다반사로 듣는다 한다.
나름 사랑하던 mbc였다. 슬프다.
나름 청운의 꿈과 이상을 가지고 입사했을 이들 총총한
젊은 기자들의 시작부터 좌절도 가슴 아프다. 이게 이들만의 잘못일까...
코미디빅리그 핼머니에서 핼머니가 김영희 아부지를 향해 '일제강점기 때 말이야 느그 아부지가...' 하면서 시작하는 그 일제 강점기 때, 인재웅 이라는 이름을 가진 개성 사람이 있었다. 가미가제 자살폭격에 나가 돌아오지 못한.
얼굴에 붉은 홍조를 띄우고
"갔다가 오겠습니다"
웃으며 가더니
새와 같은 비행기가 날아서 가더니
아우야 너는 다시 돌아오진 않는다.
마쓰이 히데오!
그대는 우리의 오장(伍長) 우리의 자랑
그대는 조선 경기도 개성 사람
인씨(印氏)의 둘째 아들 스물한 살 먹은 사내
....
소리 있이 벌이는 고운 꽃처럼
원수 영미의 항공모함을
그대 몸뚱이로 내려쳐서 깨었는가?
깨뜨리며 깨뜨리며 자네도 깨졌는가!
장하도다
우리의 육군 항공 오장 마쓰이 히데오여
너로 하여 향기로운 삼천리의 산천이여
한결 더 짙푸르른 우리의 하늘이여
...
마쓰이 히데오 오장 송가.
서정주가 인재웅이라는 이름의 조선 사람을 그 이름마저 부인하고, '일본혼'을 체화한 반도의 일본인으로
'미화'한 시다. 조선의 청년들에게 너들도 따라 죽으라고 독려하는. '자화상'의 그 모국어가 저처럼 쓰여질 수도 있다니...이또한 슬프다.
'먹고살기위해 그랬다. 그때는 다 그랬다.'
다른 숱한 친일 부역자처럼
자신의 친일에 대한 서정주의 '변명'이다.
'단군 이래 최대의 미소'
80년, 광주를 피로 씻고 권력을 찬탈한 전두환에게
서정주가 모 신문을 통해 바친, 한 인간,
인간이라고도 할 수 없는 어떤 괴물에게 바친
'단군 이래 최대의 찬사' 다.
이때도 먹고살기위해 그랬는가?
서정주와 다를 바 없는 공영방송의 일부 부역자들.
일신의 부귀와 영화를 위해 많은 멀쩡한 젊은 영혼들에게 좌절과 상실감을, 국민들의 눈과 귀를 가리며, 선량한 시민들을 호도하며, 가슴 깊이 허탈함과 분노를 심어준 그 일부의 무리들.
과거 청산은 되돌릴 수 없는 방식으로 이뤄져야한다. 조건과 상황이 바뀌어도 제2의 부역자들이 나오지 못하도록 제도와 법으로 강제되야 한다. 그게 어떤 분야든 말이다.
토요일이다. 강남에 사는, 학교 다닐 때도 데모한번 안나간 여동생이 아홉살 여섯살 조카들을 데리고, 잃어버릴까봐 끈으로 묶고, 광화문에 나간다 한다. '전 국민의 의식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