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네이션' 어떤 외신의 어떤 오보
"맨 앞에는 내가 서 있을 것이고
그 뒤에는 신부들이,
그 뒤에는 수녀들이,
그 뒤에는 신도들이 서 있을 것이다.
당신들은 이들을 다 밟고 지나가야
학생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87년 6월항쟁 당시 명동성동으로 피신한 일부 학생운동 지도부들을 내놓으라고, 그렇지 않으면 강제로 들어가 학생들을 연행하겠다고 전두환 정권이 겁박하자, 이에 성당 정문 출입문 앞에 서서 경찰을 향해 '나부터 밟고 가라'며
김수환 추기경께서 하신 말씀이다.
그리고 전두환 정권의 야만적 속성과 본질을 아는 학생들은, 연행과 구속이 구타와 고문으로 이어지는 일이 다반사였던, 엄혹했던 시절이었음에도, 성당이 군홧발에 짓밟히는 걸 볼 수 없어,자신들이 짓밟히길 각오하고, 스스로 성당을 떠났다.
벌써 30년 가까이 다 된 일이고, 직접 본 것도 아니고, 그저 책으로 전해 본 것 임에도, 그때 그장면 추기경과 학생들을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저릿저릿 뭉클해진다.
결은 조금 다르지만 작년에도 유사한 일이 있었다. 한상균 위원장 등 민주노총 일부 지도부가 조계사로 은신하자,
박근혜 정권은 '세속을 떠난 절이 왜 속세의 일에 관여 하냐'는 식으로, '한 위원장을 내놓으라'고 조계사를
윽박질했다.
이에 조계종은 '화쟁위원회'를 열어, 부처님 말씀에 따라, 화쟁 정신에 따라 한 위원장을 내어줄 수 없다는 뜻을
정했다.
모순과 대립을 조화롭게 한다는 의미에서'화쟁(和諍)은, 원효대사로부터 발원한 한국 불교의 근간이자 뿌리가 되는 사상으로, 화쟁의 정신에 따라 조계종 화쟁위원회가
한 위원장을 내어줄 수 없다는 결정을 내린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결론이었다.
그럼에도 정권은'스님이면 법을 어겨가며 범죄자를 숨겨줘도 되는 것이냐.' 식으로 수행자들의 화쟁 정신을 폄하하고 호도하며 한 위원장을 내놓으라 핏대를 세웠고, 경찰들은 철통같이 조계사를 포위하고 검문검색에
드나드는 차량들 트렁크까지 일일이 다 열어보고, 이에 일부 조계사 신도들이 '절 시끄럽게 만들지 말고 나가라'고
민주노총을 압박하면서 자신들로 인해 청정도량이 분란에 휩싸이자 이에 부담을 느낀 한 위원장 등은 스스로
조계사를 나와 경찰의 수갑을 찼다.
'한국, 독재자의 딸이 노동자를 탄압하다'
이런 일련의 사태와 관련 당시 한 언론기사 제목이다. 민중의소리 같은 한국 진보매체가 아니라, 150년 전통을 자랑하는 미국 정통 시사주간지 '더 네이션'의 서울발
기사의 제목이다.
https://www.thenation.com/article/in-south-korea-a-dictators-daughter-cracks-down-on-labor/?print=1
팀 쇼락 이라는 이름의 이 기자는 당시 집회현장에서 경찰 물대포를 맞고 사경을 헤매던 백남기 농민 사건 등을 언급하며 '한국에서 독재자의 딸이 노동자를 탄압하고 있다'며, '박 장군과 그 딸의 통치술 사이에 점점 더 많은 유사점이 나타나고 있다.'고, 에둘르긴 했지만 박근혜의 소통부재와 일방통행식 밀어부치기 통치를, 박정희의 군사독재에 비유해 비판하고 있다.
일년 전 이 기사를 처음 읽었을 땐 '나름 잘썼네' 생각했지만, 내가 틀렸다. 이 기사는 '잘못쓴' 기사다.
이 기사는 전제가 틀렸다. 없는 사실을 전제로 기사를 썼다.
그 포악무도한 방식에도 불구하고 박정희가 '통치'를 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차지철이나 김형욱이나 일부 호가호위하는 존재들이 있긴 했지만, 이들의 행위는 어디까지나 박정희가 명시적 또는 암묵적으로'용인'하는 범위에만 국한된 것이지, 이 범위를 넘어서면, 정권 2인자였던 중앙정보부장을 지낸 이마저 쥐도새도 모르게 납치돼 '닭! 모이'가 돼 지금까지 시신도 못찾을 정도로, 가차 없었다.
반면 박근혜는 어떤 의미에서든 자율적이고 주체적으로 '통치'를 한 적이 없다. 그저 최순실의 꼭두각시 인형, puppet에 불과했던 것이다.
하여 박근혜 정부는 '박근혜 정부'가 아니라, 일제때 일본이 만주에 세운 꼭두각시 '괴뢰정부' 처럼, 순실의 '괴뢰정부'(괴뢰정부라는 단어 자체가 영어로 puppet government 이다ㅡ.ㅡ), 또는 발 뒤에 앉아 수렴청정하는 최순실이라는 대왕대비에 놀아나는 허수아비 왕에 불과했던 것이다.
"(최순실) 선생님 한테 컨펌은 받았나요?"를 입에
달고 살았던.
하여 박근혜는 그 아비 박정희의 시대를 한참 넘어서,
나치가 프랑스 점령 후 세운 '비시 괴뢰정부 '처럼, 일제의 만주 괴뢰정부처럼, 제국주의 시대의 괴뢰정부로, 또는, 그보다 몇백년을 더 거슬러 수렴청정 시대의 왕조시대로 대한민국을 회귀시켜 놓은 것이다.
그러니 박근혜가 겨우, 박정희 군사 독재로 회귀하고 있다는 것 같다는 팀 쇼락 기자의 기사는 틀렸다고 할 수 밖에.
여담이지만 팀 쇼락 기자의 이 기사가 나간 뒤 대한민국 주미 대사관은 기사가 게재된 더 네이션 편집장에게
공식 항의서한을 보내 '유감'의 뜻을 전하고, 강력하게
항의했다고 한다.
이와 관련 쇼락 기자는 외신번역전문매체 '뉴스프로'와의 인터뷰에서'한국의 어떤 조그만 잡지에서 미국 대통령을 비판하는 기사를 내보냈다고 해서 해당 국가에 주재하는 외교관이 그 매체에 항의서한을 보내는 것이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외교관이 하는 일이 그런 것인가. 그들은 내 기사의 사실 관계에 대해선 단 하나의 질문도 하지 않았다' 고 황당해 했다 .
관련 내용을 처음 듣고선 나도, 힘들게 공부해서 그 어렵다는 외시 통과해서, 그 중에서도 엘리트중의 엘리틀만 간다는 미국 대사관 씩이나 간 사람들이, 국민 세금으로 봉급 받아먹는 외교관들이 아무리 출세가 중해도 할 일도 더럽게 없네 생각했는데, 이또한 내가 오해했다.
지금와 생각하면 박근혜가 통치를 했다고 '전제' 자체를 잘못하고 쓴 기사 아닌가. 주미 대사관이 당시 이런 사정을 알고 항의서한을 보냈는지 모르고 일단 보내고 본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어쨌건, '미안하다. 몰라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