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매우 중요한 하드 파워와 소프트 파워로 자리잡은 BTS
지난달 31일 빌보드는 BTS의 '다이너마이트’(Dynamite)'가 핫 100 최신 순위 1위에 올랐다고 밝혔다. 이번 BTS 앨범은 첫 영어 싱글로 올랐지만, 아시아권 가수가 빌보드 핫 100 순위 1위에 오르는 것은 쉽지 않은 기록이다. 특히 아직도 사회 곳곳에 인종차별이 남아있는 미국에서 이룬 기록이라 더욱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번 기록으로 다시 우리에겐 생각해볼 이슈가 던져졌다. 바로 'BTS 군면제'이다.
BTS 빌보드 싱글 1위에 또 불붙은 ‘병역 특혜’ 요구… 실현 가능성은? <조선비즈, 2020.09.03>
현행법은 주요 대회에서 입상한 운동선수와 고전예술 종사자에 한해서만 병역을 면제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병역법 33조와 병역법 시행령 68조 등에 따르면 올림픽 3위 이상 입상과 아시안게임 1위 입상자는 ‘체육요원’으로, 국제 예술경연대회 2위 이상 입상자와 국내 예술경연대회 1위 입상자, 중요무형문화재 전수교육 이수자 등은 ‘예술요원’으로 편입돼 병역 의무가 사실상 면제된다.
이번 글에서는 국제정치학에서 말하는 '하드 파워(Hard Power)'와 '소프트 파워(Soft Power)', 관점에서 BTS의 군면제에 대해 글을 써보려고 한다.
*기우일 수 있지만, 예민한 이슈이기 때문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미리 밝히자면 나도 성실히 국방의 의무를 마친 예비역이다.
먼저 국제정치학에서 말하는 '하드 파워'와 '소프트 파워'를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하드 파워: 군사력, 경제력, 외교력 등
소프트 파워: 언어, 문화, 이념, 교육 등
흔히 중국이 미국을 이기지 못하는 이유를 소프트 파워가 약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한 국가의 소프트 파워가 강한지 아닌지 판단하는 방법은 굉장히 단순한 질문과 답변으로 결정된다. 스스로 답변해보길 바란다.
1. 미국 대학교와 중국 대학교 중에서 어디로 유학을 가실 건가요?
2. 할리우드 영화와 중국 영화 중에서 어떤 것을 관람하실 건가요?
3. 미국 기업과 중국 기업 중에서 어디서 일하고 싶으신가요?
3. 영어와 중국어 중에서 어떤 언어를 잘하고 싶나요?
하버드대학교 케네디스쿨의 조지프 나이 교수는 국제정치학에서 냉전 시대까지는 국가의 하드 파워가 중요했지만, 냉전 이후에는 하드 파워와 함께 소프트 파워를 가진 나라가 국제 정치를 지배한다고 보고 있다. 특히 2016년 이후 전 세계에 퍼진 보호무역주의와 2020년 전 세계의 삶의 방식을 바꿔버린 코로나 시대에 살고 있는 지금 소프트 파워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나는 BTS가 우리나라에 굉장히 중요한 하드 파워와 소프트 파워로 자리 잡았다고 생각한다. 또한, BTS가 우리나라의 약해지고 있는 하드 파워와 소프트 파워도 키울 수 있다고 본다. 흔히 'BTS 군면제' 이슈가 나오면 항상 '월드컵 16강 이상', '올림픽 동메달 이상', '아시안 게임 금메달' 그리고 '국제 콩쿠르 우승' 등을 비교 대상으로 삼는다. 나도 마찬가지로 해당 내용으로 비교할 것이다. 다만, 하드 파워와 소프트 파워 관점에서 설명할 것이다. 그리고 위의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선수들을 깎아내리거나 비난하고자 하는 내용도 아님을 미리 밝힌다.
2002년 월드컵 당시 우리나라는 4강이라는 역사적 기록을 세웠다. 온 국민이 환호했고, 선수들의 군면제는 사회적으로 당연시 받아들여졌다. 2012년 런던 올림픽 당시 축구대표팀도 3위로 동메달을 목에 걸었고 군면제도 함께 받았다. 그리고 2년 전 아시안게임에서 1위 한 축구대표팀도 군면제 혜택을 받았다. 그러나 이에 관해 묻고 싶다.
스포츠 대회에서 좋은 성적은 우리나라에 무엇을 남겼습니까?
이 질문에 거의 다음과 같이 답할 것이다.
"우리나라 선수들이 해외로 많이 진출했습니다."
"우리나라가 특정 종목에서 강국이라는 걸 전 세계에 알렸습니다."
그렇다면 위의 답변에 다시 묻고 싶다.
그 영향은 지금도 우리나라에 영향을 주고 있습니까?
우리나라가 월드컵 4강과 16강에 올라서 국내 K리그가 세계적인 리그로 잡았다면 내 생각은 달랐을 것이다. 2019년 6월 기준으로 영국 프리미어리그는 약 7조 2,074억 원의 수입을 벌어들였다. 유럽 5대 리그로 확대할 경우 2017년~2018년에 약 20조 7,215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반면에 K리그는 2018년 263억 6,800만 원으로 프랑스 축구 리그의 85분의 1 규모로 나타났다.
<출처: 영국 프리미어리그 '7조 2천억 원',,,유럽 5대 축구리그 중 '수입 1위'>
이에 대해 100년 넘는 역사를 가진 EPL과 우리나라 K리그를 비교하는 게 적합하지 않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언제까지 짧은 역사를 핑계로 삼을 것인지 묻고 싶다.
현재 예술/체육요원 편입 인정대회는 48개이다. 그러나 2010년까지 142개였다. 해당 대회 목록은 다음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www.mma.go.kr/contents.do?mc=mma0000759
나는 워낙 예술 쪽으로는 무지해서 해당 대회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그리고 입상하기 얼마나 어려운지 모른다. 하지만 해당 대회가 얼마나 소프트 파워를 가졌는지는 의문이다. 해당 대회에서 입상하면 우리나라에서 세계적인 콩쿠르 대회가 주기적으로 열리게 되며 매번 많은 외국인이 우리나라에 방문하는가? 방문한다면 그 규모는 얼마나 되는가? 심지어 군면제 혜택이 주어지는 콩쿠르에만 집중적으로 참여하는 악영향도 벌어지고 있다.
https://news.joins.com/article/22970402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위의 대회 수상자들을 비난하는 것이 절대 아니며, 소프트 파워 관점에서 냉정하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BTS는 위의 사례들과 차별되는 어떤 하드 파워와 소프트 파워를 가졌는지 알아보자.
2019년 BTS는 미국 3개 도시(로스앤젤레스·시카고·뉴저지 총 6회)와 브라질 상파울루(2회), 영국 런던(2회), 프랑스 파리(2회), 일본 2개 도시(오사카·시즈오카 총 4회),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1회), 서울(3회)까지 7개국 10개 도시에서 총 20회 공연을 했다. 해당 공연들에서 벌어들인 티켓 매출만 약 1,360억 원이다. 단순 계산으로 위에서 언급한 K리그의 263억 6,800만 원의 약 5배 규모이다. 만약 콘서트 외의 매출, 팝업스토어 매출, 공연장서 판매한 MD(팬상품) 매출, 공연 온라인 생중계 수익 등 합치면 약 2,000억원에 이른다.
<참고: BTS, 6개월 투어 대미…총 100만 관객·매출 2천억원 전망>
또한, 2019년 10월 서울에서 열린 콘서트만 보면 경제 효과가 약 1조 원에 육박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3년 평균 매출이 1천500억 원 이상이면 '중견기업'으로 분류되는 국내 기준상 방탄소년단이 3일간 콘서트로 창출하는 경제효과는 중견기업 6개의 연 매출을 합한 규모다.
BTS의 세계적 인기가 더욱 대단한 이유는 '한국어'로 부르는 노래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당연하지만,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타국어, 특히 아시아 언어로 부르는 노래가 음원 순위 1위와 앨범 판매량 1위라는 기록을 세우기는 쉽지 않다. 아니,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리고 그들이 부른 한국어 노래 덕분에 미국 대학교에서 한국어 수업 수강률이 급격하게 상승하고 있으며 미국 유명 대학교인 UC 버클리 대학교에서는 BTS를 다루는 수업을 개강하여 큰 인기를 얻기도 했다. 우리나라 정부나 민간 차원에서도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나라와 한국어를 홍보하고 있다. 그런데도 BTS가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관련 기사>
https://www.vice.com/en_in/article/bjwkkz/more-american-university-students-us-learning-korean-k-pop
https://nextshark.com/uc-berkeley-bts-class/
https://news.joins.com/article/23032849
BTS 팬클럽 '아미(ARMY)'는 BTS 음악으로 한국어만 배우는 것이 아니다. 배운 한국어로 우리나라 문화와 역사를 배우고 이해하고 있다. 이 부분이 개인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사항이라고 본다. 특히 우리는 일제강점기 때 일제가 강제로 일본식 성명을 강요하고, 일본어 교육을 하여 일본 제국주의 이념과 역사를 주입한 경험이 있으므로 이 점에 주목해야 한다. 언어는 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도구이며, 더 나아가서는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수단이다.
'광주 민주화 운동' 등 다른 나라에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역사적 이슈를 정부나 국회가 아닌 아미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하고 있다. 특히 상대적으로 역사에 관심이 적은 젊은 층들 사이에서 이런 행동이 일어나고 있는 점은 고무적이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94204.html
이쯤에서 다시 한 번 묻고 싶다.
이럼에도 BTS의 하드 파워와 소프트 파워가 부족한가?
BTS 군면제 이슈는 BTS에서 끝나지 않는다. 현재 우리나라는 역사상 가장 힘든 시기를 겪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보호무역주의가 대세로 자리 잡아 수출 중심국인 우리에게 큰 시련과 과제를 던져주고 있고, 대내적으로는 코로나와 출산율 감소로 인해 갈수록 경제가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의 하드 파워와 소프트 파워가 조금씩 약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제조업과 수출로 하드 파워를 키웠으나, BTS로 인해 이런 불균형한 경제 구조에서 조금은 변할 기회를 얻었다고 본다. 심지어 이번 기회는 소프트 파워까지 함께 강화할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지금까지 견지해온 자세를 바꿀 필요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에겐 제2, 제3의 BTS가 필요하다. 군면제 정책을 근본적으로 고민할 이유.
이번 BTS 군면제 이슈로 다양한 뉴스와 자료를 접하면서 '넥스트 BTS가 필요하다.'는 점을 크게 느꼈다. BTS 그룹 하나가 서울 콘서트로 중견기업 6개의 매출을 합한 수치를 기록했다면, BTS 같은 그룹이 2개, 3개, 4개로 늘어나면 이는 어마어마한 수치가 될 것이다. 또한, 이들이 우리나라에 가져다줄 소프트 파워는 수치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닐 것이다. 그렇다면 과거에 만들어져 모호한 기준을 가진 군면제 정책을 전면적이고 근본적으로 고민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