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리처드 니스벳 <생각의 지도>
저번 학기에 지식사회학 과목을 수강하며 교수님께서 “왜 한국 지식사회학은 성장하지 못하는가”에 대해 말씀하셨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당시 교수님은 우리나라 (지식)사회학 교수들은 단지 이론 자체로서 의미가 있는 ‘이론.지식적 유희’에 집중하지 못하고, 사회학을 꼭 ‘써먹어야’ 한다는 사고에 갇혀 있기 때문에 세계적인 사회학적 이론을 만들어내지 못한다고 말씀하셨다. 교수님의 주장에 따르면 항상 뭔가를 배우면 써먹어야 한다는 생각에 매몰돼 있다면, 결국 순수학문이 성장하지 못해 결과적으로 세계적 성장 가능성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결론적인 해석이 그러하고, 이러한 결론이 도출되게 된 학문적인 과정, 그리고 교수님의 ‘한국 사회학계’에 대한 과학사회학적 분석 과정을 보면 정말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근거에 따른 결론이었다.
결국 당시 해당 과목을 수강하면서 (적어도 학문 학문 장에서)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이상적’이고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사고란, 써먹으려 드는 것이 아닌 순수 학문에 대한 몰입이라는 결론을 얻게 됐다. 그러나 그럼에도 당시 과목에서는 우리나라의 실용주의적 성향의 원인에 대해 다루지 않았기에 조금은 모호하고, 무기력한 대안으로서 ‘비판을 하고 지적 유희를 즐겨야 한다’는 생각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번 <생각의 지도>책을 읽으며 순수학문에 대한 우리나라의 태도의 근원에 대한 힌트를 조금이나마 얻게 됐다. 어쩌면 ‘써먹으려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태도는 동양 자체의 특성에서부터 비롯된 것은 아닐까. 서양과 동양의 지리적 차이, 그리고 문화적 차이에서부터 실용성을 따지고 이론 자체가 아닌 주변에 적용하려는 성향이 만들어졌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의 말미에서 과학의 성장 측면에서 서양이 동양에 비해 극명하게 발전한 이유로 동양인의 비판을 꺼리는 특징을 지적한 것처럼, 동양적 태도가 결국 학문에서의 우위를 가르는 요소로 충분히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결론도 가능했다.
이 책에 따르면 사람들의 개인적(그러나 집단적으로 발현되는) ‘태도’ 자체가 결국 한 국가가 특정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도록 하는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물론 이 책의 저자도 결론적으로 서양적 사고가 동양적 사고보다 우월하다는 등의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책에서 다양한 부분으로 나눠 동서양의 사고의 차이를 설명한 것과 같이 동서양의 사고방식의 차이가 분명하기에, 특정 분야에 결과적으로 적합한 사고를 사용하는 한 측이 우위를 차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다양한 분야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국가들을 생각해 봤을 때 서양 국가들이 동양 국가들에 비해 객관적으로 더 많은 분야에서 우위에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만약 그렇다면, 현대 사회에서는 서양적 사고가 더 유리한 경우가 많고, 결론적으로 서양적 사고를 따라가는 것이 전략적인 선택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만약 이러한 결론을 내리려 한다면, 나는 서구중심적 사고에 매몰돼 있는 것일까?
뿐만 아니라 저자는 책에서 동양 사회는 서양에 비해 논쟁이 없거나 미미하다고도 언급하는데,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동양은 논쟁을 중시하지 않는다기보다, 논쟁을 하기 위한 합의가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논쟁을 하기 위한 합의라고 하는 것은, 지금부터의 논의가 개인적 비난이 아닌 ‘논쟁’이라는 데에 참여자들이 동의한 상황이다. 개인이 사회에서 가지는 관계가 서양보다 중시되는 동양인의 입장에서 비판이 전제가 된 ‘논쟁’이 수시로 이뤄지기는 쉽지 않다. 합의가 제대로 되지 않은 상황에서 누군가는 감정적으로 반응할 수도 있고, 개인적인 비난으로 받아들일지도 모른다. 따라서 결과적으로는 논쟁이 미미해보일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실제로 학문장에서의 사례를 보더라도, 서양에서는 서로 학자들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학문적 내용을 비판하는 글을 내는 경우가 많지만 한국에서는 실명 비판이 그에 비해 매우 적은 편이다. 적어도 정치와 관련한 등의 특정 분야에서는 실명 비판과 논쟁을 제시하는 일이 ‘합의’된 상황이기에 논쟁이 서양에 비해서도 충분한 상황인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상황에서는 같은 장에 머무르는 사람들 간의 ‘관계’를 중시하다보니 논쟁이 가능함에 대한 합의 자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은 문화적으로 분명히 가능한 결론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는 ‘동양이 서구화될 것인가’또는 ‘계속 차이는 지속될 것인가’하는 것에 관한 논의가 등장한다. 동양이 서구화된다는 측에서는 과거 동양 어린이들의 희망사항은 ‘다른 친구들과 잘 지내는 것’이었다면 오늘날 동양 어린이들은 ‘독립적으로 생활하는 것’을 꼽는다는 것을 근거로 든다. 그러나 해당 근거 해석하는 과정에서, 그것을 동양 어린이들의 ‘서구화’로 보는 것이 아닌, 사회에서 요구하는 개인의 능력이 ‘변화’하고 있음에 초점을 둔다면 서양 중심적 이라는 해석이 아닌 전반적인 사람들의 인식이 변화하고 있다고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 원인은, 서양적 사고가 더 우월하기 때문이 아니라 동양적 사고가 비롯되었던 농경사회 등의 동양적 특징이 현대 사회에서는 더 이상 동양의 특징이 아니게 되었으며, ‘결론적’으로 정보화 사회의 등장 등의 특성에 독립적인 능력이 필요해지고 있기 때문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이 책에서는 동서양의 차이를 과거에서 찾고, 그 특성이 현대 동서양인에게까지 발현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동서양의 차이를 유발했던 과거의 차이가 현대에까지 이어지지 않기에, 현대의 동서양인의 특징을 다루는 데에 있어 더 이상 동양인에게서 ‘서구적 사고’가 보인다는 등의 동서양적 이분법적 해석은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