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의 최후방어선

by 이성진

세상만사는 분명 스펀지보다는 풍선 쪽을 닮았다. 메꾸고 싶은 부분이 있어 손가락으로 꾹 눌러보면 기대치 않던 부분이 튀어나와 계획의 허를 찌르는데, 그런 일이 일어날 줄 몰랐다고 항변해봐도 풍선의 탄력이 없던 게 되는 건 아니다. 한쪽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다뤄보면 두세 쪽에서 역효과가 나는 복잡계의 작용은 행위자의 의도가 선한지 악한지와는 무관하게 그저, 일어나는 일이고, 일어난 일이다.


스물아홉, 잔치는 끝났다. 물류센터에서 출고 알바 하루 뛰었다고 관절 마디마디가 비명을 질렀다.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말은, 스물한 살쯤부터 영양가 없는 고봉밥처럼 슬금슬금 쌓아두었는데 이제야 혈당 스파이크를 맞은 기분이었다. 석사 논문 2차 심사가 끝나고 이틀을 예정했던 육체노동은 삐거덕거리는 팔을 핑계 삼아 미래에 맡겨두었다. 당장 굶지는 않겠으나 생활비가 바닥을 보이면 줄여야 할 커피와 햇살 역시 미래의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별명으로 연체동물 소리를 들을 만큼 관절이 유연한 게 이유가 될지는 모르겠다만, 나의 가치관은 유연한 고용시장을 지지하는 편이었다. 해고를 어렵게 만들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에 차별을 두지 말아야 한다는 이들의 낭만적일 정도로 따뜻한 심정엔 박수를 보내고 싶지만, 지상에 낙원을 지으려는 위인들의 패착은 멀리 눈을 두지 않고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인간 냄새가 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제 나름의 편향을 가질 수밖에 없다. 보고 듣는 것이 세계를 설명하는 구조를 형성하면, 그렇게 만들어진 세계가 다시 선별해서 보여주고 들려주며 방향성을 강화하기 때문이다. 안정적인 고용이 선순환되어 새로운 기회를 창출해내는 되먹임보다, 안락한 성채에 들어간 뒤 새로운 구성원의 입성을 막는 악순환의 고리를 더 자주 접하고 살았으니 적어도 나의 세계는, 고용시장의 방출과 유입의 속도가 다소간 리듬이 빠른 방식으로 진행되는 게 바람직한 세계였다. 물류센터와 호텔에서 쓰는 초단기 계약서가 익숙한 건 그래서일지도 몰랐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는 물음이 언제까지나 철학적이고 실존적인 물음으로 남아있었으면 했다. 흙을 퍼먹어도 빛나는 20대는 고이 접어 바람에 나빌레라. 한 사람의 몫을 해가며 생활을 영위하지 않으면 품위를 챙기지 못하는 나이엔,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는 물음은 어느덧 생존의 처절한 비명이 됐다. 노동은 신성하다는 뽕에 취해 갓 스물 먹을 때부터 공장, 공사판, 상하차, 카페, 예식장 이리저리 맛을 봐 왔지만 내게 남은 건 도무지 일머리 없다는 딱지, 아울러 노동은 사실 신성한 게 아니라 지랄맞을 뿐이지만 그런 뽕이라도 있어야 하루는 더 살아간다는 눈물겨운 깨달음이었다. 고루한 일상의 체념이 묻은 물음은 어느새 어감의 질감과 묵직함이 사뭇 달라지고 말았다.


그렇다면 누구와, 어느 것과 더불어 살아야 할까.

물음의 문맥이 달라지니 이전과는 다른 대역폭의 질문이 나오기 시작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는 물음은 밖의 변수들을 내면의 힘으로 어떻게 극복해내느냐의 문제였기에 나는 그 해답을 안에서부터 끌어내 찾곤 했다. 외부의 환경과는 물과 기름처럼 분리되어 존재하는 내가 주위 대상을 감각과 이성으로 손 뻗듯이 인지한다는 밑바탕에서였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 했던가. 새 질문에는 안팎을 나누는 문지방을 두지 않기로 했다. 나는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 이 뻔하고 익숙한 문장에 숨은 의미를, 내가 발붙이고 숨 쉬는 이 땅에서 뿌리를 내린 이상 나를 둘러싼 것들은 곧 나를 이룬다는 걸 늦게서야 인정하게 됐다. 나의 세계와 나는 상호작용하는 관계 위에서만 서로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언제부턴가 마음 깊이 받아들이게 됐다. 나의 세계를 돌보는 게 결국 나를 돌보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느끼는 단계에 와서야, 내 맘대로 살면서 몸부림치더라도 다른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유익한 방향으로 머리를 두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제 입으로 말하긴 쑥스럽지만, 지인 중에 나의 팬을 자처하는 이들이 더러 있었다.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이 부럽다나. 어린 시절 전설 속 영웅의 칼은 내려두고 키보드 위를 뛰어다니며 파워포인트 레인저가 되어버린 이들에게 들려줄 낭만의 이야기가 내 주머니에 있음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아마 나이 먹으면 얼마간 자신을 내려놓고 세태의 파도에 흔들리듯 몸을 맡겨야 할 테지만, 그 와중에 서핑보드 하나 챙겨서 파도 타고 있을 놈이라는 소리엔 나도 손뼉을 아니 칠 수가 없었다.


이들 앞에 면을 세우려면 살면서 나쁜 짓은 조금씩만 하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제복 입은 군인은 술자리에도 맘 편히 갈 수 없는 것처럼, 훈장은 어떤 면에선 족쇄가 되기도 하니까. 그렇지만 모범적인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은 니체를 읽으면서부터 꽤 내려놓았다. 타인에게 목적지의 모습이 된다는 건 멋쩍은 일이다.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피곤할뿐더러 좋음과 선의 기준이 자반고등어 뒤집히듯 바뀌는 세상에서 최선의 모습을 꾸준히 입고 산다는 건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다.


최후방어선 정도면 어떨까. ‘저렇게 살아야지’가 아니라 ‘저렇게도 살아는 지는구나’라는 느낌을 주었다면 작전 성공이다. 낭만을 외치며 방정맞게 기행을 일삼는 나를 봐서라도 점잖은 친구들이 하루를 더 세상에 발을 붙여주기를 소망한다. 어떤 이유로든 그대의 삶을 긍정하며, Amor Fati.


언젠가 이런 생활을 내려놓아야 할 때가 분명 올 테다. 그땐 지나고 보니 다 부질없는 짓이었다는 회고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일단 가볼 수 있을 때까지는 가볼 생각이다. 우스꽝스러운 이야기 말고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 섬으로의 항해를. 잔치가 끝나는 지점에서 일상은 시작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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