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지 않는 나무의 기쁨으로

by 이성진

커피 원두를 그라인더로 직접 갈아보면 덜덜거리며 돌아가는 맷돌을 제어하는 맛이 있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한 잔의 아메리카노로 인해 사서 고생을 하는가 싶지만 누구나 가끔은 쓸모없는 것에 시간을 넉넉히 쏟아붓고 싶은 아침이, 그런 다정한 사치가 필요한 아침이 있다.


수동 에스프레소 머신을 들이고 커피 한 잔 내려 먹는 데 드는 품이 네 배는 늘었다. 주전자에 물을 따로 끓이고, 기계에 부어 예열한 뒤, 곱게 간 원두를 채우고 탬핑. 순전히 팔 힘만으로 5기압쯤 만들어 내리는 수동 에스프레소 샷의 풍미에 홀리지만 않았다면 아침의 노고가 순례자의 고행이 될 일도 없었다.


창틈으로 꽂히는 햇살을 피해 화분의 그림자가 몸을 숨기면 고요했던 위장이 하나둘 기지개를 켠다. 열여섯 시간 공복을 칼같이 지키진 못해도 해가 지면 소화 스위치를 켜는 게 낯선 사람이 되었다. 관성의 추를 어느 정도 옮기는 데 성공한 셈이다. ‘답답한 히어로보단 카리스마 있는 빌런이 끌리는 법이다.’ 첫 페이지부터 단박에 절반을 읽은 책, 「빌런의 공식」 사이에 책갈피를 끼워놓으면 소소한 오전 일과는 마무리.


자취를 한번 해보면,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간다는 사실보다 누가 해주는 밥을 꼬박꼬박 받아먹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몸소 느끼게 된다. 재료 사서 직접 만들어 먹는 생활의 슬기를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1인분의 양이라는 건 500원 동전 크기만큼 파스타면을 감싸는 일에서부터가 신경 쓸 것투성이다. 지난번에 해 먹고 남은 반찬, 지지난번에 우당탕하고 남은 요리가 냉장고 안쪽부터 깨지 못한 테트리스처럼 쌓여가면 생활력 없는 자취생은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 하는 소리나 메아리치며 배달 앱에 들어갈 뿐.


작용에는 반작용이 따르는 법이다. 한쪽이 먹기 위해선 다른 쪽은 만들어야 한다는 단순명쾌한 진리를 깨우치는 데 멀리도 돌아왔다.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를 본가 생활에는 챙겨주는 이의 자리에서 일 인분을 하기로 했다. 대학원 끝 학기는 어떻게든 논문만 잘 쓰면 졸업을 맞이하기에, 교수님과 본가에서 글을 쓰며 이따금 면담하는 것으로 담판을 지었다. 부산의 바닷바람을 맞아가며, 논문을 쓰고, 당근을 썰고, 고기를 볶고, 설거지는 자청해서 두 배 몫으로 했다. 어느 때부턴가 우리 집보단 ‘우리 부모님 집’이란 말이 입에 익은 본가에서, 나는 그렇게 서열 최하위 막내아들의 자리를 다시 꿰차게 되었다.


위로 세 명이나 있는 집의 막내라 어릴 때부터 잡다한 집안 소일거리는 자연스레 내 몫이었다. 너 태어나기 전에는 그걸 내가 다했다는 내리사랑의 정당화는 치사하게 내 차례에서 끝났지만 그다지 억울할 것은 없었다. 다들 좋은 사람 만나 가정을 꾸려 조카님들이 무려 네 명이나 되는 일이며, 남매끼리 재산분쟁 할 유산 같은 것도 없어 지금보다 나빠질 것도 없는 웃지 못할 애틋함은 누가 뭐래도 축복이니 말이다.


아기 조카가 할머니 집에 이따금 맡겨지면 방구석에서 스멀스멀 기어 나와 재롱을 떨어주는 백수 삼촌 역할도 몸에 익었다. 땅거미가 내릴 때 산책 겸 운동 겸 나가는 시간 외엔 노트북과 씨름하는 게 하루의 전부이니 옹알이 겨우 하는 아기가 일상 한 켠을 채우는 틈은 실로 숨통을 틔우는 행운이었다. 이제 중학교 들어가는 큰 누나의 아들부터 돌을 갓 넘긴 셋째 형의 아들까지, 도합 네 명의 아이를 한 단계씩 공략해나가는 동안 ‘괴물 삼촌’의 연출 경력도 한껏 노련해졌다. 에버랜드에서 시크릿쥬쥬비행기 돌리는 일이 내 옷처럼 맞았던 건 아무래도 조카들 덕이 컸다.


아들딸 넷 중 셋이 자리 잡았으니 하나쯤은 백수 한량도 나쁘지 않겠냐며, 어느새 할머니가 된 엄마에게 능청을 떨면 어이없어하며 피식거리지만, 내심 옆에서 나물도 다듬고 양념장도 만드는 아들이 밉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자식 넷 있어도 이렇게 집안일 도움받으면서 해보기는 처음이라시는데, 글쎄 그 시절 당신의 악동들이 제 나름 할 말이야 있겠지만, 챙기는 이의 세계는 챙김 받는 이가 감히 헤아릴 수 없는 무언가이기 때문이 아닐까.


손 틈새로 하루를 흘려보내는 삶의 불안함에 대해 곱씹게 되는 게 비단 이십 대 끝자락에 걸친 고민만은 아닐 것이다. 계획했던 일들이 무너지고 덩그러니 던져지는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는 일은 솔직함이 밧줄이 되어 숨통을 죄어온다. 한 동산에서 함께 자라던 나무들이 제 쓰임에 맞게 자리를 찾아가며 하나둘 일어서고 나면, 무한한 가능성의 저주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무들만이 베이지 않은 채로 대지를 방랑한다.


밋밋한 일상을 나는 아낌없이 이뻐해 주었는가. 무겁지 않으면서도 몽글몽글하고, 무용한 것 같으면서도 따뜻함을 주는 순간들을 오롯이 느끼지 못할 때가 많았음을 지금에서야 고백한다. 거대한 인생의 목표와 드넓은 꿈들 사이 틈새에서 잘 보이지 않는 보석들을 한 아름 담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여느 사람들처럼 내 감각은 그리 날카롭진 못했다. 교직에 몸담아 참스승이 되고 싶었던 날에도, 공직에 올라 나라를 이롭게 하고 싶었던 날에도, 학계에 뛰어들어 진리를 밝히고 싶었던 날에도, 현재라는 밭을 갈아 나중에 수확할 생각만 했지 고랑 사이에 있는 행복을 발견할 지혜는 없었다.


뜻대로 잘만 풀리는 인생만이 있으랴. 장자는 너무 구불구불해서 인간에게 쓸모가 없던 나무가 결국은 베이지 않아 제 생긴 대로 천수를 누렸음을 높이 샀다. 기념비적인 일 하나 해내진 못했지만, 베이지 않는 나무의 기쁨으로 오늘의 커피를 내리고 조카를 돌보며 엄마의 요리를 거두었으니 밭 사이 고랑 행복으로 벌써 본전은 뽑은 셈이다.


남은 날은 그저 덤이다. 맘 편히 즐기기만 하면 되는, 선물 같이 주어진 덤. 가져가라고 덤으로 얹어준 나물 한 줌에 아쉬운 소리를 하는 손님은 좀 없어보인다.

이전 08화펜싱마스크 격자만큼의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