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런스 게임이란 게 한창 유행일 때가 있었다. 규칙은 간단하다. 당신을 의자에 앉혀놓고 앞에 있는 버튼 두 개 중 어느 쪽을 누르겠냐는 선택지를 제시하는 게 끝이다. 양쪽의 보상과 페널티 조건을 적절한 균형으로 맞추어 참가자를 깊은 고뇌에 빠지게 하는 게 이 게임의 묘미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그냥 100억 받기 vs 재입대하고 200억 받기
상상의 나래를 잠깐 펼치는 것만으로도 골머리를 싸맬 쟁쟁한 주제 가운데서 이것이 화제가 된 건 정확히 50 대 50으로 갈린 결과가 눈길을 끌었기 때문이다. 둘 중 어느 쪽도 실현 가능성이야 뒷전이겠지만, 국방의 의무로 군대에 비자발적으로 끌려간 적 있는 대한민국 남성에게 재입대라는 단어가 주는 거부감은 100억을 저울질할 수 있는 값어치였음이 새삼 다가왔다.
위병소 근무로 3교대 하면서 밤에 잠도 못 자고 수명을 갉아먹던 공군 병사 시절엔 전역하면 이쪽으론 오줌도 안 눌 거라고 했다. 무엇보다 분하고 억울한 마음이 컸다. 나의 죄목은 무엇이기에 교도소의 죄수보다도 못한 밥 먹으면서 자유도 없는 곳에서 거지 같은 처우를 감내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었다(당시 병장 월급은 22만 원 언저리였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적어도 여기는 아니라는 생각, 누가 주워주지도 않는 시간을 길바닥에 버리는 느낌이었다. 그러니 “바다가 나를 불러서” 해군에 통역장교로 다시 들어가게 됐다는 말을 주변에 꺼내기 위해선, 100억을 안 받고도 재입대를 하겠다는 미친 선언을 위해서는 낭만을 조금 덜어내고 맥락의 선을 이어줘야 했다.
세월밥 얼마 먹지도 않은 놈이 10년 만에 보는 친구, 5년 만에 보는 친구, 1년 만에 보는 친구들이 물어오는 근황이 각기 달랐다. 그건 아마, 교사가 꿈이라 했으면서도 붙어놓은 교대를 가지 않고, 행정학을 전공했으면서도 공무원 시험을 치지 않고,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다가도 에버랜드에 입사했던 이가 밟은 기이한 행적 탓이었다. 뜸하게 만나는 친구는 자유로운 영혼이라 치켜세워줬고 조금 덜 뜸하게 만나는 친구는 파고드는 맛이 없다며 아까워했다. 응원해주는 이도, 걱정해주는 이도 모쪼록 저 잘되길 바라는 마음임을 알지만, 의도가 뭐가 됐든 문제 될 일은 없었다. 내 뿌리 위에 부어진 말들을 양분 삼아 잘 자라면 그만이었다.
대학원을 체대로 갔냐고 의심받을 만큼 펜싱, 클라이밍, 양궁이 시간표에서 차지하는 칸이 많았다. 때늦은 체육 본능은 전공명을 가리며 틈틈이 솟아났지만 석사 학위로 받은 건 조경(Landscape Architecture)이라는 학문이었다. 나무 심고 땅 파는 그거 아니냐고 묻는 이들에겐 그 정도 관심이면 퍽 다행이라고 엄지 척 세워줬지만, 개인적으론 조경을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다루는 학문이라 여겨왔다. 우리를 둘러싼 자연과 세계를 이루는 풀, 나무와 흙의 특성을 이해하고 땅의 기억을 읽어 삶의 공간에 구현시키는 일, 조경을 정의하는 내 마음은 그랬다. 졸업할 때쯤 되어서야 조경계에서 이 한 몸 중추적인 역할을 하기는 쉽지 않겠구나 하는 결론이 섰지만, 세계를 받아들이는 방식은 나름 잘 배울 수 있었으니 소득이 아닐 수 없었다. 일상을 살아가는 공간에 내 삶을 튀김옷처럼 입히고 그 장소들이 다시 나를 오븐 속 빵처럼 구워내는 맞물림의 연속, 이로써 내겐 지금까지와는 다른 시선으로 세계를 빚어낼 수 있겠구나 하는 희망이 생겼다.
돌이켜보면, 삶의 토대가 무너지는 느낌을 처음 세게 받은 게 바로 그 공군 병사로 군생활 하던 즈음이다. 교도소의 죄수보다도 못한 대접을 죄도 지어본 적 없는 내가 감내해야 하는 게 국가 구성원의 의무라면, 그딴 국가는 도대체 존재할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회의감이 당시엔 컸다. 존재할 이유가 없는 존재를 지킨다는 게 묘한 배신감마저 느껴졌다. 뒤통수를 한 번 세게 맞은 뒤로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 틈새로 질문을 던지며, 납득할 만한 답변을 주지 않는 세계의 부분을 하나씩 해체해 나갔다. 스물셋 언저리에 시작한 ‘챕터 2’의 삶은 그렇게 체제의 열렬한 수호자로 살았던 시절의 반발 때문인지, 규칙과 관례, 동맥경화가 온 듯한 관습들에 치열하게 부딪히고 딴지를 걸어가며 보냈다. 여간 피곤한 형태의 삶이 아닐 수 없었지만, 한편으로는 파도가 쓸어간 모래성 터 위에 새집을 건설할 몸풀기이자 준비 체조가 아니었을까.
서른 언저리, 부르지도 않은 시간이 선뜻 다가온 챕터 3의 주제는 연결과 창조로 이름했다. 내가 발 딛고 사는 이 세계를 아껴주는 게, 나와 관계 맺고 있는 것들을 지키는 게 결국은 나를 보살피는 것임을 알기에 짧게나마 지키는 자리에 서보고자 마음이 섰다. 강제로 끌려와서 황금 같은 청춘을 국가에 강탈당한다는 상념으로 보냈던 과거를 이제는 다시 쓸 수 있다고 믿는다. 명예, 헌신, 용기처럼 어쩌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또한 모든 것이기도 한 품격의 언어들을 붓펜 삼아 군생활을 덧쓰는 이야기엔 어떤 문장들을 담아낼 수 있을까. 배도 타보고 파병도 가보면서 사나이 낭만을 3년쯤 즐기다 오고 나면 내 삶은 시나브로 나다워질까.
누가 그러길 낭만은,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고향을 제 것처럼 그리워하는 거라고 했다.
내일에 기대지 않아도 빛나는 오늘, 낭만으로 살다 바람처럼 가는 이들의 행렬은 어째 마르지 않는 샘처럼 짙어만 가는 것이 나로서는 고마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