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 연습은 아직 경험이 없지? 나도 처음에는 긴장돼서 벌벌 떨었단 말이지.”
함께 조직을 만들어 무언가를 한다는 뜻으로, 연합(Combined)과 합동(Joint)이라는 낱말은 일상에서 섞어 쓰곤 하지만 군대에서 쓰일 때는 그 의미가 엄연히 구분된다. 외국군과 함께 수행하면 연합, 외국군 없이 육·해·공 병종끼리 함께 수행하면 합동 훈련(연습)으로 칭하는 식이다. 일 년에 두어 번 치러지는 한미 연합 연습에는 전쟁 상황에 대비해서 육해공군이 각자의 자리에서 나라를 지키는 과업을 수행한다. 평소에 미군과 뚜렷한 연결점이 없는 부대라도 이때는 미군측에서 증원인력을 보내어 연락장교(Liaison Officer)로서의 역할을 비롯해 이것저것 협조할 판을 깔아놓는다.
통역장교의 주 업무는 당연히도 통역과 번역이지만, 만성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대한민국 군인이 자기 본연의 일만 맡아서 하는 사치는 쉽게 누릴 수 없다. 다들 하나씩 부가적인 일을 제비뽑기하듯 가져가는 와중에 연습이 없는 주말 간 미군들의 ‘유흥’이 내 몫으로 주어졌다. 미군이 부대에 상주하는 상황에서 영어를 무리 없이 소화할 수 있는 인원은 몇 없었기에 특권이라면 특권이었다.
아무렴 좋다. 무엇보다 가장 한국적이고 건전한 유흥을 보여주겠노라. 코리아 치킨을 맛보게만 해주면 다른 건 뭐든 상관없다는 조지 소령의 의견에 따라 우리 3인방은 강진 월출산으로 차를 돌렸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대학원에서 조경을 전공한 과거 이력을, 그것도 심지어 졸업 논문의 대상지였던 이담로의 백운동(白雲洞) 원림을 이렇게 써먹을 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대한민국 장교 중에서 나만큼 한국의 전통정원을 깊이 있게 공부한 사람은 몇 없을 거라는 자신감으로 미군 장교 두 명만을 위한 맞춤 가이드 투어를 제공했다. 머릿속으로는 골백번 논문에 고쳐 쓴 내용인데도 조선 사대부의 선비 감성을 외국군 장교에게 통역하는 부분은 난감한 대목이 많긴 했지만, 모자란 점수는 한국인 소울이 가득 담긴 후라이드 치킨을 대접하는 것으로 메꾸었다.
잠깐 있다 갈 사람들인데 뭐 그렇게까지 하느냐는 말도 들었지만, 내 밥그릇 허한 건 참아도 손님 대접에 서운함이 있는 건 못 참는 한국인의 정이란 별수 없었다. 어쩔 수 없는 인간인지라 신경을 써줄 에너지가 부치거나 지갑 사정이 여의치 않을 때는 내면의 이기심에 잠시 자리를 내주기도 하지만 해줄 수 있는 데까지야 못 해줄 것도 없었다. 오클라호마 올 일 있음 꼭 연락해, 하는 작별의 말은 담에 밥 한 번 먹자는 우리네 기약 없는 약속과 다를 바 없겠지만, 신경 써서 준비한 환대의 보상으로는 알맞게 마음을 울려왔다.
“So.. take care(건강히 잘 지내요).”
서른이 넘어가고 나니, 어떻게든 아프지 말라는 말만큼 진심을 가득 담은 인사가 또 없는 것 같다. 어제의 나나 오늘의 나, 심지어 작년의 나나 올해의 나는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이는데 어째서 10년 전의 나는 지금과 이토록 딴판일 수 있는지. 가끔 친구들과 옛 사진을 돌려보면 낯선 이가 내 옷을 입고 촌스러운 브이 포즈를 취하고 있음에 흠칫 놀라곤 한다. 저 때는 밤을 새워 놀고도 멀쩡했었는데. 언제부턴가 내가 먹는 영양제와 건강기능식품들이 실은 내 본체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돈도 좋고 지위도 좋지만 다시 만나려면 일단은 살아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또 이왕이면 어디 한 곳 병원 신세는 안 지는 게 좋지 않겠는가. 거창하게는 꿈을 위해, 소박하게는 가족의 안온함을 위해 몸 갈아 넣어야 하는 현실에 발 하나쯤 누구나 걸치고 있으니 고작 해줄 수 있는 건 효력 없는 축복일 뿐이다.
꼭 미군이라서, 외국에서 온 손님이라서 그랬던 것은 아니다. 달리 보면 이 땅에 사는 모두는 지구별 여행자, 우주의 수명에 비하면 찰나에 지나지 않을 시간을 스쳐 상대의 삶에 방문한 손님, 서로의 객(客)이지 않나. 떠나는 자리에 한 아름 선물을 안겨 보낼 형편은 못 되어도 따뜻한 밥 한술, 다정한 말 한마디 건네는 일은 마주 딛는 들판을 조금 덥혀 밝히는 한 송이 불꽃이 될 수 있음을 희미하게나마 믿는다. 환대하는 마음이 들불처럼 퍼져나가 마음 구석구석을 비추고 순환하며 세상을 더 나은 모습으로 바꿔줄 거라 확신하던 신념은 비록 세월에 색이 바래 흐려졌지만 그 희미한 믿음을 끝내 버리진 않았다. 호의가 호의로 온전히 돌아오지 않는 삶의 배신에 수차례 부치면서도 놓지 못한 한 조각 기대라 할까.
아폴로 8호가 달 궤도에 처음으로 진입하고는 푸른 구슬이 달의 뒤편 깜깜한 어둠에서 솟아오르는 지구돋이(Earthrise) 사진을 보내자, 시인 아치볼드 매클리시(Archibald MacLeish)는 인류를 끝없는 고요 속에 떠 있는 작고, 푸르고, 아름다운 지구의 승객들(riders)로 묘사했다. 그대가 승객이고 나도 승객이라면 우린 같은 배에 올라 같은 곳을 바라보며 선 동지가 아닐까. 한배를 탔다는 운명공동체적 표현을 기약 없이 다음에 밥 한번 먹자는 사이에 붙이면 다소 멋쩍은 일이겠다만, 하루가 스쳤든 한 달이 스쳤든, 스치는 소리가 났다면 그건 인연이다. 오늘 여기를 살아가는 나는 쉴 틈 없이 변화하며 무엇이 되어왔고 지나간 사건과 깨달음으로 꿴 인연의 상호작용을 펼쳐 줄 세웠을 때 하나라도 배열이 어긋난다면 지금의 나는 내가 아닌 무언가가 되었을 것이다. 하루가 스친 인연은 나를 하루만큼 변화시켰을 테고 한 달이 스친 인연은 나를 한 달만큼, 어쩌면 그 이상의 힘으로 여기까지 끌어왔을 테니 니체의 말마따나 있는 것은 아무것도 버릴 것이 없으며 없어도 좋은 것이란 도무지 없었다.
부디 견딜 수 있는 만큼은 아프기를. 어떻게든 아프진 말자는 덕담 대신 이 말을 그대 주머니에 넣어두면 나를 미워할지도 모르겠다. 성장통이란 말을 내세우려는 게 아니다. 그저, 너와 나는 세상의 톱니바퀴에 맞물리면서 더러는 세상을 휘어내기도 하고 더러는 자신을 닳게도 하며, 인간과 대지는 옷을 바꿔입고 힘을 주고받으며 각자의 리듬대로 탈피하니까. 성장이라는 말에 가두어 앞으로만 나아갈 필요 없이 우리는 제 양껏 모습을 바꿔가며 주어진 극의 소품에, 대본에, 무대에 오롯이 집중하며 하루를 살아가면 된다. 현실에 집중하자. 살아낼 가치가 있는 건 오직 그것뿐이므로.
여기까지 오는 길이 퍽 험했다면 그건 그대의 마음에 세계의 웅장한 소리를 한껏 담아냈다는 뜻일 테다. 또한 세계에는 그대 마음에서 산란하는 빛이 자개 무늬로 양껏 아로새겨졌으리라. 누군가는 그 소리를, 빛깔을 자신의 것으로 여겨 기꺼이 받아낼 것이고 다른 누군가를 위해 제 힘껏 세상에 증폭시켜 배포할 것이다. 그 주고받음의 결과가 지금 우리가 맞이하고 있는 하루고 이런 하루가 다시 미래에 쏘아올리는 작은 공이다. 아픈 만큼 우린 섞였고 아팠던 만큼 우린 서로에게 스며들었다.
다시 만날 수 있으면 그것대로 좋고 다시 만나지 못하더라도 그것대로 좋다. 풀어지고 합치고 섞이고 흩어지며 뭉친 인연의 실타래가 언젠가는 내게 굴러들어올 테니까. 치열하게 삶을 살다 보면 선물처럼 굴러온 연(緣)의 실을 풀어 뜨개질로 짜낼 기회도 있을 것이다. 만나지 않아도 만나게 되는, 스치어간 이들과 연합하고 합동하며 오늘이라는 극 무대에 오르는 나만의 방식으로, 한껏 무용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