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을 빌어달라는 다정함에 사뭇 따뜻해지는 날이 있다. 희열이 얼굴을 말끔히 씻어내는 아침 햇볕처럼 내리쬔 시간과 좌절이 발밑부터 차오르는 시간을 함께한 친우를 떠나보내는 자리, 몇 번이고 추억의 나이테에 줄을 그으며 밀도를 더한 관계에서 이별은 눈빛의 은하수를 따라 흐른다.
본디 자기 앞에 놓인 길은 모양이 제멋대로라 인생이란 이상하게 굴러가는 것임을 알기에, 모든 게 다 잘될 거라는 격려는 선뜻 힘 있게 나오지 않는다. 지시하는 대로만 가면 탄탄대로를 선사하는 마법의 표지판 따위가 어디 있던가. 열심이 성공을 보장하지 않고 선한 의도의 조각은 모여서 비극의 퍼즐로 귀결되는 부조리한 세계에서 우리가 발맞추어 걷게 된 건 그대의 잘못도, 나의 잘못도 아니다. 그저 한 명분의 축복, 행운의 신이 각자에게 빚어준 떡을 광주리에서 떼어내 나누는 몸짓으로, 작지만 더없이 숭고한 토닥임으로 상대의 앞날에 볕이 들기를 소망할 뿐이다.
다시 밝아오는 새벽의 알람 소리가 헤어짐을 실어온다면, 아예 건전지를 빼고 늦잠을 택할 순 없을까. 빼곡한 밤하늘이라도 기약 없는 재회의 약속 하나 끼워 넣을 자리는 있다고. 별자리에 추억을 새길 수 있다면 멀리 있어도 우린 같은 곳을 바라보며 길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하는 너는 정작 울지 않았다. 이별의 밤은 어째선지 건조한 바람이 자꾸 눈을 찔렀음에도.
눈물은 흐르지 않을 때 외려 가장 슬프다. 먹먹한 목 울림과 밝은 미소는 서로 다른 별에서 왔음에도 제 짝처럼 호응하며 보따리를 건넨다. 여행자의 꾸러미는 지나간 인연의 유적을 더하며 다른 이에게로, 행운이 몇 발짝 마중 나오면 좋을 이에게로 건너다니다 행복으로 이름을 바꿔 정착할 테고 그때쯤 난, 수령자 칸은 비워둔 채 새 보따리를 싸고 있을 테지.
언제부턴가, 고독이 서늘한 칼날처럼 폐부를 찌르며 들어올 때면 지나간 편지들을 꺼내 알약처럼 삼키는 게 습관이 됐다. 우리는 모두 서른을, 마흔을 맞이할 것을 잘 알았다. 이길 수 없는 시간의 힘 앞에서 모두가 뼛조각으로 바스러질 것을 슬프게도 너무 잘 알았다. 그걸 몰라서 세계의 시간이 끝날 것처럼 난장을 벌인 건 아니지만 가보지 못한 그 길 입구에서, 어쩌면 지금 옆에 어깨를 빌려주는 이가 없는 미래를 그려보는 건 시리도록 추웠다. 무슨 자신감으로, 우리는 순간이 영원할 것처럼 시절의 땅을 파헤쳐 감정을 묻고 축복이란 이름으로 흙을 덮었을까.
추억의 공동묘지 앞에서 추모객에겐 애도의 틈을 주어야 한다. 목적지가 없는 침묵을 발산하게 두어야 한다. 하나씩 내 삶의 현장을 떠난 이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함께 벌인 바보짓에 웃음을 지으며 차를 한 잔 다 마시고 나면 편지와 사진 더미를 털고 일어나는 게 좋다. 다시 만나자 했지만, 다시 만날 수 있지만, 다시 만났을 때 말투 행동 가치관 하나하나가 다른 이가 되어있을 너와 나는 다시금 서로를 구원할 수 있을까. 너와 함께해서 나의 오늘이 빛났다는 말을 낯부끄럽지 않게 지금처럼 서로의 보따리에 넣어줄 수 있을까.
이러구러 시간이 흘러 박제된 모습과 같을 수 없는 노릇이라면, 조금은 나은 사람이 되어있는 게 좋겠다. 조금은 더 괜찮은 모습으로 이미 매듭지은 인연을 맞이해보면 좋겠다. 새로 쓰는 서사는 이전보다 매끄럽게 굴러가는 펜으로, 부드럽지만 단단한 종이 위에다 하면 좋겠다. 서툴렀기에 빛이 날 수 있었던 주고받음은 열쇠를 잃어버린 타임캡슐, 내 광주리에서 떼어준 행운의 보리떡이 오병이어의 기적처럼 불어나 네 행복이 되었으면 좋겠다. 만날 좌표는 별자리 사이 어딘가 넣어두었으니까, 다시 못 만날 사람처럼 구태여 눈 끝에 별빛을 아니 담는 게 좋겠다.
파도는 경주하는가. 인적 없는 해안이 말하는 바로는 그렇지 않다. 쭉 뻗은 파고는 높이가 제각각이고 포말이 나는 지점과 순번은 달라도 파도는 자기 속도를 기억한다. 나아가는 형태로 달음질하다 끝에 가서는 또 어김없이 부서진다. 그 힘은 다시 돌아 새로운 파도의 형성을 돕고 꼬리와 머리가 맞물린 바다의 행진은 서로를 지지하며 묵묵히 대지를 부딪쳐온다.
파도는 경주하지 않는다. 우리는 경주하지 않는다. 그저 각자의 파도가 되어 자기 앞에 주어졌고, 때로는 일으켜가는 파동에 몸을 싣고 힘과 힘이 반갑다고 박수치는 곳까지 발을 구를 뿐이다.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한계 없는 능력과 영원한 행복으로 고정된 신이 아니기에 가능성의 바다를 치고 나갈 여지가 있음을 너와 나, 아낌없이 기뻐하며 떡을 나누자.
지나간 것은 모두 그리움이 될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