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디귿 앞에서의 아찔함

by 이성진

세상에 처음 나와 비틀거리는 새끼 기린을 어느 다큐에선가 본 적이 있다. 금방 넘어질 것처럼 보여도 억척스럽게 중심을 찾아 젖을 빠는 모습이 어미 배에서 갓 나온 새끼가 보여줄 수 있는 모습인가 싶어 찬탄이 나왔다. 갓 태어난 인간의 아기는 양육자의 세심하고 꾸준한 보살핌 없이는 단 하루의 생도 보장할 수 없다. 자연 앞에서 실로 나약한 태생이던 시절이 누구에게나 있지 않았던가.


날카로운 발톱, 힘찬 날개, 맹독 침 하나 없는 핏덩어리가 야생 맹수들 위에 군림하게 된 데는 뇌에 에너지를 집중투자해 환경에 대처하는 특유의 적응력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을 포함한 동물의 뇌는 날 때부터 완성된 구성을 갖춘 하드웨어가 아니다. 뇌과학과 신경과학 연구에 따르면 우리 뇌는 감각기관을 통해 자극을 받아 생존에 유리하게 그 회로를 갖추어가는 맞춤형 기관에 가깝다. 손님 직업과 취향에 맞춰 옷 스타일을 바꿔 입는 에이스 세일즈맨처럼, 들어오는 자극에 따라 뇌의 회로도 그에 맞게 구조가 변하는 것이다.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 혹은 생후배선(Livewired)이라 불리는 뇌의 놀라운 특성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차츰 약해지긴 하지만 외부세계와 상호작용으로 정보가 입력되면 개인이 처한 환경과 제약 조건에 따라 저에게 최적화된 회로를 갖추게끔 한다는 것이다. 동일한 대상을 감각하더라도 상이한 인식회로를 거칠 수밖에 없다면, 어쩌면 우리가 같은 세계의 구성원으로서 경험을 공유한다는 전제는 위태로운 기반일지도 모른다. 생업을 이어나가기 위해 꼭두새벽부터 지하철에 오르는 이와 전속 기사에게 깜짝 휴일을 선사한 참에 사람 북적이는 느낌이 그리워 지하철을 이용한 이는 같은 날, 같은 칸에 마주 앉아 가더라도 저를 둘러싼 대상이 같은 느낌으로 인지될 리 만무하다.


기억과 인식의 코드가 씨줄과 날줄로 짜인 가짓수가 무한대에 가깝다면 누군갈 이해하려는 발걸음은 손쉽게 오해에 도달하는 경로로 미끄러질 수 있다. 강박적으로 좋아하는 게 있거나 유달리 무서워하는 정도가 보통의 범위를 벗어나는 경우, 그 사람 생의 궤도를 오롯이 따라가 회로를 연동하지 않는 한 타인이 온전히 납득하기는 어렵다. 파편화된 이해의 조각이 모자라기보단 인식회로의 토대가 다르다는 근본적인 벽에 막히기 때문이다.



그렇게까지 싫어할 일인가 싶은 것 하나 없는 사람 없다. 기억 어디에선가 유달리 선명한 장면이 하나, 아마 초등학생쯤, 소방훈련을 한다고 동네 뒷동산에 어린이들을 불러모아 에어 매트에 뛰어내리게 하는 체험이 있었다. 가설된 탑의 높이가 한 5m쯤, 안전요원도 배치됐고 또래 애들도 더러 있어 위험하거나 거리낄 것은 없었다.


친구들 손에 이끌려 인파를 따라 올라가고 나니 딛고선 땅이 높아지면서 아찔함이 배로 느껴졌다. 번지점프대 앞에 설 때 소년은 그만 다리에 힘이 풀려버려 주저앉았다. 앞에 나보다 키가 주먹 두 개는 작아 보이는 꼬맹이가 선뜻 뛰어내리는 모습을 보고도, 뒤에 이어진 줄을 따라 아이들의 기대 반 걱정 반 묻힌 눈빛이 내게 집중된 것을 보고도 발이 도무지 말을 듣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벽이 번지점프대 앞으로 겹겹이 선 듯, 나는 발을 밀어 넣어야 하는데 ‘당기시오’ 문이 발 앞에 견고한 듯했다. 안전요원들의 격려, 할 수 있다고 북돋아 주던 응원은 실뱀처럼 이어지는 줄이 길어짐에 따라 보챔, 난처함의 순으로 바뀌어갔고 겁먹은 소년은 어른의 손바닥에 밀려 떨어졌다. 이날 소방공무원의 보고서에 공식적으로 다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이의 마음 흉터라는 건 어른들 눈의 쳇망으로는 쉽게 걸러지지 않는 지극히 사소한 모래알 같은 거니까.


강렬한 감정의 경험은 뇌의 회로에 깊고 선명한 자국을 남기고 갔다. 에버랜드에서 캐스트로 일한다 했을 때 자주 들은 말은 “거기 다니면 놀이기구는 실컷 타겠네요”인데 T-익스프레스를 지금껏 한 번도 타보지 않았다는 말은 뻔한 답변이 되지 못했다. 고소공포증이 있다기엔 발밑이 뻥 뚫린 전망대에 잘도 올라가고 빠른 속도에서 스릴을 못 느낀다기엔 스키장 상급 코스에서 보드 타고 내려오기는 버거운 일도 아니다. 그저 발이 닿지 않는 허공에서 바닥으로 패대기쳐지면서 심장은 저 위에, 몸은 저 아래에, 영혼과 육신이 분리되는 감각이 뇌 깊숙한 밑바닥에서부터 과히 불쾌하고 소름 끼칠 따름이었다. 안전장치 잘 되어있으니 괜찮다고, 막무가내로 손을 잡아 이끌던 성화를 못 이겨 이따금은 누나, 가끔은 친구들에게 팔이 묶여 롤러코스터나 자이로드롭 따위를 타기도 했지만, 머리가 굵고 나서는 그 짓도 그만두었다. 돈 내고 시간 내서 즐기러 온 놀이동산에서 감당 못 할 고통을 사서 체험하기는 할 짓이 못 되었다. 뛰어내리거나 떨어지거나, 쌍디귿(ㄸ) 들어가는 놈들과는 인생에서 더는 엮일 일이 없어야 했다.

분명히 말하지만, 없어야만 했다.



복잡한 생각이 근심으로 자라나는 길목에 설 땐 숨쉬기를 의식하며 반복하는 습관이 있다. 맘속 번민을 만드는 법은 쉬이 배웠지만 쉽게 흩어내는 법은 배우지 못한 반쪽짜리 조물주, 그렇지만 들숨에 생각을 들인 이가 나라면 날숨에 생각을 내보내는 일이라고 못 할 건 뭔가. 고통이 나를 쥐고 있는 게 아니라 내가 고통을 쥐고 놓지 못하는 거라 했던가. 움켜쥔 주먹을 펴는 일은 용기가 필요한 법이지만 이 역시 내가 아니면 누구도 해낼 수 없는 일임에, 태초부터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해 안배된 숨을 폐 밑바닥까지 찔러넣고 몇 번 게워 내고 나면 생각이 갈 길을 찾아가는 듯 명쾌해지곤 했다.


심호흡의 의식으로도 정화할 수 없는 액운은, 그러니 오죽 재앙이겠나. 이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어떤 단서를 놓쳤기에 이 하루가 비극의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지를 자문했다. 시작은 아마, 공군 군번줄 하나 가지고 있던 내가 배를 타고 싶다는, 때아닌 밤중 홍두깨 같은 생각에 사로잡혀 해군 장교로 재입대를 한 것, 해군은 당연히도 배를 타니까 바다와 관련된 훈련을 한다는 것, 개중에는 높은 다이빙대에서 어내려 물로 어지는(쌍디귿이 벌써 두 개나 얽혔다) 과업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나라고 대비책을 구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두려움이란 게 다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이미지에 지나지 않으니 그만 놓아주라는 마음 수련도 해봤고, 비슷한 경험이라도 미리 해보면 좋지 않을까 싶어 입대 전 해수욕장에서 3m 다이빙도 시도해봤다. 1인분의 용기만 내면 된다, 주위에 누차 말해놓으면 무디어질까 싶어 동기들에게 별것 아닌 것처럼 씩씩한 척 털어놓기도 했는데도 정작 다이빙하는 수영주간이 다가오니 눈앞이 아찔해졌다. 우주의 기운을 다 모아서라도 수영장 건물을 무너뜨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본의 아니게 이함(다이빙) 훈련을 빼먹을 핑곗거리가 내 앞에 떨어진다면 아쉬워하는 연기 정도야 얼마든 진심으로 해낼 수 있을 텐데.


체감상 50m는 되어 보이는 5m 이함 훈련, 사관후보생 남자 동기 42명 중에서 끝까지 뛰어내리지 못한 사람은 나뿐이었다. 조교가 밀어줘서 끝내 떨어졌으니 반쯤은 사실이 아닐 수도 있겠다. 먼저 뛴 동기들이 밑에서 고함치며 응원해주는 소릴 들으면서도 끝내 1인분의 용기를 내지 못한 나는 그들과 합류하고서는 그만 눈시울이 붉어지고 말았다. 군인이 되겠다는 자가 훈련받다가 눈물을 보이는 꼴같잖은 추태를 보일 수 없어 가까스로 참긴 했지만 마음속으로는 그날, 수백 번은 넘게 오열했다. 등 떠밀려 우스꽝스럽게 떨어진 게 부끄러움은 이유가 아니었다. 저 자신에게 분해서였다.


기대가 없으면 분할 일도 없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게 내 두려움의 핵을 건드리는 방아쇠라면, 나는 그걸 멋지게 이겨냄으로써 자신을 극복하고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은연중 있었기 때문이다. 어릴 적 뇌를 강하게 할퀴고 간 흔적은 비록 영구적인 회로로 남아버렸지만 거기 머물고만 싶지는 않았다. 나름의 싸움을 걸었지만 1인분의 용기를 내지 못한 나는 그 싸움에서 진 것이다. 한 번 도전에 꺾인 나는 세 번 더 남은 이함 훈련은 어찌할 것이며, 이후 더 큰 시련이 닥쳤을 때 과연 어디서 힘을 얻을 수 있을까 하는 속상함이 그날 밤 잠을 무자비하게 강탈해갔다.



“이토록 많은 병과가 군대에 있는 이유가 무어라고 생각하십니까. 다른 게 아니라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섭니다.”

가끔은 결과가 과정을 설명해줄 때가 있다. 임관을 성공한 나는 훈련소의 모든 과정을 성공적으로 마쳤다는 뜻이고, 총 4번의 이함 훈련을 어떻게든 극복해 넘겼다는 뜻이다. 비록 반쯤 남에게 용기를 빌렸기에 오롯이 내 힘으로 뛰어내린 건 아니지만, 도전에 실패한 거라고만은 생각하지 않는다. 어쩌면 혼자서 그 모든 시련을 이겨내려 했던 마음부터가 시작점을 잘못 잡았던 게 아닐까. 종종 인간은 제힘으로 이루어낸 것들에 스스럼없이 자만하는 버릇이 있지만, 군종 법사님의 말마따나 여기까지 오는 서사는 가족들과 친구들, 동기들의 격려와 위로, 연대가 없었다면 단 한 줄도 제대로 살릴 수 없는 문장이었다.


내 뒤에서 살짝 밀어 운명의 태엽을 돌린 이함 훈련 조교도, 내 손을 꼭 잡아주며 이야기를 다시 써 내려갈 힘을 넣어주던 재정병과 동기도, 누구에게나 특히 무서워하는 게 있다며 자기는 새가 생긴 모습이 그리도 징그러워 무섭다던 조종병과 룸메이트도 나를 살리는 데 일조한 이들이다. 우스울 수 있는 트라우마도 내 일처럼 보듬어주는 저들에게 등을 맡긴다면 두 번째 군 생활에 그 어느 까끄름한 일이 닥치더라도 잘 넘겨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게 어쩌면 내 도전의 성과였을지도 모르겠다.


같은 세상도 다르게 살 수밖에 없는 우리는 가까운 이조차 완벽히 이해할 수 없다. 서로를 이해한다는 인식은 아름다운 허구이며 착시이다. 존재만으로도 불편함을 끼치는 이들에게 기 뺏기고 치이며 지내다 오롯이 혼자 있을 수 있는 밤에 감사해지는 날이 숱하게 많지 않았던가.


그렇지만 얘 없었으면 어쩔 뻔했을까 하는 친구를 가졌다는 축복이 눈물 핑 돌게 고마운 밤이 더 많았으니까. 어디 하나쯤은 결함 있는 사람들끼리 서로의 헌데를 핥아주며 버티듯 살아가더라도 삶은 이어갈 수 있다. 착시에 기대서라도 우리네 삶은 겹치듯 비벼가며 내일로 딛고 나아갈 발판을 빚어낼 수 있다. 아름다운 허구면 어떻고 아름다운 착시면 또 어떤가. 중요한 건 내 앞에 놓인 세계의 부조리를 기꺼이 받아낼 만한 힘이 바로 그 아름다움에서 나온다는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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