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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이 죽은 시대, 탐험가가 멸종해 버린 시대에 태어났음에 그대 슬퍼한 적이 있는가. 따뜻한 방바닥에 등을 지지며 맛나고 영양 과잉인 식단에 둘러싸여 실없는 소리나 할 수 있음은 복에 겨운 일이다. 미지의 세계에 과감히 발을 들이민 개척자들도 어쩌면 후손들만큼은 자신들이 대지를 딛고 선 방식으로는 살지 않았으면 하고 바랐을 것이다. 거칠고 혹독한 황무지를 맨손으로 개간하는 고단함 따위는 자식의 자식들에겐 단언컨대 배워본 적 없는 말로, 인지할 수 있는 영역 바깥의 언어로 취급되기를 바랐을 것이다. 벨 에포크, 낭만의 시대로 돌아가고 싶다는 푸념은 실제로 시간을 거슬러 돌아갈 수 없다는 전제 아래서만 세련미가 있다.
눈이 멀어도 읽을 수 있는 문장 하나쯤, 숨이 붙어있는 동안 묘비에 쓸 말 하나쯤 마련하기 위해 확정된 평온을 던져내는 방랑자의 서사는 정녕 끝이 났는가. 이들에겐 새로운 자신을 찾을 것만 같은 신대륙, 그를 향한 동경과 갈구는 가슴이 고동치고 피가 도는 육체를 가진 이상 거부할 수 없는 존재 내면의 명령이었다. 마을 사람들 모두가 대를 이어 삶을 영위해 온 방식을 감히 해묵은 관성이라 규정하고, 부름을 받았다며 광기인지 열정인지 모를 호기에 사로잡혀 배를 띄우는 청년의 이야기는 여러 변주를 거치며 쉬지 않고 계승된다. 우리 시대의 운명은 이제 합리화와 지성에 의해 특징지어져 주술이라 할 세계의 마법적 면모는 과거의 것이 되었다고 진단한 막스 베버(Max Weber)에 반기를 드는 혁명가를 누구나 주변에 한둘씩은 두고 있다. 여전히 잘 팔리는 플롯이다.
어느 배를 타고 어떤 항로를 통해 손에 넣을지는 하기 나름이겠지만, 모험이라 하면 그 끝에 언제나 보물이 기다리고 있다. 정글을 헤치고 파도를 넘어, 사나운 용과 간악한 계교를 물리치고 나면 지난 과업은 얼음골 같은 한 잔에 털어버리면 그만인 보상이 따른다. 인생에 한 번쯤은 모험가였던 이들을 지독히도 망령처럼 괴롭히는 게 바로 그 잔혹한 사실이긴 하지만 꿈꾸는 인간의 눈빛은 어떤 조건이나 꾸밈 없이도 별처럼 빛나기 마련이다.
탐험가 이야기는 대개 모험 끝에 숨겨진 보물을 찾는 대목에서 끝이 난다. 그쯤에서 서사가 끝이 나야 깔끔하다. 보상을 타 먹은 주인공이 재테크에 실패해 재산을 탕진한다든가 어여쁜 공주님과의 결혼 생활이 기대만큼 순탄하지 못해 권태를 느낀다는 구질구질한 이야기는 현실에 가까울지언정 관객에게 보여줄 바가 못 된다. 흐린 눈으로 바라봐야 비로소 감각되는 아름다움은 이따금 그대로 두는 게 나을 때가 있으니까.
숨겨진 분기점을 탐험 서사의 마무리에 두어본다면 엉뚱한 생각일까. 자격 있는 주인을 만나지 못해 목 빼놓고 기다리는 엑스칼리버를 모험의 시작에 둔다면 모험의 끝에는 황금과 보석이 일부 남은 보따리를 자발적으로 내려놓는 장면을 그릴 수 있을 테다. 여생에 펼쳐질 잔잔한 일상, 따뜻한 빵과 스프, 사랑하는 이들의 환대로 꿰어 이을 하루를 마다할 자 어디 있으랴. 그러나 누구도 시키지 않은 일을 자기 소명으로, 때가 되었기 때문에 거부할 수 없는 어떤 것이 저를 그 길로 이끄는 모양으로 과감히 발을 떼는 모험가 이야기가 있다. 세상이 질리도록 물을 끼얹어도 마음속에는 질세라 꺼지지 않는 불이 있다.
출가는 떠남이 아니라 돌아옴이라고, 이는 진정한 나에게로, 그동안 잊혔던 본래의 나에게로 돌아오는 길이라 했던 법정 스님 말씀을 기억한다. 생에 종지부를 찍을 때까지 회전하는 물레방아에 올라타 고비 뒤에 보상을, 보상 뒤에 권태를, 권태를 과감히 찢고 겪어보지 못한 고비에 기꺼이 몸을 던져야 삶을 고양할 수 있다는 기대, 일종의 믿음을 나는 가진다. 그 모험의 서사를 마음 밑바닥에 평형수로 채운 채 나아갈 수 있다면 해군 통역장교는 내겐 종착점이 아닌 첫 번째 기항지(寄港地)다. 세계의 요동침, 너와 나의 인력이 만들어내는 파랑의 흔들림은 배를 어디로 끌고 갈 것인가. 모험이 죽은 시대에 모험을 외치는 이들은 어디에 가 닿을 것인가.
마무리 지어야 할 소설에 마침표를 들어내고 쉼표를 찍는다는 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 인간은 나약한 존재, 그 누구도 자신 있게 외로움과 친구가 되었다 외칠 수 없다. 불안과 어깨동무를 기꺼이 한다고 당당히 뽐낼 수 없다. 오랜 동행 길에 동반자가 떨어져 나가는 아픔은 겉으론 덤덤한 척해도 살점이 후드득 뜯겨나가는 고통이므로. 나는 남들과 다를 거라는 패기를 품어본 적 없는 청춘도 문제지만 언제까지고 남들과 다를 수 있을 거라는 호기를 내려놓지 못하는 청춘은 그것대로 문제다. 다만 바라는 것은 균형을 맞추는 일, 경계를 잘 인지해서 정지선 앞에서 급브레이크를 밟아 일상이 무너지는 불상사만큼은 없게끔 해야겠다는 바람만을 가질 뿐.
그러니 낭만의 동료 그대여,
여기까지구나, 하고 언젠가 말하겠지만,
뒤돌아본 모험이 부디 즐거웠기를.
시간을 돌리더라도 기꺼이 한 번 더 살아보겠다고 외칠 수 있는 삶이었기를.
바닷사람의 인사를 건네며 이만 배를 밀겠습니다.
Fair Winds and Following Se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