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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대곰돌이 May 30. 2022

돈 없는 파이어족의 여행일기

EP1. 무직자이자 여행가가 되다.

Write & Photo by 거대 곰돌이


무척이나 오래된 이야기이다.


국민학교에서 초등학교로 바뀌는 시대에 초등학교를 다녔던 나는, 집에 있던 '삼성 겜보이'와 '패미콤'이라는 이름의 콘솔 게임기에 열광하던 그저 그런 학생이었다. 어느 날, 부모님이 어디선가 486 컴퓨터를 한 대 얻어 오셨는데, 그 결과 자연스럽게 컴퓨터 학원을 다니게 되었고, 곧장 486 컴퓨터가 팬티엄으로 업그레이드되면서 '컴퓨터 신동이 되었다' 정도의 결말은 아니고, 컴퓨터 학원을 다녀서 컴퓨터를 잘 다루게 되어, 콘솔 게임기와 PC, 두 기기로 게임을 즐기는 그저 그런 학생이 되었다.


게임을 시작한 도구가 PC가 먼저였는지 콘솔게임기가 먼저였는지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아무튼 게임도 열심히 했고, 컴퓨터 학원도 열심히 다녔다. 게임을 참 열심히 했지만, 학교 성적도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던 편이라 게임을 하는데 그렇게 큰 제재를 받지는 않았다. 그렇게 대학을 갈 때까지 공부하고 게임만 하는 특출 난 캐릭터 없는 조용한 학생이었고, 그렇게 중, 고등학교를 색깔 없이 마무리했다.


게임을 하며 지내온 청소년기 덕분에, 무려 초등학교 때부터 내 장래희망은 '게임 개발자'였다. 대학도 결국 서울에 있는 모 대학의 컴퓨터 공학과에 입학했다. 입학할 때까지만 해도 무난하게 졸업하고 취업해서 게임을 만드는 사람이 될 줄 알았던 나는, 수동적이면 다 해결이 되던 중고등학생 때와 달리, 대학생활을 적응하지 못했다. 무색무취에 고난도 없었던 청소년기를 지나, 성인이 되어서야 비로소 인생의 첫 고비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여러 가지 일로 방황의 연속이었던 20대의 무너진 대학생활은 '학점 추락'으로 이어졌는데, 기특하게도 그 당시에 '추락의 흐름'을 끊어야겠다고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3학년 1학기쯤을 마치고 2년 정도 휴학을 해서 아르바이트를 해서 경비를 모은 뒤 1년 코스로 해외연수를 떠났는데, 그렇게 도피성으로 떠났던 해외연수가 바로 '뉴질랜드 워킹홀리데이'였고, 그게 내 첫 해외여행이었다.


적응할 수 없었던 전공으로 졸업하고도 성적이 안 좋아서 수십 군데 이상 이력서 전형을 넘지 못하고 오랜 취업준비생 생활을 하던 나는, 아이러니하게 워킹홀리데이 경험으로 인턴십을 통해서 전문 여행사에 취직을 했고, 본격적인 여행과 함께하는 커리어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첫 캐나다 출장. 2013년 9월. 캐나다 로키.

나는 여행사에서 30대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근무 기간 동안 매년 수백, 수천의 고객들을 해외로 보내는, '여행을 판매하는 사무직'으로 일을 했다. 내가 여행을 가는 것만큼, 타인을 여행 보내는 일도 적성에 잘 맞았는지, 대체적으로 일을 즐기며 했었다. 여행사에서 머문 기간이 대략 햇수로 6~7년 정도 되는데, 그 기간을 절반으로 나눠놓고 본다면, 절반 이상은 정말 즐겁게 회사 생활을 했었던 것 같다.


남을 여행 보내는 일에 열정적이면서, 또한 내가 떠날 수 있는 기회도 놓치지 않았다. 여행사 직원들은 각자가 담당하는 여러 가지 직무들이 있는데, 모든 여행사 직원들이 기본적으로 담당하는 고객 응대 이외에, 나는 '여행 상품 개발'이 담당 직무 중 높은 빈도를 차지했었다. 많은 시간 액셀과 웹 서칭, 영어 단어 검사를 하며 여행을 연구했지만, 더불어 현지를 공부하기 위한 많은 출장 기회가 있었다. 손님을 단체로 인솔하는 여행이거나 팸투어 Fam Tour라고 부르는 스터디 투어를 통해서 적으면 1년에 1번, 보통은 매년 2~3번 정도는 캐나다, 미국 등으로 출장을 갔다.

온천과 식도랑 여행을 주로 즐겼던 일본. 우레시노의 료칸에서 식사. 2017년

오직 출장으로만 해외여행을 했던 것도 아니었다. 출장과는 별개로 매년 꾸준히 휴가로 해외여행을 떠났다. 해마다 적으면 1~2차례, 많으면 3차례 이상 휴가로 해외여행을 떠났다.


바닷가 휴양지를 즐기지 않는다는 핑계와 함께 식도락 여행, 온천 휴양과 같은 타이틀로 1년에 1~2번씩은 일본을 찾았고, 베트남, 캄보디아 같은 동남아도 '경험'을 핑계로 다녀왔고, 어머니를 모시고 캐나다를 2주간 다녀온다던지, 기회가 될 때마다 많은 곳으로 휴가를 다녔다. 1년 차 신입시절을 제외하면, 출장과 휴가를 합쳐서 매년 적어도 4~5차례는 기본적으로 해외여행을 떠났던 것 같다.

퇴사 후 떠났던 아메리카 대륙의 첫 번째 목적지, 라스베이거스, 그랜드캐년. 2018년

회사 다닐 당시에는 주변 사람들에게 나는 '여행사 일도 즐기는 것 같고, 매년 많은 해외여행으로 삶을 힐링하며 사는 사람'이었다. 그야말로 세상 걱정 없는 사람이었다. 박봉의 여행사 급여를 아껴서 다녔던 여행이었고,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다양한 '취미'중 하나가 여행이었을 뿐인데, 나보다 연간 2~3배 이상을 벌면서 취미, 패션으로 500만 원, 1000만 원짜리 고가의 무언가는 주저 없이 사면서 내가 다니는 여행은 부럽다고 하던 사람도 있었다. 내가 연간 해외여행으로 쓰던 금액이 500만 원이 안됐었는데 말이다. 사실, 적어도 연간 1~2개월은 해외에 있었으니 그렇게 봐도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되긴 했다.




그렇지만 나의 해외여행이 항상 즐겁지는 않았다. 직업적 특성으로 여행을 자주 갈 수 있었지만, 역시 직업적 특성 때문에 여행이 항상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이다.


휴가 중에도, 출장 중에도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이 끊기거나 해외업체들과의 소통에 딜레이가 생기면 안 되기 때문에 해외에서도 항상 회사 이메일을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그래서 해외로 떠난 휴가 중에도 저녁에는 항상 숙소에 돌아와서 일을 했다. 회사의 노트북을 갖고 다니기 너무 무거워서 작은 노트북을 자비로 구입했을 정도였다. 관광을 하는 낮시간에는 모든 스트레스를 잊어보자는 마음으로 여행을 다녔지만, 저녁에는 다시 회사로 돌아온 것처럼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일을 했다.


그 결과, 회사 생활을 통해 누적되는 스트레스와 피로를 해결하기 위해 해외를 다녔지만, 여행은 어쩌다 보니 일의 연속이 되었고, 오직 여행만으로는 회사 생활의 그것들을 해소하기에는 사실상 '역부족'이었다. 누구보다 여행을 즐겼지만, 회사 생활이 길어지면서 누적되는 피로도는 해결할 수 없었다. 결국 피로는 '퇴사심'을 부추겼고, 결국 나는 마지막 근무 날짜를 회사에 통보하는 순간까지 다다를 수 있었다.

혼자 가도 너무 즐거웠던 유니버설 스튜디오 LA. 2018년

퇴사 이후에 바로 이직하지 않고 몸과 마음을 좀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가득했는데, 무얼 하면 좋을까? 고민을 역시 많이 해봤지만, 역시 결정은 '여행을 떠나자'였다.


퇴직 의사를 전달하고, 회사와 협의된 퇴사 날짜를 결정한 뒤에, 회사일을 마무리하면서 즉흥적으로 여행 계획을 세웠다. 퇴직 협의 후 두어 달 더 일을 하기로 했는데, 당장 회사를 그만두고 싶었지만 추가로 근무하는 한두 달의 급여가 앞으로의 여행을 더 풍성하게 해 줄 밑거름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더 일을 하기로 했었다. 마지막 두 달은 참 초심처럼 열심히 일했던 것 같다. 물론 그때 가장 열심히 했던 것은 내 여행 준비이기도 했다.

영화 인터스텔라에 등장했던 기지로 촬영된 LA의 웨스틴호텔. 2018년

뼛속까지 여행사 직원이었던 게, 퇴사 후 장기여행이 복귀 이후의 내 커리어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미주지역을 담당하던 사람이라서 자연스럽게 여행의 목적지는 아메리카 대륙 쪽이 되었다. 먼저 미국 서부 여행을 하고, 남미를 내려가서 몇 달 여행을 하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서 동부 여행을 하고, 캐나다 동부를 여행하겠다는 정도의 큰 계획을 세웠다. 

영화 코코의 배경이 된 멕시코 과나후아토

그렇게 나는 여행사 직원의 커리어를 마무리하고, 2018년 3월,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아직도 기억이 나는 부끄러웠던 순간이 있다. 장기여행으로 처음 도착했던 미국에서의 입국심사이다.


난 아직 젊었고, 미국 사람들이 보기에 나는 'Quit my Job'이었다. 그런데, '입국심사에서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할까?'라는 생각이 들어, 머릿속으로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표현을 보완하려고 급하게 사전도 찾아보고 준비하면서 입국심사를 받았는데, 생각했던 딱 그 질문이 실제로 나와서 나는 준비한 내용을 그대로 말을 했었다.


준비했던 답변은 'Retire my Job'이었는데, 당시에는 내가 뭐라고 잘못 말했는지도 모르고 대화를 계속 이어갔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젊은 아시아인이 와서 '난 은퇴하고 여행을 한다'라고 말을 했던 것이다. 무려 '은퇴'다.

근데, 참 세상은 아이러니의 연속인 게, 그렇게 미국 입국 심사에서 내 직업을 Retire 한 뒤, 이후에 잠깐 여행사와 관련된 해외 파견직 일을 임시직의 느낌으로 페루 쿠스코에서 한 것을 제외하면, 난 아직까지 정직원으로 여행사 사무실로 아직도 돌아가지 않고 있다.


그렇게 난 무직자이자 '여행가'가 되었다.


-EP1 Fin-



안녕하세요. 블로거 거대 곰돌이입니다.


이 브런치의 시리즈 '돈 없는 파이어족의 여행일기'는 코로나로 2020년 3월 미국에서 입국한 이후, 다시 해외로 떠날 예정인 2022년 12월 여행 글을 위한 인트로 성격의 글입니다. 본격적인 여행 글은 여행 출발이 임박해지는 시점에 본격화될 예정이고, 그 이전에 연재되는 글들은 제목처럼 파이어족으로 새롭게 살아보려고 시도 중인 블로거 거대 곰돌이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생업 블로거로의 도전을 시도하게 해 준 밑거름이 되어준 과거의 많은 여행 이야기들과 코로나 시절 이어간 국내여행은 지난 2년여 동안 제 블로그에 고스란히 담았습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아래의 블로그를 방문해주세요. 감사합니다.


https://blog.naver.com/ragun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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