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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대곰돌이 Jun 04. 2022

돈 없는 파이어족의 여행일기

EP2. 이민을 도전해볼까?

Write & Photo by 거대 곰돌이


미국에서 시작된 배낭여행은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 볼리비아, 페루, 콜롬비아, 파나마, 멕시코, 쿠바를 돌아 다시 미국, 캐나다까지, 아메리카 대륙의 총 11개국을 둘러보는 여행으로 끝났다. 총 180여 일간의 여행.


기간에 비해 준비가 미흡했던 여행이었지만, 남미에서도, 북미에서도, 남들이 다 들르는 대표적인 관광지들은 다 둘러볼 수 있었다. 대충 여행해도 성공적인 여행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또한 장기여행의 매력일 것이다. 위험하다는 소문이 항상 쫓아다니는 중남미 여행이었지만, 감사하게도 그 흔한 소매치기 같은 사건사고 없이 무탈하게 여행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잊을 수 없는 볼리비아 우유니. 2018년
거의 여행의 막바지였던 8월의 뉴욕. 코니아일랜드, 2018년

한국에 돌아온 뒤 2~3주 쉬면서 정비를 했고, 바로 유럽으로 떠났다. 연이은 여행을 계획했다기보다는, 어쩌다 보니 바로 유럽 여행의 일정이 있었던 경우였다. 사실, 아메리카 대륙보다 유럽 여행의 계획이 먼저였기 때문에, 유럽여행에 맞춰서 아메리카 대륙의 여행 일정을 조정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유럽 여행은 현지에서 일하고 있던 가족 방문을 희망했던 어머니와의 여행이었고, 2018년 9월 추석 연휴를 활용해서 다녀온 여행이었다. 목적지는 오스트리아와 체코.


당연히 항공권이 비싼 시기였고, 여행경비를 절감하기 위해서 2017년 하반기에 항공권을 예약했던 여행이기도 했다. 사실, 항공권 발권 당시에는 퇴사 통보나 사직서 제출 계획 자체가 없었다. 어쩌다 보니 발권 이후에 퇴사를 통보했고, 아메리카를 계획하고, 그때부터 그냥 일이 척척 맞아떨어졌던 것 같다.


2018년 3월에 시작된 여행은 유럽여행이 끝난 2018년 10월 초에 완전히 끝이 났고, 더 이상 추가적인 여행 계획이 없는 시점이 되었을 때, 그제야 '진짜 무직자'가 되었다.

코로나 이전, 어머니의 마지막 해외여행지였던 프라하 2018년 9월 말.

완전한 복귀 후 본격적인 구직활동을 시작했다. 바로 이력서를 돌렸던 것은 아니고, 친했던 업계 동료들에게 경력직 구인계획이 있는지 먼저 수소문을 했다. 당연했겠지만, 신입이나 짧은 경력자 구인은 많았지만, 긴 경력을 지닌 내 수준의 경력자를 구인하는 곳은 없었다.


사실, 아메리카 대륙 여행 중에도 일부 구직활동은 있었다. 퇴사 이후, 해외취업에도 관심이 있었고, 해외 현지의 일자리는 현지에서 구해야 잘 구할 수 있다는 워킹홀리데이 당시의 경험이 있었기에, 캐나다를 여행할 때 현지 업체 대표님이나 인사권을 가진 몇몇 분들과 미팅을 해보며 자문을 구하기도 했었다. 아쉽게도 '나는 일할 수 있는 비자가 없는 누군가'라는 현실을 확인할 수 있던 시간이었다.


당시에 만났던 분들에게 들었던 이야기 중에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는데, 일을 할 줄 안다고 해서 나를 위해 비자를 준비해주고 여러 가지 조건을 맞춰주는 것보다, 아예 일을 할 줄 몰라도 이민자 20대들 2명을 뽑아서 몇 달 가르치고 써먹는 게 비용적인 측면에서도 훨씬 생산성이 좋다는 이야기였다. 즉, 해외취업을 놓고 보면 나는 '쓸데없이 고비용인 인력'이었다. 여행업계의 해외취업은 쉽지 않다는 것을 배웠던 시점이었다.


국내외의 인맥을 통한 구직은 성과가 없었고, 채용 사이트를 통해 본격적으로 구직활동을 이어갔다. 그간 경력을 쌓는데 고생했고, 그걸 쉬이 버릴 순 없었다. 그래서 아무 포지션이나 지원할 수는 없었는데, 경력과 급여를 어느 정도 무시하고 지원하겠다고 마음을 먹더라도 마음에 드는 일자리가 너무나 없었다.

업계를 잘 알고, 회사에서 이력서를 같이 살펴보던 입장이라서 일자리를 보는 눈이 있다고 자부할 수 있는데, 당시의 구인공고는 대체적으로 지원자를 여행이란 이름으로 눈 가리는 대신, 급여나 조건이 매우 부족한 모집이 대부분이었다.


몇 주동안 이력서조차 내어보지도 못했고, 국내외의 모든 일자리를 동시에 알아보는 수준까지 구직활동의 범위를 키웠다. 해외의 경우는 영문 사이트나 교민 사이트 등으로 일자리를 알아보고 연락해볼 수 있는 곳은 연락을 해보기도 했고, 현지에 자리 잡은 이주공사 같은 곳도 문의를 했다. 이주공사는 3천만 원을 달라, 2천만 원을 달라 등, 감당할 수 없는 수속비용 때문에 대부분 고사했다.


수중에 생활비가 풍족했더라면 자기 관리하면서 오래 여유를 가지고 일자리가 나오는 시기에 맞춰서 좋은 일자리를 알아봤겠지만, 6개월여의 여행을 통해 수중의 모든 돈을 대부분 소진하고 남은 돈이 얼마 없었기 때문에 여유를 부릴 시간은 없었다.


여행 이후 금방 취업할 줄 알았던 게 당시의 가장 큰 오판이었다.


구인공고가 올라왔던 지역의 노을. 블레넘 2019년

매일 습관처럼 체크하던 구인공고를 보다가, 정말 우연히 뉴질랜드의 일자리를 하나 발견했다. 교민이 운영하는 현지의 인력 중계업체인데, 식자재를 가공&수출하는 기업의 지점에서 노동자를 구한다는 내용이었다. 수작업이 많이 필요해서 워킹 홀리데이로 들어오는 외국인 노동자가 많이 일하는 공장으로 유명하던 곳이었다.


워킹 홀리데이를 다녀온 지 10년 가까이 지난 시점이라 참 오래전 경험이긴 했지만, 해당 공고의 기업은 워킹 홀리데이 당시에 내가 일을 했던 많은 일자리 중 중 하나이기도 했다. 공고에 나온 지역이 아닌 다른 지역의 공장에서 일을 하긴 했었지만, 아무튼 계열사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었고, 모집을 하던 지역도 워킹홀리데이 당시 3~4개월여 동안 다른 일을 하며 거주했던 지역이라 역시 많이 익숙한 곳이었다.


공장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급여 수준은 어떤지, 현지 일상생활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채용공고에서 감춰진 모든 내용을 다 알고 있었고, 거기에 해당 일자리를 통해서 당시에 3~5년 일을 해서 영주권을 받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도 어렴풋이 기억해낼 수 있었다.

비자가 없으면 절대 일을 못하는 그 기업의 일자리 알선과 함께 비자 수속을 보조해주는 비용이 뉴질랜드 이민성에 직접 부담했어야 하는 비자 신청비용을 다 포함해서도 백만 원이 넘지 않았고, 이주공사의 2~3천만 원과 비교해서 너무나 조건이 다 좋았다.


"차라리 뉴질랜드로 다시 가서 영주권에 도전을 해볼까?"


이렇게 긴 고민 없이 이민을 목표로 하는 뉴질랜드행이 급하게 결정이 되었다.


시드니에서 여름의 크리스마스. 2018년 12월
오페라하우스를 바라보며 2018년 12월.

뉴질랜드는 12월 말부터 1월 초까지 크리스마스, 박싱데이, 새해 등 여러 공휴일과 함께 굉장히 긴 연휴를 보낸다. 현지인들도 길게 국내외로 많은 휴가를 떠나는 기간이다. 그 공장도 예외 없이 12월 말부터 1월 초까지 긴 휴가를 보내기로 예정되어 있었고, 그 기간 동안엔 아예 공장의 운영이 중단된다.

그 연휴가 끝나는 시점인 1월 8~9일에 다시 공장이 가동이 되는데, 연휴 이후에 공장이 가동될 때 반드시 같이 첫 출근을 해야 한다고 업체로부터 안내를 받았다. 비자 신청은 11월쯤이었고, 늦어도 7주 안에는 비자가 나온다고 업체도 확신하고 있었던 눈치였다. 비자 발급 예상 날짜는 12월 중순이었다.


업체에 이력서를 보내고 인터뷰를 하고 합격해서 워크 비자 신청을 하고 항공권을 알아보는 등, 모든 프로세스는 일사천리로 진행됐지만, 딱 하나, 비자만 발급만 지연되었다. 나와 비슷하게 1~2주 먼저 비자를 신청했던 사람들 중엔 이미 비자를 받은 사람도 있었고, 그래서 조금 늦어질 수는 있겠지만 문제 되는 조건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기간 내에 비자가 나올 거라는 답변은 업체로부터 받을 수 있었다. 


사실, 굉장히 느린 뉴질랜드의 행정력을 감안해서 출국을 미리 준비하지 않고 안전하게 한국에서 기다리다가 비자 나오면 그때부터 출국 준비를 하면 됐지만, 성급하게 준비해서 비싼 항공료를 지불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이럴 때는 정말 뼛속까지 여행업자였다.


12월 연말 출국을 위해 11월부터 준비하는 것도 제법 늦은 감은 있었지만, 일단은 해가 바뀌기 전에는 무조건 출국을 하겠다는 생각으로 준비를 시작했다. 당시에는 영주권 따기 전에는 돌아오지 않을 생각이 컸기 때문에, 꼭 만나야 되는 친구들 만나서 성공하고 돌아오면 보자고, 잘 지내라는 인사도 참 많이 했었다. 그냥 조용히 다녀오면 실패하고 돌아와도 덜 부끄러웠겠지만, 그렇게 해야 뭔가 의지를 다잡을 수 있었을 것 같았고,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 같았다.

시드니의 오페라 하우스 2018년 말
이민 간 친구를 만나 같이 다녔던 왓슨스베이 뒤편 갭 파크.

먼저, 가장 중요한 경비가 필요했다. 기본적으로 항공료가 필요했고, 초기 정착비용이 필요했다. 해외취업에서는 공통적인 일이지만, 가서 집 구하고 자리 잡고 일을 한 뒤 첫 급여를 받기까지의 시간 동안 쓸 생활비도 필요했다. 여유 경비가 부족했고, 결국 보험 하나를 손실보고 해지해서 부족한 경비를 마련했다. 그렇게 여행경비도 마련을 했다.


가장 큰 경비인 항공료를 아끼기 위해 마일리지 항공권도 열심히 찾아봤는데, 출국하려는 달이 12월~1월이다 보니, 저렴하게 출국을 하려면 12월 중순 넘어서 성수기가 되기 전에 항공편을 탑승해야 했다. 때마침 성수기에 들어가면 또 보유한 마일리지가 부족해서 발권 자체를 할 수 없던 상황이었다. 연말~연초의 성수기가 지난 시점에 출국을 했어도 됐겠지만, 일을 시작해야 하기 위해 반드시 현지에 도착해야 한다는 데드라인 날짜를 넘어선 기간이라서 해가 넘어간 날짜를 선택할 순 없었다. 의도하지 않게 출발 일자부터 마일리지 항공권까지 많은 것들이 연말 출국으로 맞춰졌다.


당시에는 대한항공을 제외하면 뉴질랜드 직항 편이 없었기 때문에 어디든 경유를 해서 들어갔어야 했고, 최종적으로 비자가 나올 예상을 한 날짜 전후에 마일리지로 갈 수 있는 호주로 출국하기로 협의를 했고, 최대한  비자 발급 결과를 보기 위해 성수기 바로 전날로 출국 일자를 잡았다. 가는 김에 호주 여행도 하고 오겠다는 생각이었다.


사실, 경비가 부족하다고 하면서도 또 여행은 하고 싶었던 그런 상황이었는데, 한국에서 대기하고 있으면 호주 여행에서 쓸 돈을 아낄 수 있었을 것이고, 더 여유 있게 뉴질랜드로 갔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2018년은 정말 여행으로 끝장을 보고 싶었던 건지, 결국 호주행을 선택했고, 나는 그렇게 뉴질랜드 입국 전 다시 여행을 떠났다.

크리스마스라고 선물 리본으로 인테리어를 한 까르띠에 매장
테이가 방송에서 방문했었던 레스토랑에서 먹은 토마호크. 이때 토마호크를 처음 먹어보았다. 혼자서 다 먹을 수 있다.
달링 하버에서 크리스마스 기념으로 쏘는 불꽃놀이.

별다른 문제없이 시드니 여행을 마무리하고 뉴질랜드로 넘어갔어야 했지만, 예상외로 시드니에서 계획했던 체류 일정의 마지막 날에도 워크 비자는 나오지 않았다. 결국 저렴하게 예약했던 뉴질랜드행 항공권은 큰 수수료를 주고 변경했고, 시드니 체류 일정도 대폭 연장을 했다. 연장을 하던 당시에 시드니 여행은 이미 시드니로 이민을 간 친구와 대부분의 지역을 클리어했기 때문에 더 갈 곳도 없었다. 극장에 영화 보러 다니고, 아무 데나 산책 다니거나 숙소에서 밥 해 먹고 유튜브 등을 보며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이후 업체와 다시 협의하고, 우여곡절 끝에 뉴질랜드로 들어갔지만, 결국 비자 때문에 애초에 안내를 받았던 1월 초에는 일을 시작할 수 없었다. 1~2주 정도 더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출근일이 확정이 되었고, 나와 다르게 한국에서 비자를 기다리던 이들이 다 입국을 한 뒤에야 함께 오리엔테이션을 받고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이제 본격적인 '외국인 노동자' 생활이다.


--EP2 Fin-


안녕하세요. 블로거 거대 곰돌이입니다.


이 브런치의 시리즈 '돈 없는 파이어족의 여행일기'는 코로나로 2020년 3월 미국에서 입국한 이후, 다시 해외로 떠날 예정인 2022년 12월 여행 글을 위한 인트로 성격의 글입니다. 본격적인 여행 글은 여행 출발이 임박해지는 시점에 본격화될 예정이고, 그 이전에 연재되는 글들은 제목처럼 파이어족으로 새롭게 살아보려고 시도 중인 블로거 거대 곰돌이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생업 블로거로의 도전을 시도하게 해 준 밑거름이 되어준 과거의 많은 여행 이야기들과 코로나 시절 이어간 국내여행은 지난 2년여 동안 제 블로그에 고스란히 담았습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아래의 블로그를 방문해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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