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소리의 리듬 속에서
*올트랙 소속리뷰어 대웅정의 끄적끄적
이번주 몽땅필름으로 찾아왔습니다.
바둑기사 조훈현은 한때 중국 바둑계의 최정상에 군림하던 녜웨이핑을 꺾고, 국내를 넘어 세계 바둑계를 평정한 전설적인 인물입니다. 그는 자신을 능가하는 제자 이창호를 길러냈으며, 두 사람은 오랜 시간에 걸쳐 수많은 명승부를 만들어 왔습니다.
사실 바둑은 굉장히 높은 난이도를 지닌 스포츠입니다. 정밀한 수학적 계산은 물론, 동물적인 직감까지 요구되는 게임이죠. 그런 세계에서 수많은 승리를 거둔 조훈현은 당연히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인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 <승부>에서는 ‘바둑의 신’이라 불리며 카리스마를 자랑하던 조훈현의 전설적인 면모보다는, 제자 이창호와의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적인 모습을 조명합니다. 이 작품은 “승부란 무엇인가, 관계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두 사람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과 미묘한 교감을 카메라와 사운드를 통해 섬세하게 그려내 관객을 몰입하게 만듭니다.
특히 영화의 사운드는 관객이 바둑을 잘 모르더라도 대국에 몰입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바둑판 위에 돌이 놓이는 소리는 단순한 효과음을 넘어, 시간과 감정을 연결하는 상징적인 장치로 작동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이창호의 손목시계, 대국 시간을 재는 초시계, 그리고 그 시계에서 흘러나오는 차분한 소리들은 그의 심리 상태를 섬세하게 비추죠. 불안함을 드러내는 장면에서는 째깍거리는 소리가 혼란과 긴장감을 자아내지만, 결국 시계의 초침이 제자리로 돌아오듯 그의 내면도 안정을 찾아가게 됩니다. 이 시계는 마치 이창호의 내면과 동일시되는 존재처럼 느껴지며, 스승인 조훈현을 넘어서는 과정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바둑이라는 어려운 소재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이를 자연스럽게 서사 속에 녹여냅니다.
그렇다면 조훈현은 어떤 모습으로 그려졌을까요? 영화의 시작에서 그는 마치 바둑 그 자체처럼 묘사됩니다. 모든 도전자들을 무너뜨리는 마성의 벽과 같은 존재로 등장하죠. 하지만 그는 결국 무너지게 됩니다. 자신이 키워낸 자랑스러운 제자에 의해 모든 것을 잃고 고통을 겪게 되지만, 다시금 일어서고 재기하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이 역시 소리로 표현되며, 그의 복귀와 함께 울려 퍼지는 경쾌하고 날카로운 바둑알 소리는 흥분과 열광, 그리고 환희의 감정을 담아냅니다.
저는 이 이야기가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재현되었다는 점에서 큰 기쁨을 느꼈습니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재현의 매체이지만, 이 작품은 단순한 재현을 넘어섭니다. 등장인물들이 입은 옷, 삽입된 음악과 사운드 등 다양한 요소들이 조화롭게 활용되어 감정을 효과적으로 전달해 줍니다. 조훈현과 이창호의 이야기도 단순히 ‘바둑의 전설과 그 전설을 뛰어넘은 제자’라는 구조에 머무르지 않고, 그 이상의 깊이를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가 영화라는 형식을 통해 표현되었기에 더욱 인상 깊게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이상 대웅정의 끄적끄적 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