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에 다가설수록 마주하게 되는걸 결국.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떠올리기 힘든 기억을 끄집어냈음에도 나쁘지만은 않았다. 껍질 같은 게 조금씩 벗겨진다. 억지스럽지 않은 孵化(부화) 장면처럼. 스트레스라 표현한다면 머릿속을 스치는 그 생각들은
매우 날카롭게 느껴졌을 기억이다.
결핍이란 무엇일까. 충분할 만큼 주었을 때 느껴지는 불안함일까 부족함에서, 얼마나 더 채워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걸까. 애초에 그런 것들에 대해 생각하기 전부터 시작되는지 모른다. 빈자리와 공허함은 모든 것들에게서 처음부터 혼자였기 때문에 비롯된 일들이다.
만약 그런 결핍이, 별것 아니라면 결핍이란 걸 몰랐을까. 그건 아주 일반적인 감정 변화 같은 걸까.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보기 전엔 몰랐다. 왜 그렸던 나무엔 커다란 구멍이 있었는지. 집안에서 공허함 자란다. 가장 편안하고 안락한 공간에 공기는 헛헛하다. 매일 들어가는 낯선 방. 외출이 끝나면 숨이 막힌다. 유일한 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 방 안에서 침대를 벗어나 창을 열어도 숨을 크게 쉴 수가 없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불편한 생각과 상황은 되도록 피하고 싶었다.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는 건 내면의 갈등이 반복되는 상황이 싫어서였다. 언제고 한번 아니면 여러 번을 해봤을 생각에 벌써 숨이 막혔다. 마주치지 않는 것으로 얘기하지 않은 불편함이 느껴지는 것 같다.
캥거루 같다고 생각했다. 벗어나야 했지만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은 온도와 느낌이 어색하지 않았다. 동시에 함께하는 건 부담스러웠고 스트레스로 느껴지는 과도한 생각이 대체 어디에서부터 오는지에 대해 마주해야 했다. 가운데 무언가 큰 결함을 발견했다. 조금씩 다가가 말을 걸어야 했고 대화가 필요했다. 떠오르는 상황을 지켜보라고 했을 때 생각보다 생생하게 장면을 이어 붙이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곳엔 있어야 할 것이 없었다. 집에는 아무도 없어서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물건을 빼앗겨 낯선 사람에게 저항하며 겨우 되찾아 온 가방을 집에 도망치듯 가져온 날도 키를 하수구에 빠트려 집에 들어가지 못했던 날도, 혼자 어딘가에서 기다려야 했다. 그땐 마침, 휴대폰 같은 건 없었다.
버티고 참아내면 되는 것인 줄만 알았다. 이미 자라난 뒤엔 걱정이 앞섰다. 시간이 끝났을 때 지레 겁을 먹고
걱정하던 모습이. 집에 있으면서도 불안했던 기억은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해 걱정하며 울었던 어린 시절과 비슷한 걸까.
밤이 무서웠다. 잠이 들지 못해 괴로워했고, 방을 이리저리 돌아다녀도 보기도 했다. 남겨진 어둠 속에서 벽이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고 눈을 감으면 무서운 꿈의 장면이 보일 것 같았다. 얼마 뒤엔 이 불안에서 해방되었다고 믿었다. 멀리 도망쳐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밤에 온도에 서서히 적응해 나갔다.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씩 늦는다고 생각하게 된 첫 번째 사건이었다.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느립니다.”
따위의 말을 늘어놓기도 했다. 자랑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느리게 태어난 걸 어떡하냐는 반항 섞인 말투였다. 이후엔 별생각 없이 잊고 지냈다. 결핍에 사로잡혀 공허한 세상에 누구도 없다는 극단적인 설정값. 뜰 안에 캄캄한 어둠 속에 눈을 감는 게 불안하고 초조했다. 춥고, 더 어두운 곳에서 잠은 더 오지 않았다. 복면 같은 걸 쓰고 지푸라기로 된 가방을 들고 누군가 들이닥치는 상상을 했다.
진심이 아닌 본의는 스스로 속이고 있었다. 외면하거나 어떤 소리가 들릴 땐 눈과 귀를 닫고 있었다. 그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면 결핍의 댐이 무너질 것을 알고 있었다. 저녁노을 지는 밖을 헤매고 있다. 차가워지는 큰 창이 편안하고 따뜻하게 느껴진다. 지금, 이 순간만큼이라도 편하고 싶다. 시끄러운 머릿속을 들여다봤을 땐
또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Hermitage
@big_be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