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소,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서 본
틈 난 돌이 터지고 태 먹은 독이 깨진다.
푸르스름한 시공간에 틈에서 차갑게 변해가는 무언가를 봤다.
'짧은 순간에도 작은 조짐을 보고 크게 괴로워했다.’
신경을 빼앗기고 나니 시선은 자유롭게, 시야 안의 표현은 조금은 선명하기를 바랐는데 잘 안된다. 보일 듯 말 듯 성의 없이 반사된 피사체에 이제는 동요하지 않는다. 이전에 뜨거웠다면 지금은 다르다. 불과 얼마 전까지 느꼈을 몇 번의 계절이 순간 분리된다. 마를 대로 마른 감정이 벌어진 틈 사이로 역주행했다. 어렴풋하지만 보통 이런 기분이 들 때면 식어 버린 예감 그대로였다. 낮과 밤, 사이에 새벽. 텁텁한 공기에 추위와 더위가 공존하는 공간 속에 동화되어
‘혼혈하고 싶다.’
등줄기를 타고 땀이 흐름과 동시에 살갗이 나온 팔뚝 표면에 닭살이 보란 듯이 올라왔다. 밝다가도 어두운, 짙다가도 옅은 혼탁하게 투명하고, 미묘하게 다른 두 가지가 뒤섞이며 혼합한다. 섞인 다는 게 이렇게 선택적일 수도 있다는 걸 어느 날 우연히 알아차렸다. 한 가지에 그쳤다면 애초에 몰랐었다며 진작에 관뒀을지도 모른다. 선뜻 손이 가지 않고 망설이기만 하던 시간은 점점 더 빠르게 가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머리는 더 빨리 자랐다. 정확히 머리카락이. 그곳에서 이어지는 부분의 두피를 만지다 보면 날카로운 또렷함이 조금은 무뎌져 있었다. 그만큼만 남은 시간은 더 짧아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나오면서 앞으로 남길 수 있는 게여러 가지이길 바랐지만 하나보다 둘, 그러니까 최소한 두 가지 이상이길 바랐다. 처음엔 모든 걸 하고 싶다는 생각을 어디에도 포함시키기 어려웠다. 무작정 가다 보면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어느 정도는 기대고 있는 운명 같은 것을 좇다가 어느 영역에 도달하는 것 정도로 해석했다 소속감을 가질 만한 어느 한 곳에 포함되어 선택할 수 있다는 건 필요에 의해 희석된 여유를 동반한다. 하나도 벅차 어쩔 수 없이 밀려들어가듯 욱여넣게 되면 남아있는 다른 모든 것들을 똑바로 볼 수 없다.
철저하게 가능하다고 했던 막연하고 궁금한 이야기는 시작할 때에만 고무적이었다. 더 높은 곳에 오르고 싶었던 여러 날 모두에게 솔깃한 이야기였다. 보통의 틈에서 들은 얘기로는 천부적 재능은 아니라고 했다. 배워서 되는 게 있다는 건예전에 들어 알고 있던 이야기와 달라 안정감이 들었다. 언젠가 타고나지 않았음에 불안해하던 시간들이 있었다.
재능은 선택받은 것이다. 낮은 확률로 손에 쥐고 있다는 걸 알았을 때 말할 수 없는 비밀인 우월감을 가질 수 있다. 질투는 해도 비난할 수 없다. 가져보지 않은 사람은 벌어져 사이가 난 자리를 끝내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모여 있는 사람들 속에서 이유 없고 반박할 수 없는 주제다. 부러워할 수 없어 선택의 갈래가 정해졌고 체념은 빨랐다. 어떤 행동을 할 만만 기회에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가장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이기도 했다. 습관처럼 익숙해지면 그만큼 노련해지고 기술이 될 거라 믿었다.
가공할만한 기술을.
보이지 않는 사이에 생기는 거리감에도 전할 수만 있다면 경지에 도달한 것이다. 틈을 지나 역주행한 곳에 혼혈의 경지에 도착한다. 여기, 푸르스름하게 변한 시공간의 틈에 서있다.
Hermitage
@big_be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