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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RMITAGE Mar 08. 2024

초밥의 기본을 정의한다

여의도 권초밥



21년 4월 여의도 3개월 차였다. 고될 하루의 중심이자 쉬어가는 타이밍인 점심에 누구보다 진심인 편이라 고민이 많았다. 치열하지만 조용한 전쟁터에서 남들보다 한 발짝 늦으면 자리를 차지하기 어렵다. 우당탕탕 계단을 이용할 건지 두근두근 떨리도록 오지 않는 엘리베이터를 묵묵히 기다릴지 한 가지를 선택해야만 한다. 선택에는 치러야 할 비용이 들지만 어느 쪽이든 딱 한 발만 빠르면 성공이다. 중복되는 메뉴는 싫다. 다양했으면 좋겠고 또 질리지 않기 위해서는 멈출 수 없다. ‘오늘 점심엔 뭘 먹을까’가 오전에만 할 수 있는 가장 심도 있는 토론 주제다. 메뉴를 고르다 보면 사람들의 심리나 기분이 보인다. 유독 매운 게 먹고 싶은 날이 있는가 하면 이유 없이 느끼한 게 당기는 그런 날 말이다. 허옇고 맑은 국물에 다진 양념을 한 스푼을 넣거나 여차하면 아예 자극적인 빨간 맛을 선택한다. 메뉴판에 작은 고추 모양 두 개가 유난히 반가운 날이 있다. 어떤 날은 오늘 하루도 특정 메뉴 고르기를 포기하지 못해 여의도로 넘어오는 치열한 대중교통에 꾸역꾸역 몸을 욱여넣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개월 만에 골목마다 지상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식당들의 어떤 사이클에 대해 조금 알게 되었다. '그 메뉴는 거딜 가야지' 하는 정도지만 아직 못 가보거나 안 가본 곳 투성이다. 사람이 차고 넘쳐서 어떨 땐 음식점을 방문하는 게 아니라 음식점이 사람들을 방문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사무실 상권을 몇 곳 경험했지만 이렇게 치열하고 빠르게 돌아가는 곳은 드물었다. 젊고 생기 있는 데다 종류도 다양한데 사람들의 모습이 이렇게 달랐는지를 다시 떠올려보게 하는 상권이다. 건물마다 각 층마다 연령대도 다양하고 어떨 땐 에너지가 넘친다. 거기다 여의도라는 거대하지만 비좁은 섬에는 상권 자체가 단가가 높다. 가격이 올라가는 만큼 만족도에 대한 기대가 커지지만. '오피스'라는 수식어 뒤에 싼 데다 맛도 있고 많이 먹을 수 있는 건 애초에 바래서는 안 된다. 그리 많이 먹을 수 없는 없어도 적어도 지불한 값만큼 호응하는 만족을 찾고 싶다. 



음식은 기억으로 남는다. 어떤 맛과 무슨 재료, 거기에서 어떤 걸 썼고 얼마나 대단한가 보다 결국 어떤 스토리로 남느냐가 중요해진다는 얘기다. 타이밍이 적절치 못하다는 말을 들으면 어떤가. 비가 오는 날에 고른 회라도 상관없다. 선도를 관리하는 방법과 위생 수준은 점차 발전하고 있고 이제 몇 가지는 옛말이 되었다. 그만큼 아주 무더운 여름이나 추운 겨울 바이러스를 제외하면 일상에서 특색을 갖기란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누구나 기본은 하니까 함께 식탁에 올라가는 것에는 소비자들의 숨겨진 욕구나 유행 타는 입맛도 은근슬쩍 구성에 포함된다. 



집 근처에 자주 들르던 가게가 있었다. 처음엔 작은 이자카야인가 싶더니 회를 한 점 얹어 나오거나 무친 메뉴가 눈에 띄고 입에 밟히더니 어느 날 한국식 초밥집으로 변해있었다. 여의도 권초밥처럼 기본 스시를 즐길 수 있는 캐주얼한 일식을 세트 구성으로 다뤘고 한 번의 식사로도 간단한 반주도 가능한 편안한 장소였다. 비슷한 선택지는 더러 있었지만 유독 여러 번 들러 더욱 선명하게 남았던 초심 잃은 맛을 처음 마주했을 땐 아쉬웠다. 소비자의 욕구보다 판매자의 욕구가 한 술 더해진 밥양은 많아지고 진해져야 유리한 회의 맛은 점차 옅어졌다. 두께가 좋은 스시가 맛집이나 만족의 척도는 아니지만 판에 넣고 찍어낸 공장스러운 맛이 나는 스시는 물컹하고 애매하게 살아 있는 김밥을 먹고 있다는 착각이 들었다. 왜 질기만 한 밥을 꺼리면서 사 먹어야 하는지 하는 작은 의문을 함께 씹으면서 말이다. 그런 식사를 하고 있으면 한국에 스시 오마카세 시장에 공급이 더욱 활발해지는 이유를 실감한다. 지금껏 모든 연령층에게 부담스러운 가격에 사치스럽다는 분위기였다면 한 번쯤 큰맘 먹고 도전해 볼 수 있는 '미들급스시' 라고 부르는 새로운 장르도 있지 않은가.


기본을 잃어버리기로 한 한국의 기본 스시집들을 보며 생선 한 종류씩을 빼고 계란말이나 어패류의 얹고 시장함을 달래지 못한 채 본 메뉴를 대체해야만 하는 허기진 기분으로 한강라면 보다 아쉬운 우동이라 부르는 메뉴 같은 걸 한 젓가락 얹는 구성이 다소 억지스러웠다. 물가는 올라 기본 가격은 예전 같지 않고 급하게 수정되어 서너 계단 씩 오른 숫자에 비해 초라한 구성에 야속하기만 했다. 권초밥은 이 지난하고 자칫 갈 곳 잃어버린 한국식 초밥집을 찾는 사람들이 유기견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한줄기의 희망을 보여준아직 기본을 고수하는 곳은 남아있고 실망하기엔 이르다고 말한다. 격정의 출근시간, 9호선 열차를 출발 역에서 한 두 번만에 탑승조차 하지 못하고 몸을 실어 겨우 내린 오피스 상권의 대표, 여의도에서 리뷰도 많지 않고 특별히 까다로운 위치도 아닌데 점심이면 대기줄뿐 아니라 소심한 달리기로는 발을 들이지 못한다. 평일에 숱하게 실패를 겪고 난 후 그래서 토요일 같은 한산해지는 주말에 여의도를 들르는 날이면 권초밥을 간다. 출근한 사람들은 알고 있다. 그다지 만족하기 어려운 소리 없이 치열한 건물숲 전쟁터에서 이토록 소중한 점심시간을 절반이상 투자해서라도 줄을 서 먹으려고 하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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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MIT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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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_@BIG_BE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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