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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RMITAGE Feb 17. 2024

가지가지한다

회현역, 중구 퇴계로 연길반점



붉은색 바탕 흰색 글씨로 ‘연길반점’이라 쓰여 있는 글자를 보며 가파르고 오래된 계단을 오른다. 웬만한 내공이라면 좁은 입구에서 엄청난 내공에 압도 당해 계단 오르기를 주저할지도 모른다. 낡고 오래되어 먼지 쌓인 입구는 헤아릴 수 없는 내공의 깊이를 말해준다. 아주 오래전의 일이지만 한때 일터였던 회현은 꽤 오랫동안 자주 드나들어 한편으로 익숙했다. 아쉬운 점이라면 동선이 잦은데 비해 다양하지 않았기 때문에 인근 번화가인 북창동의 거리뿐 아니라 대부분은 낯선 곳이다. 신세계백화점을 중심으로 분수대와 남대문으로 흘러가는 시장의 풍경은 여전히 정겹다. 골목 안팎으로 분주히 움직이는 상인들의 행렬이나 도보를 이용하는 사람들, 자동차로 줄을 지어 거대한 건물로 들어가려는 행렬이 이곳의 풍경이다. 한때였던 코로나 시대엔 밤낮으로 휑한 동네가 되기도 했지만 회현역을 스치는 수많은 길에 멈춰 생각해 보면 그토록 드나들던 사람이 몰랐던 것은 등잔 밑이 어두워서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연길반점은 회현역과 아주 가까이에 있다


진짜 올드스쿨이다. 이제 본토의 중국 분들이 직접 운영하는 가게를 많이 찾아다니다 보니 그 자체만으로 신뢰하거나 넘치는 기대를 하는 일은 많이 줄어들었다. 그러나 보이는 비주얼에서 이곳이 얼마나 오랫동안 다양한 사람들의 입맛을 감동시켜 왔는지를, 지금도 노후되고 있는 여러 가지 것들에서 그동안 꾸준히 안정화가 진행되고 있었고 기복 없었음에 설득력을 더해주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알만한 사람들은 이미 이른 오후 중천의 해를 비웃기라도 하듯 일찌감치 술판을 벌였다. 낮술이 가능한 것도 재밌는 광경이었지만 이곳에서 외국이자 맛을 알고 있는 현지인들도 꽤나 방문하는 것으로 보인다. 아마 본국의 맛이 그립고, 억누르던 맛의 향수를 자극받아 마음먹고 온 사람들처럼 보였다. 서울 한복판에서 그것도 아주 큰 대형 백화점 바로 옆에 투박하고 오래된 이질적인 풍경은 음식이 나오기도 전에 분위기만으로 압도한다



그동안 몇 차례의 가지 튀김, 그러니까 연남동의 연교를 주변에 소개할 무렵부터 연희동의 라이라이를 여러 번, 인근에 여러 중식집들을 포함해 한동안 가지 튀김, 어향가지에 중독되었다. 언제부터일까. 중국식 만두, 마라, 훠거에 이르기까지 중식의 부흥기가 예전의 서울에 있었나 싶다. 이미 전문화된 거리들은 특정 지역에 있었지만 일반적으로는 프랜차이즈화 되고, 코로나로 반강제로 비워진 가게들은 붉은 빛깔의 중식으로 채워갔다.(지금은 다시 한 바퀴 돌고 돌아 일식으로 가는 추세다여러 중식 중에서도 가지 튀김은 유난히 방문하는 가게마다 그 형태와 재료의 차이가 컸다. 촉촉한 곳부터 아주 건조한 곳까지 부르는 이름이 조금 다르긴 했지만 맛이나 식감의 질감은 천차만별이었다. 



특히 속을 넣어서 튀기는 경우도 꽤나 인상적이었는데, 또 어쩔 땐 일본의 우엉튀김처럼 얇게 잘라서 튀겨낸 다음, 깐풍향의 소스에 가지스틱을 볶아 내주는 경우도 있었다. 튀기고 볶았으니 맛있을 만한 방법을 총 동원했는데 중독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꽤 여러 가지의 가지 튀김을 경험한 뒤 영상으로 먼저 보게 된 연길반점의 어향가지는 호기심을 자극할만했다. 이곳은 가지를 통째로 넣고 튀긴다. 누가 물과 기름이 섞이지 않는다고 했을까. 튀긴 가지를 그냥 베어 물다 보면 그 특유의 기름 때문에 처음에는 맛있지만 식어가면 갈수록 어쩔 수 없이 느끼함 때문에 속에선 조금씩 부대끼기 시작된다. 보통 중식을 먹으러 가서 요리 종류가 쌓이게 되면 일정 기름이 지속적으로 축적되기 때문에 평소보다 조금 더 빨리 포만감이 느껴지는 건 바로 이 기름 탓이다



하지만 통째로 튀기는 것의 장점은 바로 가지의 즙, 고기로 치면 육즙이 그대로 보전된다. 보전되어 가지가 품고 있던 물이 튀김옷의 기름과 입속에서 섞이면서 엄청난 고온으로 혀를 자극하기 시작하는데 그 위에서는 주황색 소스가 춤을 춘다. 여기까지도 다른 곳과 다르다고 생각하고 있는 찰나, 눈에 띄는 재료 두 개가 보인다. 잘게 썬 당근과 촘촘하게 오른 청양 고추. 중식의 고추라고 하면 크기만 하고 맵지 않은 거대한 붉은색의 두꺼운 중국 고추가 먼저 떠오르지만 이건 청양고추다. 



분명 색은 초록색이지만 이건 붉게 피는 맛이다. 주황빛으로 물드는 깐풍 소스는 한국인을 홀딱 반하게 만들, 매우면서 달고 거기다 새콤달콤하기까지 한 다채로운 맛이다. 이 복합적인 자극을 한번 당해본 사람이라면  어느 날 스트레스로 감당할 수 있는 역치가 여러 단계 상승하는 날 이전보다 강한 자극으로 그동안 단련한 (위)에 어향가지를 흩뿌리고 싶어지지 않을까. 오랜만에 어린 시절 고급 중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어느 날 친절한 중국인 셰프가 조용히 손짓을 보내와 들어간 주방에서 몰래 입속에 넣어 주었던 干烧明虾(깐쇼새우)의 맛이 떠올랐다. 그때도 역시, '주황색 맛이야'라고 생각했다. 결국 참지 못하고 향라새우를 주문했다. 배가 불러 절반도 먹지 못하고 나와야 했다. 하필, 잠깐 들러보기로 하는 날로 이곳을 고른 게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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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MIT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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