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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RMITAGE Feb 16. 2024

그 해 겨울 일기 I

시리기로 약속한 계절의 초입에서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 모호해졌다. 어떻게 가는 줄 모르던 한 해도 십일월 중순이 지나면 슬슬 연말이라는 분위기로 시동을 건다. 마냥 들뜨던 마무리라면 좋겠지만 그렇지도, 그렇지 않다고 할 수도 없다. 추위를 들키는 일이 그래서 가장 표가 많이 난다고 하는 이 계절이 언제부터 무엇 때문에 좋아졌는지는 여전히 알지 못한다. 다만 겨울에 태어났고 겨울 냄새를 가장 잘 기억하는 동안 어느 계절에 있어도 지금의 모습을 가장 먼저 떠올리는 걸로 보아 여전히 겨울을 가장 사랑하고 좋아한다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조금 두렵다가도, 그렇지만 이내 따뜻해지는 겨울을 보면서 아픔도 잠깐이라, 또 안식도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순식간에 경험한다. 언제는 조금 더 따뜻해 뜨겁기도 했다가도 어느 날에는 혹독하게 춥다. 오르내리는 기복을 좋아하기란 어렵지만 알게 된다. 원치 않아도 수긍하게 된다. 그런 날들이 꾸준하고 일정하게 규칙적으로 반복된다. 그런 계절을 겨울이라 부르고 누군가는 추위로 누군가에게는 벽장의 난로처럼 따뜻함이나 포근함으로 부른다



버티지 못할 것 같은 추위도 정점을 찍으면 모습은 대체로 비슷해진다. 너무 춥다가도  더 이상 추울 수 없을 것 같다가도 한 며칠은 숨을 쉴 정도로 힘이 빠진다. 직접 치우진 않지만 쏟아지는 눈이 오면 세상은 새하얗게 덮였다가도 검은 먼지와 뒤섞여 한낮의 해를 보면서 녹아내리기를, 거리는 건조함과 지독함 사이를 오간다. 그 사이에 건물도 길도 나무들 모두 조금씩 낡아간다. 낡는 동안을 지켜보고 있으면 한 해의 마지막이라고 부르는 시간으로 쉼 없이 달려가는 중임을 다시 체감한다. 아마도 달력의 끝이라서, 더 이상 넘길 페이지가 없어 느껴지는 것과 통하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시간을 다시 확인하게 하다가도 조금은 어리둥절한 기분을 들게 하는, 마지막은 지나온 날들을 돌이켜볼 것인지 앞으로 헤쳐나가야 할 날들을 떠올려볼 것인지로 나뉜다.



사실은 그렇게 구체적으로 무언가를 떠올려보지 않아도 시간은 흐른다. 흐르지 않기를 바랐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달력도 숫자도 자꾸만 달라져 가는데 낡아가는 것들을 지켜만 보다 막이 내린 적도 있다. 아무리 조바심을 내봐도 달라지는 건 없다. 하늘은 대체로 파랗고 기온은 점차 떨어졌으며 따뜻한 음식이 자꾸만 생각이 났다. 예전만큼 편안하게 산책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가장 따뜻한 시간대를 골라 가능한 멀리 걸어도 보고 반가운 얼굴을 마주하고 싶다. 우연인 척 가장하기도 하고 거짓말처럼 지나치기도 한다. 그런 장면들이 스치듯 흘러가는 짧기도 하지만 길게도 느껴지는 겨울이다. 더 이상 밖에 앉을 수도 없는, 가벼운 차림에 맨발의 슬리퍼를 신고 자전거를 타고 쏘다닐 수 도 없는 그런 날씨, 벌써부터 활동량이 줄어들까 걱정이 앞선다. 대체로 많이 걷는 편인데 움츠러들까 봐. 너무 주저하기만 하는 건 아닐까 하는 별 탈 없는 걱정. 좋아한다면서 조금은 무뚝뚝하게 보일지도 모르겠는 계절감과 감정이다. 무던하지 못하다고 해야 좋을까



언젠가는 지독한 영하의 기온에 늘 발목을 들어내고 다니는 걸 주목받은 적이 있다. 별것 아닌 그런 날들이 있었나 싶을 만큼 지금의 모습은 달라졌다. 추위를 더 타게 된 것도 그렇다고 내성이 생겨 강해진 것도 아니었다.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부자연스러웠던 걸까. 한 여름에는 살갗을 최대한 가리는 게 좋았고, 겨울엔 조금 들어내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그냥 가장 잘 어울리는 모습이라는 생각에서였을지도 모르겠다. 추워 보인다는 말이 보는 사람이 다 춥거나 덥다는 말의 뜻을 조금은 알게 된 것 같다. 그게 어떻다는 건 아니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게 되었을 뿐이다. 사설은 없다



무언가를 시간을 할애해 기다려본다. 더 추워지면, 바람이 유난히 더 많이 부는 날이면, 흩날리는 눈이 애매해서 비가 되어 섞여 어딘가를 젖게 하면이라는 생각으로 기다린다. 그때가 돼서도 기다려야 한다면 그럴 일이다. 추위를 피하는 것도 모자라, 내몬 추위에 아직은 해볼 만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언젠가 깊어진 만큼 거기에서 헤어 나오기란 더욱 어려워지고 말 테니까. 계절에 취하면 비로소 끝나간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잔인함을 또 한 번 겪게 될 것이고 그건 또 한 번의 다른 계절로 달라지거나 비슷해질 테니까. 그걸 또 한 번 겪어야 한다는 멀지 않은 사실이 조금씩 가깝게 느껴진다. 정말 그 해의 겨울로 꾸준히 달려가는 중이다. 멈춰 서거나 더는 기다릴 수 없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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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MIT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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